독수리 요새
티베트 불교 카르마 카규파 총본산 룸텍 사원 방문 본문
대만 배우 임청하는 수필집 세 권을 냈다. 가을부터 계속 오디오북을 들어왔는데 마지막 권 云来云去를 어제 끝냈다. 마침 거의 끝부분에 뉴델리에서 대보법왕(카르마파)을 친견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지나칠 수 없었다. 임청하는 우울증으로 평생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오면 너무 괴롭다는 이야기를 카르마파께 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듣더니 '당신이 행복하면 어머님도 행복하십니다'라는 말로 위로해주었고 임청하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대보법왕(카르마파)은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카규파의 수장이며 명나라 영락제가 내려준 칭호이다. 카규파 중에서도 분파가 있는데 그 중에 '카르마'라는 분파가 있다. '카르마파'라는 명칭에서 '파'가 '분파'라는 뜻일 것만 같은데 티베트어로는 대략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셰르파'가 '동쪽 사람', '캄파'가 '캄 사람'이라는 뜻인 것처럼. 그래서 '카르마파'는 카규파 중 카르마 분파의 최고 지위 환생자를 뜻하는 말인 모양이다.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용어 자체가 많이 헷갈렸다. 카르마파는 티베트 불교 세계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의 뒤를 이은 권위자라고 한다. 이번 시킴 여행에서 카르마 카규파의 총본산인 룸텍 사원에 다녀왔다.
룸텍 사원은 강톡으로부터 택시를 고용해서 왕복 2시간, 체류 1시간 정도를 잡으면 비교적 간단히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택시 시세를 모르기 때문에 네고가 부담이 되어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강톡까지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고생을 한 터라 별로 차가 타고 싶지 않아서 하마터면 가지 않을 뻔했다. 그러다가 남걀 인스티튜트를 갔는데 그곳에서 티베트 전통 의학을 가르치는 티베트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분 지인의 도움을 받아 1시간 동안 머무는 조건으로 왕복 1000루피에 룸텍 사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심지어 이 선생님은 룸텍 사원에 있는 자신의 동료이자 승려에게 연락하여 내게 가이드를 해줄 것을 부탁해 주셨다.
카규파의 본산은 원래 티베트 라싸에서 7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출푸 사원(Tsurphu Monastery)이다. 1954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고 1959년 라싸의 민중 봉기가 실패한 후 16대 카르마파인 걀왕 카르마파도 달라이 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했다. 그러나 다람살라에 도착한 후 곧바로 달라이라마와 헤어져 강톡으로 발길을 돌린 걀왕 카르마파는 당시 시킴 왕국의 10대 국왕이었던 따시 남걀로부터 룸텍에 74에이커(299,710㎡)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1966년에 룸텍 사원이 준공되었다. (출처: 법보신문, 룸텍 사원 소개 책자)
제17대 현 오겐 도르제 카르마파는 2000년에 14살의 나이로 출푸 사원을 떠나 인도로 망명해왔다. 중국 정부의 거센 반대 끝에 2년이 지나서야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룸텍으로는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암살 위험이 높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다. 현재 오겐 도르제 카르마파는 다람살라의 규토 사원에 거하고 있다.
이처럼 룸텍 사원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방문 시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입장료 자체는 10루피 정도로 매우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표소 직원이 자연스럽게 네팔어로 말을 걸었다. 시킴에서 나는 현지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의 매번 있는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입을 떼기 전까지는 현지 민족인 셰르파, 부티아 또는 렙차인일 거라고 생각해서 네팔어로 말을 건다. 셰르파 사람조차도 나를 셰르파일 것으로 생각한다. 여행자로서는 상당히 재밌고 좋은 일이다.
여권을 검사받고 조금만 언덕을 올라오면 룸텍 사원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포켓스탑을 돌려서 기록을 남겼다. 오래 오래 버텨서 50코인 벌어오라고 게을킹을 배치했다.
