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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러시아 관련 기사는 읽을 게 못 됨

bravebird 2016. 3. 18. 17:23

이코노미스트 러시아 관련 기사는 정말 읽을 게 못 된다. (A hollow superpower 참조)

 

나는 러시아 문화를 사랑한다. 러시아 빠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동시에 푸틴의 독재를 우려한다. 그렇지만 국제뉴스를 읽을 때는 러시아 문화에 대한 호감이나 평소의 도덕적 신념을 뒷전으로 밀어두고 정치역학의 작용 그 자체를 관찰하려 한다. 물리학에서 힘의 작용을 연구하듯이. 

 

그렇게 기름기를 제거하고 본 현실정치란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각종 기술이다. 푸틴은 이 정치에 능하다. 그것도 상당히.

 

러시아는 작년 9월 30일부터 이란과 모의해서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0월 말, IS 테러로 러시아 여객기가 폭격당했다. 덕분에 IS 격퇴를 명분으로 걸 수 있었다. 서방사회와 발맞춰 나가는 이미지로 국제사회에서 점수를 땄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했다. 하자는 IS 폭격은 건성건성, 다른 반군들이나 실컷 공격한다. 덕분에 반군에 시달리던 아사드 정부가 숨통을 텄다. IS 격퇴라는 착한 가치를 내세워서 칭찬도 받고, 시리아 정권 유지라는 흑심도 야금야금 실현시킨 셈이다. 미국과 세상을 땅따먹던 시절의 군사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세계에 자랑할 수도 있었고. 국민들 지지도 얻었다. 여전히 푸틴 지지율은 80%를 육박. 

 

그러던 중 착한 반군들이나 잡아 족쳤다는 실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지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자기 시리아에서 발을 빼고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서방은 이 결정을 환영했다. 또 한번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동시에 아사드에게도 긴장을 심어줬다.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줬지만,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러시아는 국익의 향방에 따라 움직일 뿐, 아사드도 하나의 카드에 불과함을 보여줬다. 

 

 

시리아 철군 문제를 논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좌),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우).

 

 

사우디의 비위도 맞춰줬다. 사우디는 자기네 원수인 이란이랑 같이 자꾸 시리아 반군(수니파)을 잡아족치는 러시아가 맘에 안 들었다. 그런데 사우디랑 러시아는 유가하락 때문에 동병상련 관계로, 석유생산을 동결해서 유가를 높여 보려면 조만간 협상테이블에서 만나야 하는 상대다. 러시아는 OPEC 미가입국이라 유가 담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형편인데, 이번 시리아 철군의 대가로 아랍 맹주인 사우디 덕을 보게 될 거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사우디-러시아 빅딜설.

 

무엇보다, 러시아는 시리아 문제에서 서방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희석시켰다. 애초에 서방은 아사드 정권도 타파하고 IS도 격퇴하고 싶었다. 둘다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니 인류사회를 위한 옳은 일이다. 하지만 IS를 때려부수면 아사드가 웃겠고, 아사드를 때려부수자니 IS가 흥하는 상황에서 둘다 잡겠다는 건 무리수. 애초에 상충되는 목표를 잡은 서방은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도덕적 레토릭만 부여잡았다. 바로 저 이코노미스트 기사 같은 거나 쓰면서.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이 싫은 게 확실하다. 그 뜻은 지난 몇 년간 읽어온 기사들을 보아 잘 알겠고, 나도 푸틴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부린 농간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기사 내용대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정당성 측면에서나 쭉정이에 불과한데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 차례로 쇼를 벌인 다음 또다른 무대를 찾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듯, 정치의 많은 부분은 원래 쇼다. 북한은 한국과의 분단상황을 폭압적 정치체제 정당화에 이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을 잊을 만하면 협상테이블로 불러내어 뜯어먹어야 하는 약탈경제 국가다. 한국과 미국이 망해서도 안 되고 자기네들 자체가 감당할 능력이 모자라기에 전면전을 벌이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잊을 만하면 핵도발 쇼를 연출한다. 그래야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 쇼는 어처구니없고 비열할지언정 지금까지 대부분 성공했다.

 

시리아라는 멍석 위에서 서방이 속수무책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레토릭만 남발했다면, 푸틴은 극본 한 편을 짜서 용의주도한 쇼를 해냈고 명분에 실리까지 필요한 것을 착착 얻었다. 푸틴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러시아는 공허한 슈퍼파워가 아니다. 대단한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도 한정적인 자원을 몹시 효과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사용해내는 마스터마인드가 대통령으로 있고, 그가 국민 80%의 지지를 받는 나라다. 이코노미스트가 더 이상 감정에 치우친 프로파간다(예컨대 "He has “weaponised” refugees by scattering Syrians among his foes in the European Union." 따위)로 독자를 우롱하지 않고 냉철한 분석글을 써주기를 원한다. 

 

 

A hollow superpower

http://www.economist.com/news/leaders/21695003-dont-be-fooled-syria-vladimir-putins-foreign-policy-born-weakness-and-made

 

5 Ways to View Putin’s Syrian Surprise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잡지인데 꽤 읽을 만한 기사다)

http://nationalinterest.org/feature/5-ways-view-putins-syrian-surprise-15499?page=2

 

푸틴, 시리아 철군으로 서방과 화해시도…경제난에 전비도 부담(종합)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6/03/15/0605000000AKR20160315061451009.HTML

 

"아사드 살리고 군사력 과시…시리아 개입은 푸틴의 '일석육조'"(종합)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6/03/16/0605000000AKR20160316059151009.HTML

 

사우디·러시아 '산유량동결-시리아철군' 빅딜설 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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