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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홍콩 입법회 선거 이야기 (2)

bravebird 2016. 9. 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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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지나치게 높은 자동 당선자 비율과 향의국의 사례

이번 선거에서 단독후보로 나와서 자동당선된 직능대표는 10명에 달합니다. 1/7의 인원이 의회에 무혈입성을 한 것입니다. 당연히 대표성 문제가 거론됩니다. 무혈입성 수준을 넘어 거의 입법회 사석화 클라스 뺨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편 댓글에서 ***님이 문의해주신 향의국(Heung Yee Kuk, 鄕議局) 선거구를 한번 보겠습니다. 

▲ 자동 당선 10인 (클릭하여 들어간 페이지에서 인물 상세 확인 가능합니다)



향의국은 홍콩섬과 카우룬 반도의 배후지를 이루는 신계(新界, New Territories) 지역의 원거민* 이권 수호 단체입니다. 지금까지도 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인 라우웡팟(Lau Wong Fat, 劉皇發)의 영도 하에 홍콩 내 유력한 이익집단으로 자리잡았고, 직능선거구로도 조직되어 매 의회에서 1석씩 확보합니다. 라우웡팟은 홍콩 기본법을 기초할 당시 위원으로 호선되어 원거민 권익 보호 조항(제40조***)을 기본법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는 신계 지역에서 거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신계왕이라고도 불리죠. 그는 1980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고 아들 케네스 라우(Kenneth Lau Ip-keung, 劉業強)에게 자리를 물려줬습니다. 

향의국이 얼마나 배타적인 이익집단인지 더 살펴보려면 부동산 문제를 한번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별도의 글이 될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간단히 짚어 보겠습니다. 홍콩 신계 원거민 권익 보호 조치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특권입니다. 아직 영국 식민 치하였던 1972년 이래로 홍콩 신계의 만 18세 이상 남성 원거민들은 700평방피트 이하에 3층 이하인 집을 한 채 짓기 위해서 생애 중 한 차례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집을 정옥(Ding Uk, 丁屋)이라고 하며, 이 권리를 정권(Ding Right, 丁權)이라고 합니다. 이 Ding Right는 1972년에 도입된 신계소형옥우정책(New Territories Small House Policy, 新界小型屋宇政策) 에 의해 보장받고 있습니다. 정책 취지는 당시의 열악한 원거민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정옥이 모여있는 신계의 마을


그렇지만 코딱지만한 땅에 인구 700만이 모여 사는 오늘날 홍콩에서 이런 Ding Right는 부당한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정옥의 제한면적은 700평방피트, 홍콩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150평방피트입니다. 정옥은 3층까지 올릴 수 있으니 상당한 규모입니다. 게다가 주거환경 개선해 주려고 세금 걷어서 보조금 줬더니, 거기 살지도 않고 집을 팔아버리는 투기꾼들이 생겨납니다. 혹은 심지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Ding Right 자체를 부동산업자에게 매도해 버리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건 형법으로 다스리는 사안인데 향의국은 합법화하자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집은 계속 지어올릴 텐데 건축 용지가 부족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무엇보다 집은 누구나 지을 수 있어도 땅은 여전히 소수의 소유입니다. 땅값이 계속 올라가겠죠. 안 그래도 헬오브 헬인 홍콩 부동산 시장의 헬온도는 이렇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두의 세금으로. 이 모든 불합리한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곳이 바로 향의국입니다. 

원거민 중에서도 남성만이 Ding Right를 보유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조치입니다. 참고로 1994년 이전까지 원거민 여성들은 일반적인 재산 상속권조차 없었습니다. 중국 동남부 복건성, 광동성 지방 전통가옥을 보시면 가문 중심의 집성촌인데 마치 성채처럼 생겼습니다. 자기들만의 세계가 공고하고 종족 집단의 가부장적 원리가 막강하게 작용해서 여성의 권리가 미미했던 세계입니다. 참고로 모리스 프리드먼이 《중국 동남부의 종족 조직》이라는 인류학 고전에서 이 내용을 다룬 적이 있어 조금 더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읽은 지 이미 4년이 되어 인용을 적절히 할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사씨남정기를 전공 수업에서 읽고 종족 조직에 대한 공부를 했었는데, 사씨남정기에 나오는 가문이랑 이 동네 집성촌이 돌아가는 원리가 거의 비슷했네요. 의국은 바로 이런 사회 배경 속에서 생겨난 보수 이익단체다 보니, 당시 원거민 여성들을 상속권에서 배제하려는 노력도 열심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부동산값이 금값인 홍콩에서 부동산 특권을 보장받은 나이 지긋한 남자 어르신이 주축인 특수이익 집단입니다. 

