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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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러시아

해군성 공원 벤치의 낙서

bravebird 2015. 10. 26. 08:18
올해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때 발견한 낙서들. 두번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8시부터 밖에 나갔었다. 그때 표트르 대제에게 인사하러 가다가 봤다.


"백인들을 위한 러시아"
"인종주의"


"루시인들을 위한 러시아"


"사랑은 희어야 한다. 이 벤치처럼."


이건 첫번째 단어가 뭔가의 약자이다. 아는 분한테 여쭤보니 뒤의 두 단어는 "흑인들을 처먹어라"라는 뜻이란다...

러시아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스킨헤드 없냐고 걱정을 많이 해준다. 나는 밤늦게도 많이 나다녔지만 스킨헤드 같은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고 무서운 느낌도 전혀 안 들었는데, 새하얀 벤치에 이렇게 떡하니 인종주의 멘트가 적혀있는걸 보니 갑자기 좀 낯설게 느껴지기는 했다. 저곳도 삶이 팍팍한 거로구나, 생각했다.


이날 알렉산드르 아저씨가 가르쳐준 프르제발스키 동상을 봐서 반가웠다. 위의 표트르 대제에게도 오랜 시간 충분히 문안을 드렸고, 카잔스카야 거리와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해군성, 네바 강변을 부지런히 산책하고 네프스키 대로를 따라내려와 약속장소인 돔 크니기를 갔었다. 톨가 아저씨가 와있었다. 카잔 성당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모스크바에서 밤기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그날, 숙소에서 터키 아저씨 톨가와 귀르칸을 만났었다. 두 분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여행 가이드인 귀르칸 아저씨는 러시아어를 공부하러 3개월간 페테르부르크에 와있었는데, 군대시절 가장 친한 친구인 톨가 아저씨가 방문해서 둘이 같이 모스크바 여행을 온 거였다.

귀르칸 아저씨가 수업 듣는 아침시간에 톨가 아저씨는 혼자고 해서, 둘쨋날 아침에 도시를 좀 보여드리기로 했다. 네프스키 대로를 다시 따라올라가서 네바 강을 건너 쿤스트카메라를 보여드렸다. 다 보고 와서는 귀르칸 아저씨와 다같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졌었지. 유머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고 유쾌한 분들이었다. 귀르칸 아저씨 아파트에 침대가 하나뿐이어서 둘이 같이 누울 수밖에 없는데, 손만 잡고 잤다나 뭐라나~ ㅋㅋㅋㅋㅋㅋ

톨가 아저씨는 아직도 연락이 종종 되는데, 터키로 돌아가서 러시아어 수업을 듣기 시작하셨다. 어려워 죽겠다고 하시지만 계속 들으시는 걸 보면 나처럼 러시아에 반하긴 하셨나 보다. 귀르칸 아저씨도 잘 지내신다고 한다. 군대에서 처음 만나 이십 년 가까이 서로 떨어진 도시에 살면서도 이어져온 두 분의 우정이 참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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