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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법 이야기 (2) -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홍콩 기본법 유권해석 (2020 홍콩 국가보안법 내용 추가) 본문

중점추진사업/홍콩

홍콩 사법 이야기 (2) -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홍콩 기본법 유권해석 (2020 홍콩 국가보안법 내용 추가)

bravebird 2017. 4.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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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환 이후 홍콩 사법체제의 특수성

 

홍콩은 홍콩특별행정구 내에서만 적용되는 홍콩 기본법에 기초하여 통치합니다. 반환 후 홍콩의 기본 원칙인 일국양제를 위해 마련한 별도의 법입니다. 이 기본법은 영국 통치 시절의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Rule of Equity) 체제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만 식민지 시절에는 최종심이 영국 추밀원(Privy Council)에서 행해진 반면, 홍콩 종심법원(Court of Final Appeal)이라는 기관을 새로 설치하여 홍콩에서 최종심을 직접 시행합니다.

 

 

 

기본법은 홍콩 내에서는 헌법적인 지위를 누리지만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중국 헌법의 하위법률입니다. 따라서 중국 국가기관 중 헌법과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을 갖고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상무위원회가 이 기본법에 대한 해석의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전인대는 선거를 통해서 구성된 엄연한 입법 기관이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구성원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 권력 기관입니다. 본래 보통법 체계 하에서는 최종심과 법률 해석 권한이 모두 사법부에 있고 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인대 상무위원회 같은 정치 기관이 법률 해석과 같은 준사법권을 갖는다는 것은 보통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완전히 위배됩니다. 하지만 여긴 중국이라 원래 신기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종심법원의 존재와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유권해석은 홍콩 반환을 통해 이루어진 가장 큰 사법적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합니다. 기본법과 최종심 권한까지 갖고 있으면서도 법률 해석은 중국 중앙정부에 귀속되는 것입니다. 이 유권해석은 반환 이후 지금(2017년도 기준)까지 총 5회에 걸쳐 시행됐습니다. 유권해석은 홍콩의 일국양제와 법치주의에 제한을 가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유권해석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내륙 출신 자녀 거류권 분쟁 (1999) (2016/05/13 - [중점추진사업/홍콩] - 터치베이스 정책과 홍콩 신이민)

 

홍콩 종심법원은 내륙 중국 태생의 홍콩인 자녀는 출생 당시 그 부모가 홍콩 영구거민(permanent resident) 자격을 획득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홍콩 거류권(right of abode)을 지닌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거류권을 갖고 홍콩에 들어와서 7년을 채우면 영구거민이 되죠. 기본법에 의거한 판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초래할 인구 이동은 중국과 홍콩 정부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곧 167만 명이 홍콩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과장된 통계가 유포되었죠. 홍콩 시민들은 충격을 받고 즉시 내륙 중국인을 극렬히 배척합니다. 홍콩 정부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전인대는 종심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출생 당시에 부모 1인 이상이 홍콩 영구거민 자격을 취득했어야 그 자녀의 홍콩 거류권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 기관이 최종심을 뒤집는 해석을 내버리면 종심법원의 권위는 뭐가 되는지 의문입니다.

 

법치주의를 수호한다면서 종심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인대에 쫄랑쫄랑 달려간 홍콩 정부의 행동은 비난의 소지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법조인들이 사법권 침해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메뚜기 같은 '대륙인(홍콩에서 내륙 중국인을 가리키는 비칭)'들의 대거 상륙을 혐오하는 홍콩 시민들이 정부와 뜻을 함께했습니다. 이걸 보면 홍콩 사람들이 진짜 중시하는 가치가 과연 법치와 사법 독립인지 아니면 '대륙인' 배척을 통한 밥그릇 지키기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여하튼 이 사건은 시민들과 정부가 '대륙인 아웃'이라는 기치 하에 대동단결한 몇 안되는 경우입니다. 이 증오와 배척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도도히 전해 내려오고 있어서 홍콩에서 중국 표준어를 쓰면 경멸의 눈빛이 돌아오기가 예사입니다. 자기네들도 어릴 때나 아니면 끽해야 부모/조부모 때 내륙에서 왔으면서도 그럽니다. 트럼프가 하는 짓이랑 뭐가 다른가 싶어서 우려스럽습니다. 이건 나중에 홍콩 로컬리즘 이야기랑 엮어서 별도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2. 행정장관 선거 방식 (2004)

 