Hong Kong LoWai Walled Village.jpg 
▲ 성채같이 생긴 홍콩 Lo Wai Walled Village


이 Ding Right는 말씀드렸듯 영국 식민 시기의 유산입니다. 영국 법치주의의 잔향은 홍콩 시민에게 있어서는 중국 내륙과의 차별점입니다. 홍콩이 내륙보다 선진적이고 우월하다는 믿음의 원천이죠. 게다가 반환이 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안문 사태를 목격하면서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최근에도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와 홍콩을 잠식해 오는 내륙 중국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메뚜기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영국 식민지배를 비판 없이 미화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식민 지배자를 이렇게 칭송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기한데, 이게 바로 제가 애초에 홍콩에 관심을 갖게 된 최초의 계기입니다. 같은 식민지인데 한국이랑 너무 경험도 인식도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알고 보면 이 Ding Right 같은 식민 시기의 부조리한 제도가 버젓이 남아 홍콩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슬프지만 현재 홍콩은 이중 식민 사회이고, 그 점이 거의 유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옆에 붙은 옛 포르투갈 식민지 마카오가 나름 비슷하지만, 마카오와는 식민 지배의 강도나 사회 고도화 정도, 그리고 중국 내에서나 국제 사회에서의 상징성과 영향력 자체를 비교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다시 선거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라우웡팟은 1997-1998년 홍콩 반환 전후에 임시 의회 의원으로 의정 활동까지 시작했습니다. 다가오는 10월에 종료하는 현 의회에서도 의원직을 맡고 있지요. 임시 의회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총 5회 회기 중에 네 번이나 의원 노릇을 했습니다. 전부 향의국 선거구에서 단독 출마해서 프리패스 했죠. 나머지 한 번은 지금 향의국 부회장을 맡고 있는 양반이 했습니다. 물론 이 분도 단독 입후보였습니다. 이런 특수이익단체 하나가 떡하니 147명짜리 초미니 선거구가 돼서 매번 자동 당선 후보를 내고는 홍콩 시민 1/70 만큼을 대변해 버리는 겁니다. 

▲ 향의국 라우웡팟, 케네스 라우, 향의국 로고



이번 2016년 선거에서는 어땠을까요? 라우웡팟의 아들이자 현 향의국 회장인 케네스 라우가 또 단독 출마해서 자동 당선됐습니다. 유력 이익단체 회장직에다가 홍콩 입법의원직을 부자 간에 독식하다시피 한 거죠. 그런데도 라우웡팟의 그간 의회 참석률이나 법안 발의율은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참고로 향의국은 보수 특수이익집단답게 친중파에 속합니다. 이번 70명 중에 10명이나 된다는 자동 당선자, 그걸 내내 누려온 향의국 선거구 같은 사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 주

*신계 원거민: 홍콩은 우리에게 익숙한 센트럴과 침사추이가 있는 홍콩섬, 카우룬 반도와 그 배후지인 신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홍콩섬은 아편전쟁 이후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에 할양된 직할식민지입니다. 카우룬 반도는 제2차 아편전쟁(애로호 전쟁) 후 1860년의 베이징조약을 통해 추가 할양된 직접통치령입니다. 반면 신계는 1898년 제2차 베이징조약을 통해 홍콩과 중국 사이의 완충지로 영국에 99년간 빌려준 조차지입니다. 영국은 1997년에 신계만 반환하면 되었지만 그냥 다 돌려주기로 했어요. 영국 식민정부는 신계 땅에 원래부터 살았던 원거민들의 반감을 좀 무마시켜 줄 필요가 있어서 이들의 기득권을 일정 수준 보장해 줘야 했습니다. 이에 반환 준비 과정에서 기본법에 원거민 권리 보호 조항(제40조)을 넣었으며, 신계 원거민 이익단체인 향의국이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홍콩 기본법 제40조: The lawful traditional rights and interests of the indigenous inhabitants of the "New Territories" shall be protected by the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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