룸텍 사원의 메인 빌딩이다. 바로 앞에 있는 저 건물이 법당이다.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아까 입구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얘길 들은 인도 어린이가 말을 걸어왔다. BTS 팬이라서 한국인하고 얘기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너무 좋다고 한다. 요즘 인도에서 한국 연예인이나 드라마 인기가 엄청나서 이런 호감을 종종 받을 수 있다. 한국 이름을 하나 지어달라길래 '전정국'이라는 이름밖에 몰라서(얼굴은 모름...) 비슷하게 '정현'이라고 지어줬다. 근데 친구는 자기가 이미 마음에 드는 다른 이름이 있다던데??ㅋㅋㅋㅋㅋ 하여튼 그 친구 아버지가 저기 중간에 계신 남자분이다.
뒤쪽에 더 높은 곳에 보이는 건물은 카르마 슈리 날란다 인스티튜트(Karma Shri Nalanda Institute)라는 교육 기관이다. 8학년에 상당하는 교육 과정을 마쳐야 이곳에서 수학할 수 있다. 입학 후 2년 간의 예비 과정을 거쳐 학사 과정 교육을 받는다. 부탄, 네팔, 라다크, 시킴, 인도 다른 지역, 티베트 출신의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불교 경전, 탄트라, 불교 철학, 영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 문학, 문법, 종교사, 논리학 등을 배운다. 이 중 많은 것들은 나도 해보고 싶은데?? ㅋㅋㅋㅋ 11년 간의 과정을 마치면 M.A. 학위에 준하는 아차르야 학위를 받는다. 룸텍 사원에는 청소년 승려들이 많이 있었다. 만나기로 한 스님을 기다리느라고 잠깐 앉아 있다가 이런 것을 발견했다.
불경을 담은 수첩인 것 같다. 체링 도르제, 카르마, 최펠이라는 티베트 이름들이 보였다. 글씨체나 내용을 봐서는 소년 스님들인 것 같고 너무 정겨웠다 ㅋㅋㅋㅋㅋ 아직 어린 장난꾸러기들일 것 같은데 어떻게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알 방법은 없다. 넘겨 보니 그 다음 장은 달라이 라마와 카르마파의 사진이었다. 내용은 티베트어로 되어 있다. 조금 구경하고 있다 보니까 저쪽에 어린 스님이 한 분 나타났다. 얼른 뛰어가서 수첩 맨 앞장을 보여주면서 주인 좀 찾아달라고 건네주었다. 스님은 내용을 보고는 약간 수줍은지 조금 웃었다 ㅋㅋㅋ 귀여웡...
스님은 2분이면 올 거라고 하셨는데 1시간이 지나서야 오셨다. 아마도 나보다 어리거나 최대 내 또래인 것 같은 젊은 분이었고 이곳을 졸업하셨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ㅋㅋㅋ 아마 법문 일정 같은 게 있어서 바쁘셨던 것 같은데 시간을 쪼개 날 만나주셔서 그저 감사했다. 1시간만에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에 택시기사 걱정이 조금 되었다. 그래도 스님이 황금 불탑을 보여주기로 하셔서 일단 따라갔다. 거기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이다.
황금 불탑 뒤에 역대 카르마파가 모셔져 있으며 바로 전대인 16대 카르마파의 성해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카규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활불 전세 제도를 가장 먼저 확립했다. 2대 카르마파가 원 세조 쿠빌라이 칸에게서 검은 모자와 법왕의 칭호를 받았기에 흑모파라고도 부른다. 그 흑모가 이곳 사원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겔룩파는 황모파다.
