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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홍콩

2017년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이야기 (2)

bravebird 2017. 3. 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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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일이었습니다. 이른 오후에 바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선자는 예상대로 친중파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캐리 람입니다. 하필 777표를 받아서 길이길이 기억되리...☆ 광둥어로 7은 페니스, 바보를 뜻하는 글자와 발음이 비슷하거든요. 물론 트리플 세븐이라서 상서롭다는 사람도 있지만, 우스운 별명 만들기 딱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캐리 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겠습니다. 본문 중 모든 이미지는 클릭하면 출처로 이동합니다. 이전 편을 읽으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2017/03/20 - [중점추진사업/홍콩] - 2017년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이야기 (1))



캐리 람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홍콩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도에 공직 입문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풍족하게 살았는지 지하철 타는 법도 모르고 휴대용 휴지 사는 것도 모른다는 게 알려져서 구설수를 치뤘죠. 바로 저번 렁춘잉 행정부에서 정무국(원어로는 정무사政務司, Chief Secretary for Administration) 국장을 지내다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퇴했습니다. 홍콩 행정부 권력서열 2위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정무국 국장이라는 명칭이지만 한국으로 치면 행정자치부 장관입니다. 홍콩은 행정부 수반이 장관 직책을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리 람의 커리어에서 두드러지는 첫 번째 사건은 퀸즈 피어 철거를 강행한 것입니다. 역대 총독이 부임할 때 항상 이곳으로 입항했고, 홍콩 마지막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도 이곳을 통해 홍콩을 떠났을 만큼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지요. 지금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댜오위다오를 두고 영유권 분쟁이 멈추질 않는데요, 반일 시위를 하기 위한 선박도 이곳에서 출항했기 때문에 중국 민족주의 진영에게도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홍콩인 집단 기억의 산실 중 하나지요. 여길 철거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총독부 건물을 밀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홍콩인에게 있어서 영국 식민 통치의 유산은 법치주의와 자본주의이고, 이것이야말로 내륙 중국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자부심의 원천이거든요. 


1925년도 세실 클레멘티 총독 취임식 당시의 퀸즈 피어


홍콩 반환 10주년이었던 2007년, 이 퀸즈 피어를 해체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결정이 났습니다. 특히 캐리 람이 강력히 밀어붙였습니다. 당시는 내륙 중국인('대륙인' 혹은 '신이민'이라고 부름)이 메뚜기처럼 몰려와서 홍콩의 복지 제도에 기생하고 생필품 가격을 올려 놓는다는 원성이 높아 가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간섭에 대한 불안과 불만도 가득했죠. 이런 배경 속에서 많은 홍콩 시민들은 고유한 로컬 문화나 주요 명소를 지켜내려는 홍콩 본토주의에 공감하기 시작합니다. 퀸즈 피어 철거는 맹렬한 도시 개발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환경 보호의 관점에서 반대 의견을 펼친 활동가들도 많았습니다. 작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최다득표의 쾌거를 올려 표왕(票王)이라는 별명을 얻은 에디 추(Eddie Chu Hoi-Dick)가 바로 그 활동가 중 하나입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스타 페리 부두도 철거하려고 했는데, 많은 시민들이 이런 정부 조치에 반대하면서 홍콩 본토주의가 성장합니다. 




퀸즈 피어 복원 위치에 대한 의견 개진 중 - 맨 오른쪽의 안경 낀 남자가 에디 추


퀸즈 피어 철거를 밀어붙인 데서 볼 수 있듯이, 캐리 람은 대표적인 친중파 인사입니다. 2014년 센트럴 점령(우산혁명) 당시에도 렁춘잉과 함께 강경 진압을 진두지휘해서 철의 여인, 홍콩의 마가렛 대처, 렁춘잉 2.0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작년 말쯤에는 홍콩에 고궁박물관을 짓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는데요, 자금성에서 유물을 가져와서 전시할 모양인가 봅니다. 캐리 람은 이 건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민의 수용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욕을 옴팡 먹었습니다. 입후보 과정에서도 중국 중앙 정부의 유력 인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선거 이전에도 선거위원 과반 이상의 노미네이션을 받아 당선이 유력했었죠. 역시 예상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중앙인민정부의 최종 지명을 받으면 당선이 확정되는데, 이건 문제 없겠죠. 한국과 비교하면 선거 내용 자체는 싱겁기가 그지없습니다.


캐리 람 당선 직후에 일부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중국 연락사무소(China Liaison Office) 앞에 모여서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던졌죠. 휴지 살 줄도 모르는 사람이 행정장관이 되었다는 조롱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연락사무소는 아주 논란이 많은 기관 중 하나입니다. 원어로는 중앙인민정부 주홍콩연락판공실이라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세운 기관으로, 리커창이 우두머리를 맡고 있는 중국 국무원의 산하 기관입니다. 원래 관영 언론사인 신화통신사(Xinhua News Agency, 新華通訊社)가 해당 업무를 담당했는데 2000년도에 중국 연락사무소로 교체됐습니다. 홍콩 정부와 중국 중앙 정부 사이의 연락 및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관련 사무를 일국양제 방침에 따라 처리합니다. 친중국 성향 매체인 대공보, 문휘보, 홍콩상보 등을 감독하기도 합니다. 이 연락사무소를 통해 중앙 정부가 홍콩 정무에 간여하기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 때도 캐리 람을 막후에서 열심히 밀어줬습니다. 그런 만큼 캐리 람은 친중 성향의 정책을 집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논란 중인 차기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해서도 중국 전인대의 2014년도 조삼모사 안을 반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캐리 람과 함께 입후보한 나머지 두 명은 존 창(John Tsang Chun-wah, 曾俊華)과 우쿽힝(Woo Kwok-hing, 胡國興)입니다. 존 창은 이번에 365표를, 우쿽힝은 21표를 얻었습니다. 득표수 기억하기가 쉽네요. 나머지 두 후보 및 기타 주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에 얽힌 홍콩 사회의 이모저모는 다음 편에 마저 다루어 보겠습니다. 원래 두 편으로 맺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다룰 것이 많네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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