두 번째는 행정장관 선거 방식에 대한 유권해석입니다. 홍콩 기본법 45조에서는 최종적으로 보통선거를 통해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본법의 첨부 문서(annex)는 행정장관의 선출방법과 입법회의 구성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선거제도 개편은 입법회 전체의원 3분의 2 이상의 통과로 의결하고 행정장관이 동의하면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보고하여 비준을 득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2004년도에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순전히 자기 권한으로 이 첨부문서에 대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행정장관이 먼저 전인대에 선거제도안을 보고하면 전인대가 그 필요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센트럴 점령의 도화선이자 지금까지도 논쟁 중인 선거제도에 관해 전인대가 유권해석의 방식으로 의중을 밝힌 첫 사건이었습니다. 홍콩에서 따로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인대가 선제적으로 홍콩에 감놔라 배놔라 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3. 행정장관 사퇴 후 잔여 임기 처리 (2005)

 

초대 행정장관 퉁치화가 2005년 초에 임기 종료를 2년 남기고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사표를 냈습니다. 2003년도에 기본법 23조(보안법) 관련 시위 뒤처리도 마뜩찮았고, SARS 사태가 터져서 경제 꼴도 말이 아닌 상황인데 후진타오한테 욕까지 들어먹었습니다. 사퇴 후의 잔여 임기를 새 행정장관이 채워야 하는지의 문제를 두고 새 행정장관인 도날드 창이 유권해석을 요청했습니다. 전인대는 도날드 창 편을 들어서 그가 잔여 임기를 채우되, 선거 조례를 개정해서 해당 내용을 규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날드 창은 2007년까지의 잔여 임기를 완수하고 선거에 당선되어 5년의 본임기를 채운 후 2012년에 퇴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공식 지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부정부패로 징역 20개월 받았지요.  

 

 

 

 

 

4.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vs FG Hemisphere 재판과 국가면제 (2011)

 

홍콩에 상장한 중국 국유기업 중국철도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채광권을 획득한 대가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2억여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펀드회사인 FG Hemisphere Associates LLC가 1억 달러 이상의 콩고민주공화국 채권을 갖고 있었지요. 이 미국 회사는 잡았다 요놈, 하면서 채권을 행사하려고 홍콩 법정에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건을 이해하려면 국가면제(state immunity)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면제는 국가평등의 원칙에서 파생된 관행으로, 외국 영역 내에 있는 주권국가의 국가기관이나 그 행위가 영역국 국내법의 적용으로부터 면제받는 것을 뜻합니다. 즉 콩고민주공화국이 주권면제를 인정받으면 홍콩 법정의 판결을 따를 의무가 없고, 인정받지 못할 경우에는 홍콩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면제에는 절대적 면제와 상대적(제한적) 면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 면제는 주권 평등의 원칙을 절대시해서 모든 국가활동에 대해 면제를 인정하는 입장입니다. 반면 상대적(제한적) 면제는 국가활동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하여 공적 활동만을 면제 대상으로 인정하는 입장입니다. 참고로 홍콩은 반환 전에는 영국의 제한적 면제원칙에 따라 상거래 상대국으로서의 외국 정부에 대해서는 면제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중국은 절대적 면제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반환 후 이 국가면제의 적용 문제가 최초로 불거진 것이 바로 이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vs FG Hemisphere 재판이어서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제청하게 된 것입니다. 

 

원심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중국철도 간 거래가 공적 활동인 국제 원조에 속하기 때문에 국가면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고 원고(FG Hemisphere)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FG Hemisphere가 홍콩 법정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한테 채권 추심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항소 법정에서는 상업 거래로 보아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중국철도는 이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습니다. 홍콩 종심법원은 원심 판결과 동일하게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임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종심법원의 5명 법관들 의견이 3:2로 갈리면서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제청하고 그 결과를 참조하여 최종 판결을 내리기로 합니다.

 

유권해석 지지 3인은 국가면제가 주권국의 외교 업무에 해당하며 그 적용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통일성을 이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주권국이 아닌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중국 내륙과 다른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 2인은 보통법 체계 내에서 국가면제는 사법 사안이지 행정 사안이 아니므로 유권해석을 요청할 필요 없이 홍콩 법정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홍콩에서 제한적 면제가 오랫동안 적용되어 왔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일국양제와 사법 독립뿐 아니라 비즈니스 신뢰성 확보에도 유리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국가면제가 외교 사안이며 외교권은 중앙정부가 행사하므로 중국의 절대적 면제 원칙을 따라 콩고민주공화국에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종심법원은 이 해석을 참조하여 콩고민주공화국과 중국철도 쪽의 손을 들어줍니다.