이번 여행 중 전 직장에서 친하던 동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킴은 티베트 불교 왕국이었어서 여기 있는 동안 절을 엄청나게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가장 먼저 그 가족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명칭은 잘 모르겠는데 이곳 황금 불탑과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손으로 쥘 수 있는 어떤 성물이 있었다. 스님이 그걸 잡고 기도해보라고 하셨다. 친구 가족 이야기를 간단히 드리고 나서 스님과 함께 잠시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정말 택시 기사님 걱정이 되었다. 스님이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셨는데 기사님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더니 2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쉽지만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대신 의사 선생님한테 감사하다고 인사할 수 있도록 사진 한 장만 같이 남기자고 했다. 그런데 잠깐 주저하셨다. 짐작컨대 내가 아무래도 사바세계의 여자이다 보니ㅋㅋ 같이 찍은 사진이 혹시나 인터넷에 올라가거나 하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아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다!! 오직 선생님한테 보여드릴 목적이라고 안심시켜 드렸더니 흔쾌히 함께해 주셨다. 내 폰은 삼성폰이라 손바닥을 들어올리면 셀카 인식이 되어서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이 몇 초 후에 사진이 찍힌다. 스님이 그걸 '안녕' 하는 사진 포즈인 줄 알고 씩 웃으면서 따라하셔서 너무 인간미 쩔었다 ㅋㅋㅋ 스님은 성함도 카르마였다. 카르마라는 이름을 갖고 카르마파의 제자로 있는 것이 재미있다. 헤어질 때 합장하며 '성불하세요'라고 말씀드리고 뜻을 알려드렸다.
내려가니까 기사 아저씨 기분은 생각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만나뵙기로 한 스님을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죄송하다고 하니까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노래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부르시길래 안심했다 ㅋㅋㅋㅋ 그래도 늦은 데다 연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하여 팁을 더 드린다고 했다. 강톡 MG 마그로 돌아와서 지불을 했고 250루피 더 얹어 드렸다.
저녁 때 MG 마그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며 스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다.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내가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한사코 본인이 내겠다고 하셔서 모모와 뚝바를 배불리 얻어먹었다. 선생님은 몇 주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잃으셨다. 네팔의 무스탕 출신이신데 부모님은 티베트 점령 당시 피난 온 분들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네팔 여권이 아닌 티베트 난민 여권을 갖고 계시다고 한다. 이 분은 어릴 때부터 고향을 떠나 달라이 라마가 계신 다람살라에서 학교를 다녔고 바라나시에 있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셨다. 달라이 라마를 뵌 적이 있으며 운이 좋게도 달라이 라마께서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어 주신 적이 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다르질링에서 티베트 의학을 새롭게 공부하고 긴긴 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후 현재는 1년 동안 강톡의 남걀 인스티튜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다. 이후에는 어디에서 정착하게 될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곳저곳 많이도 다녀야 했던 선생님이 언젠가는 라싸의 포탈라궁에 가보실 수 있기를 기원해 드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펠링으로, 선생님은 실리구리로 떠나야 했다. 선생님은 방학을 맞아 고향의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어머님을 보내드리기 위해 보드가야에 순례를 갈 거라고 하셨다. 지금 무스탕은 무척 춥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는 가족을 최근에 잃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다음부터 절에 갈 때마다 친절하고 다정한 길동무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절을 여러 군데 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킴 왕궁이었던 추글라캉 사원에 갔는데 그날 드디어 구름이 걷혀서 신기루처럼 드러난 칸첸중가를 봤다. 그 다음 택시스탠드까지 걸어가서 다음날 아침 펠링 셰어택시를 알아보았다. 그 직후 바로 옆에 있는 남걀 인스티튜트에 가서 그 전날 봤던 의사선생님을 또 마주쳐서 얘기를 했다. 선생님은 일 때문에, 나는 친구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려고 근처 절에 같이 올라갔다. 그 다음 간단히 아침을 먹고 택시 수배 도움을 받아서 룸텍 사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돌아온 후에 셰어택시를 확실히 예매해 놓고 MG 마그에서 오래 쉬다가 저녁을 먹었다. 강톡에서 원래 2박만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첫째 날을 이동으로 다 써버린데다 둘째 날은 게으르게 보냈어서 그냥 하루 더 있기로 결정하고 보낸 3일째였다. 뜻밖에도 하루를 매우 알차게 보낸 다음에 씻고 일찍 자고 다음날 아침 펠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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