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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홍콩

2017년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이야기 (3)

bravebird 2017. 4. 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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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끝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습니다만 글은 끝을 맺어야겠지요. 예상대로 캐리 람이 압승을 거뒀고, 짜고치는 고스톱 같은 싱거운 선거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후보들 이야기를 하면서 홍콩의 정치현안 몇 가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21표를 받은 우쿽힝(Woo Kwok-hing, 胡國興)은 법조인 출신입니다.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법학 학사, UCL에서 석사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은퇴했고 이전에는 홍콩고등법원 상소법정(Court of Appeal of the High Court of Hong Kong)에서 바이스 프레지던트까지 지냈습니다. 홍콩 사법체계에서 종심법원(Court of Final Appeal) 다음 순위의 기관이라고 해요. 1993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홍콩 선거관리위원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법조계 출신이라 행정 방면에서는 검증된 바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우쿽힝은 2022년도 행정장관 선거위원 선거를 위한 유권자 베이스를 100만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유권자 베이스는 25만 정도인데 점차 늘려서 2032년도에는 3백만으로, 이후에는 보통 선거에 가까운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취지입니다. 우쿽힝은 주홍콩 중국 연락사무소의 지나친 선거 개입 역시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홍콩 기본법 22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 법률을 마련하겠다는 공약도 걸었습니다. 기본법 22조는 중앙 정부기구가 홍콩특별행정구 사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후보 중 유일하게 이 부분을 언급했지요. 우쿽힝은 렁춘잉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입니다. 이 모든 것이 범민주파의 정치적 지향과 상통하지만, 지지자 기반이 더 갖춰져 있는 존 창에게 범민주파의 표가 몰리게 되었습니다.

 

 

 

 

365표를 받은 존 창(John Tsang, 曾俊華)은 렁춘잉 행정부에서 재정국 국장을 지내다가 사퇴하고 입후보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었지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근무하다가 홍콩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장관 시절부터 시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콧수염 모양 때문에 프링글스 아저씨로도 알려져 있고요. 이번 선거 때도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후보였어요. 존 창의 공약에도 선거제도 개편이 포함돼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 그 결과를 베이징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존 창은 주로 범민주파의 노미네이션을 받았지만 일부 친중파의 지지도 흡수했어요. 친중파이면서도 렁춘잉에 반대하는 제임스 티엔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제임스 티엔 이 분은 이번에 렁춘잉이 정협 부주석으로 선출됐을 때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다가 정협 위원직을 박탈당했죠. (2017/03/14 - [중점추진사업/홍콩] - 렁춘잉 행정장관, 정협 부주석 선출)

 

존 창도 렁춘잉 반대파입니다. 재정국 국장 시절에 이미 렁춘잉과의 갈등 관계가 감지됐어요. 흥미로운 정치 스캔들과 관련된 것이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신계 윈롱(元朗)의 왕차우(橫洲)라는 지역에 공공주택을 지어서 주택난을 해소하려는 플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유지(향의국 계통)들이 자기 밥그릇 뺏긴다고 엄청 싫어했어요. 결국 이 주택공급 계획은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위치도 그린벨트 지역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거기 살던 사람들은 졸지에 내몰릴 위기에 놓였지요.

 

에디 추(Eddie Chu), 에드워드 이우(Edward Yiu) 등의 입법위원들이 이 문제를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향의국-삼합회-실업계-렁춘잉이 정경유착을 통해 야매로 공공주택 건설 계획을 축소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어요. 이게 Wang Chau Saga라는 거대 스캔들로 부각되면서 작년 9월에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렁춘잉은 이 건에 대해서 비공식 태스크포스 팀을 꾸린 사실을 시인합니다. 그리고는 존 창에게 어물쩡 책임을 떠넘겨 버렸어요. 존 창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비칩니다. (2016/09/23 - [중점추진사업/홍콩] - 9/21 홍콩 행정장관 기자회견 (Wang Chau 흑막 사건))

 

 

 

 

이번에 각 후보별 공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홍콩 기본법 23조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이목을 집중시킨 내용니다. 기본법 23조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안법 비슷한 조항이에요. 홍콩 정치의 최대 떡밥 중 하나입니다.

 

Hong Kong Basic Law Article 23

The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shall enact laws on its own to prohibit any act of treason, secession, sedition, subversion against the Central People's Government, or theft of state secrets, to prohibit foreign political organizations or bodies from conducting political activities in the Region, and to prohibit political organizations or bodies of the Region from establishing ties with foreign political organizations or bodies.

 

홍콩 기본법 제23조

홍콩특별행정구는 반역, 분리 독립, 선동, 중앙인민정부 전복, 국가 기밀 절도, 외국 정치조직의 홍콩 내 정치활동, 로컬 정치 단체와 해외 조직의 연계 등을 금지하는 자체 법률을 제정한다.

 

2002년도 말에 이 조항을 바탕으로 관련 법안(Anti-subversion Law)이 만들어졌어요. 홍콩 시민 입장에서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안이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대거 집회에 나섰습니다. 당시 퉁치화 행정부의 미비한 SARS 대응과 휘청거리는 경제도 집회의 주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년 7월 1일(홍콩 반환일) 집회 당시 거의 50만 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홍콩 정치사에 한 획을 긋습니다. 1997년도 홍콩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였죠. Anti-subversion 법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결의 정치 과제로 남아 논쟁거리가 되고 있어요. 이 집회에 만족스럽게 대응하지 못한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공개 석상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2005년도에 퉁치화는 건강을 이유로 행정장관직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매년 7월 1일에 비슷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본법 23조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존 창: 덜 논쟁적인 이슈부터 시작해서 여러 단계에 걸쳐 논의해야. 구체적인 입법화 절차는 2020년 이후에.

캐리 람: 매우 논쟁적인 이슈이며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찬반 입장을 따져보고 입법을 추진하기 알맞은 분위기를 형성해야.

우쿽힝: 정치 개혁안부터 입법회를 통과(3분의 2 이상 찬성)하고 난 후에 입법화 논의하는 것이 적절.

 

아무래도 베이징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인지 다들 입법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 입장입니다. 다만 조심스러워 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남북관계에서 파생된 국가보안법이 그랬듯 기본법 23조 또한 중국과의 사이에서 뇌관과 같은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14년도 센트럴 점령을 촉발시킨 선거제도 개편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 속에 진행 중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한때 주춤하나 싶더니 어느 새 다시 고공행진 중입니다. 금융계에도 칼바람이 불고 있죠. 캐리 람이 비록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은 되었지만 산적한 과제들이 어마어마해 보입니다.

 

행정장관 선거는 입법회 선거보다 확실히 재미가 덜했습니다. 입법회 선거는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를 하는 반면에 행정장관은 선거위원단만 투표를 하고 결과도 너무 뻔합니다. 선거 판도 자체보다는 선거 제도를 둘러싼 그간의 논쟁, 센트럴 점령, 퀸즈 피어 철거, 중국 연락사무소, 기본법 23조 반대 시위 같은 첨예한 정치 사안들이 훨씬 볼만했던 선거였습니다.

 

지금 한국 대선을 지켜보면 누군가 부각되었다가 끌어내려지고, 또 새로운 누군가 부상했다가 저물어가는 과정이 정신 없고 피곤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필요없는 디테일들이 좀 가라앉고 나서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보니 이렇게 진흙탕에서 지지고 볶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네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뼈 위에서 이 모든 게 가능했단 걸 떠올리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일해서 돈 벌고 돈 쓰는 자유 말고도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내게 얼마나 많이 주어졌는지, 이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돌아보며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시리즈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기본법 23조나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새 소식이 있을 때 AS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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