 

 

 

5. 입법위원 취임 선서 (2016) (2016/11/21 - [중점추진사업/홍콩] - 홍콩 입법위원 당선 취소 사건)

 

2016년 9월에 입법위원 70인이 선출되었고 10월에 그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이때 홍콩 자결파에 속하는 Youngspiration 정당의 두 젊은 위원이 주어진 선서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중국을 노골적으로 모독하는 비속어 등을 사용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베이징 중앙정부는 취임 선서 관련 내용을 규정한 기본법 104조의 해석을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그 해석에 따르면 홍콩 입법위원 선서에는 기본법을 준수하고 홍콩특별행정구에 충성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며, 정해진 선서문을 정확·완전·엄숙하게 낭독하기를 거부하면 공직에 취임할 수 없고 재선서도 불가능합니다. 이 해석과는 별개로 홍콩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했고, 이때 유권해석과는 별도로 기존 법률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긴 했습니다만 둘은 결국 당선 취소를 당합니다. 

 

 

6. 홍콩 국가보안법 (2020)

2020년 5월 22일, 중국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의회를 대신하여 홍콩 국가보안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고 이는 5월 28일 대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기본법 23조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홍콩 입법회의 주도로 제정한 것이 아니라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기본법 23조에 대한 유권해석을 실시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처벌 규정에 관해서는 제23조에 "홍콩 기본법 23조 위반 사건에 대한 처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전인대의 결정에 의한다"라는 부칙을 삽입하여 2020년 7월 1일부터 시행했습니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2019년도의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와 같은 반중국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홍콩의 사법 독립을 침해할 뿐 아니라 홍콩 시민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실질적 사망 선고와도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동을 선동하고 중앙 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하여야 하며 외국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가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정치 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홍콩특별행정구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가 외국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제23조)



#. 나가며

 

법치사회 홍콩이라는 이념은 그 실질이 어떻든 간에 홍콩인의 자기 정체성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가운데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기본법 유권해석은 종심법원으로 상징되는 홍콩의 사법 독립에 강력한 타격을 날립니다. 특히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먼저 나서서 유권해석의 형식으로 내정에 간섭한다거나 홍콩 행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상황은 보통법의 삼권분립 원칙이 중국의 통치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특히 홍콩 행정부가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쪼르르 달려가는 행태는 향후 중국과 홍콩의 권익이 충돌할 때 행정부가 과연 시민들을 대변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냅니다. 이번에도 친중파 행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앞으로 어떤 사안에 어떤 절차로 유권해석이 시행될지 눈길이 갑니다.

 

 

 

더보기

 

장정아 교수 논문 여러 편

 

Lam, Lui and Wong(2012), Contemporary Hong Kong Government and Politics, Hong Kong University Press.

 

https://namu.wiki/w/%EC%A4%91%ED%99%94%EC%9D%B8%EB%AF%BC%EA%B3%B5%ED%99%94%EA%B5%AD%20%ED%99%8D%EC%BD%A9%ED%8A%B9%EB%B3%84%ED%96%89%EC%A0%95%EA%B5%AC%20%EA%B8%B0%EB%B3%B8%EB%B2%95 (홍콩 기본법 번역 전문)

 

https://qz.com/828713/a-brief-history-beijings-interpretations-of-hong-kongs-basic-law-from-1999-to-the-present-day/

 

http://news.xinhuanet.com/english/2016-11/08/c_135812367.htm (5번 관련 유권해석 전문)

 

http://www.info.gov.hk/gia/general/201108/30/P201108300217.htm (4번 관련 프레스 릴리즈와 유권해석 전문)

 

http://www.onlinedmc.co.uk/index.php/Democratic_Republic_of_Congo_v_FG_Hemisphere_Associates

 

http://wednesdayjournal.net/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page=434&no=18327

 

https://legal.seoul.go.kr/legal/front/page/counsel.html?pAct=qa_view&pNo=3661&pTreeOpenId=qa

 

http://www.lexology.com/library/detail.aspx?g=b1565d88-f1cc-408b-9f77-5bd5dab40a1e

 

http://www.legalbusinessonline.com/news-analysis/case-analysis-democratic-republic-congo-and-ors-v-fg-hemisphere-associates-llc/64049

 

https://m.mayerbrown.com/Files/Publication/64f67ea4-f484-420b-b17a-350bb3457eac/Presentation/PublicationAttachment/830198d4-e990-4b07-9098-0d6a605f237f/11114.pdf

 

https://hub.hku.hk/bitstream/10722/152685/1/content.pdf?accep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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