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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푸슈킨 선집 (보리스 고두노프, 폴타바)

bravebird 2014. 12. 10. 19:43

 

 

푸쉬킨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 뿐이어서, 여름에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민음사판 푸쉬킨 선집을 빌렸다. 전권을 다 읽진 않고 몇 작품만 발췌독. 


먼저 〈보리스 고두노프〉. 죽은 줄 알았던 황자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와 나라가 뒤집어진 동란시대를 그렸다. 여러 이설이 있기는 하나,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위 계승자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리스의 치세에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민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수도승 하나가 승복을 벗고 황제의 의관을 입기로 마음 먹는다. 보리스가 죽이려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황자가 바로 자신임을 주장하던 그는, 마침내 보리스의 아들을 죽이고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찬탈자에게 황위를 넘겨주게 된다. 이러한 동란시대는 로마노프 황가의 개창자인 미하일 로마노프에 의해 종식된다. 

찬탈자라는 테마는 어린 시절 나를 더없이 흥분시켰던(Fair is foul, foul is fair!) 맥베스를 떠오르게 했고, 승복에서 황제의 의관으로 옷을 바꿔 입는 것의 상징성 역시 흥미로웠다. 회사생활 중에 자주 하는 생각과 닮아 있었다. 어쨌든 역할이란 것은 맡게 되면(=의관을 걸치는 것, 책임자가 되는 것) 역할 수행(=왕 혹은 책임자 노릇을 하는 것)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 촌구석의 무명 수도승조차 황제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책임자나 부서장이 일단 되기만 하면 꽤 그럴 듯하게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 무소르그스키는 이 작품의 민주적인 메시지에 매료되어 오페라로 썼다고 하는데, 그가 착안한 점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읽고 나니까 맥베스도 군주론도 너무도 다시 읽고 싶다. 왕위 찬탈, 권력 쟁탈, 레알폴리틱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동란시대에 대해서는 세르게이 표도로비치 플라토노프라는 러시아 역사학자가 권위자라고 해서, 그가 쓴 《러시아사 강의 1, 2》도 사 두었다. 다음 기회에 볼쇼이나 마린스키에서 오페라로도 꼭 보고 싶다. 

〈폴타바〉는 제목만으로는 전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어서 안 읽을 뻔 했는데, 읽기를 잘 했다. 북방전쟁의 하이라이트를 그린 서사시였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카자흐 수장 마제파. 그는 스웨덴의 카를 왕과 동맹함으로써 표트르 1세가 이끄는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폴타바 전투에서 러시아가 스웨덴을 격파하면서 계획이 실패하고 만다. 역사책의 표트르 대제 챕터에서 북방전쟁 승리와 발트해 연안 획득이라고 가볍게 읽고 지나간 부분이, 여러 사람의 명운이 엇갈리는 서사시로서 생생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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