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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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러시아

7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bravebird 2015. 7. 16. 07:10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밥 먹고 레닌그라드 봉쇄시기 기념박물관 갔다. 저번 여행 때 정치사 박물관이랑 같이 보려다가 못 간 곳이다. 8월에 베를린행이 예정돼 있어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행선지 중 하나.

1945년 5월 9일 대독일 반파시스트전쟁(대조국전쟁) 승리일의 프라우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레닌그라드 봉쇄 개념도.

"우리의 명분은 정당하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글씨가 일부 안 보이긴 한데, "우리는 오데사와 스탈린그라드를 수호하였고 베를린에 당도했도다!"

레닌그라드 봉쇄 해제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연주회 광고. 독일군에 원천 봉쇄되어 생명이 꺼진 줄 알았던 도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온 세계에 알린 사건.


파시스트 야만인들이 소비에트 땅이라곤 한 발자국도 못 밟게 만들겠다!



다 보고선 아직도 못 가본 여름정원을 드디어 처음으로!


러시아의 상징인 쌍두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야누스 조각상이 여름정원에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서 그 모두이기도 하고 그 모두가 아니기도 한 러시아의 독특한 입지에 대한 훌륭한 상징.

걸어 지나오면서 정원이 많은데 구경도 하고 누워 쉬기도 했다. 공놀이 하고 노는 젊은이들이랑 가족들은 수요일 낮에 어떻게 이렇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러시아 박물관으로 갔다.


liontamer님이 좋아하시는 Flying Demon. 미하일 브루벨 작.

여기서 엽서 네 장 샀다. 특히 레핀의 자포로지예 카자흐 엽서가 선명하게 잘 나온 게 있길래 낼름 집어들었다. 사무실 컴파트먼트에 조그맣게 보일락 말락 붙여놓을 거다.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아 붙여놓는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다ㅋㅋ 예쁜 엽서 사오는 것은 러시아 미술관 기행의 작은 즐거움이다. 단돈 300원의 행복.

20세기 작품 중에 새로 걸린 그림이 많았다.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카메라로 따로 찍어두었다.

나와서 마린스키 가기 전에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아침에 팬케이크에 요구르트 먹은 게 다였기 때문이다. 예술광장 쪽으로 나오니 식당이 있길래 일단 들어가서 앉고 보니 liontamer님이 언급하신 그랜드 호텔 유럽이었다. 추천하신 비프 스트로가노프에 와인 한 잔 시켰다. 밥 한 끼에 1750루블 써보기 생전 처음인데 워낙 못 먹다가 이렇게 훌륭한 걸 먹으니 이건 뭐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밥 먹다 옆을 보니 차에 이런 문구가 ㅋㅋㅋ 역시 자원대국 러시아의 스케일 ㅋㅋㅋ

마린스키 시간 맞춰 가려고 직원에게 버스정보를 좀 물었다. 네프스키 대로에 버스가 안 선다며 택시를 불러 주다고 하길래 반색을 하며 부탁을 했다. 음식도 최고로 맛있고 택시 도움도 감사해서 지갑 속에 남아있던 300루블을 다 꺼내서 기분 좋게 팁으로 놓았는데... 아니 글쎄 돈 뽑으러 atm 갔더니 잔액이 있는데도 인출이 안 되는 거다. 택시 올 시간은 다 됐는데!! 택시 불러준 분께 사정 설명을 했더니 팁으로 받은 현금 중 200루블을 돌려주며 기사님께 데려다 줬다. 너무 고마웠다. 꼭 트립어드바이저 회원가입 해서 코멘트 남기고, 또 찾아가서 팁 듬뿍 놓고 와야겠다. 도움 받은 것은 절대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택시 타고 가는 길에 네프스키 대로에서 또 요런 차를 발견했다. 오오 역시 불곰스케일!!

택시 기사님과 러시아어로 얘기를 조금 나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행 왔다고 소개했다. 페테르부르크는 정말 아름답다고, 러시아어 배우고 있는데 너무 어렵지만(기사님 웃음) 굉장히 멋진 언어라고 찬양했다. 페테르부르크는 날씨 빼고 다 좋은데 오늘은 날씨까지 좋아서 오페라 보러 가기 싫다고 투정 부렸다. 어제 이고르 대공(웃음) 보다가 잤다고, 무슨 4시간씩이나 하냐고(또 웃음) 투덜대면서 날씨 좋은데 술이나 마시러 가고 싶다 그랬다. 그러는 사이에 마린스키에 다 와버렸길래 내리기 아쉬운 티를 팍팍 내며 감사 인사하고 내렸다. ㅋㅋㅋ 택시 토크를 아주 좋아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마린스키 신관의 무대장식. 신관은 처음이었다.

마린스키 신구관 사이에 붙은 백야의 별 행사 광고.

일 트로바토레는 이탈리아 오페라라서 그런지 자막이 러시아어로만 나왔다. 그래도 용케 1-2막 때 하나도 졸지 않고 재밌게 봤다. 뒷부분은 좀 졸긴 했다. 극장은 언제나 환기가 전혀 안 돼서 너무너무 답답하다. 하품이 막 계속계속 나온다. 인터미션 때 나가서 바람 안 쐬면 어떻게 될 것 같다.

줄거리를 다 알고 보는 거라 자막이 러시아어로만 나와도 의외로 큰 문제는 없었다. 전개도 빨라서 3시간 안 되어 다 끝났다. 어제 이고르 대공은 4시간 짜리였는데 졸다가 정신 들어서 쳐다보면 여전히 야로슬라브나가 남편 찾는 장면... 그만좀 찾아! 하여튼 길어서 고생스러웠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워낙 눈물 줄줄 흘리며 벅찬 마음으로 봤기에 일부러 러시아 오페라 위주로 골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졸리네ㅠㅠ 다음 번에는 발레로 한번 바꿔 봐야겠다.

끝나고 나서 기백 넘치게 리쩨이니 대로의 벨린스카보 거리까지 걸어서 첫째날 갔던 바에 돌아갔다. 그날 맛있는 칵테일을 알아서 척척 만들어줬던 잘생긴 바텐더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맥주 한 잔 하고 다시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계속 걸어만 다녀서 지하철 카드 10회권을 사놓고 당최 쓰지를 않았다! 길이 워낙 잘 돼있고 오며가며 볼거리가 많으니 걸어만 다닌다. 눈이야 호강하지만 발이 갖은 고생을 한다. 발바닥도 쓸려서 아프고 티눈은 파고들듯이 따끔거리고 다리도 딴딴하니 무겁다. 숙소에 와서 마운틴 듀 한 병 마시니 살 것 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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