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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화장품 용어 정리 (1)

bravebird 2015. 4. 5. 23:54

몇 달 전에 중국 친구들이 놀러 와서 실컷 놀고 화장품도 왕창 사간 적이 있다. 마당발에 손도 크다 보니 자기 주변 사람들 돈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5-6인분 쇼핑을 한꺼번에 해갔다. 친구들이 정산 자료 만드는 걸 도와주다가 중국어 화장 용어를 여럿 주워듣게 되었는데, 예전에 틈틈이 적어둔 것과 합쳐서 총정리 해보았다. 설명하다가 관련된 다른 표현이나 문법 설명을 곁들였다. 


토너(스킨)는 피부를 상쾌하게() 해주는 액체이기에 , 로션은 유분이 있는 크림이라서 乳液이라고 한다. 이 토너나 로션을 바르는 동작은 바를 말()이나 문지를 찰()을 사용한다. 친구 말로는, 전자는 보통 북중국에서, 후자는 남중국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상쾌(爽快)하다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는 유쾌 상쾌하고 후련한 기분을 나타내는 감정 형용사로만 쓴다. 중국에서는 사람 기질이 시원시원하고 호쾌하다는 성격 형용사로서의 뜻이 기본이다. 물론 상쾌하고 후련한 기분을 말할 때도 쓰지만, 그때는 쾌 자를 뺀 을 더 자주 쓴다. “做完作业感觉很爽。(숙제를 다 하니 속이 시원하다.)“

 

화장을 지우거나 토너를 묻혀 두드릴 때 쓰는 화장솜 化妆棉이라고 한다. 솜은 목화로 만드니까 목화 면 자. 스펀지를 해면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도 海绵 그대로이다. 해면체 생물 할 때 바로 그 해면인데 그게 어의가 확장돼서 스펀지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된 게 흥미롭다. 참고로 스펀지밥 중국어 번역명은 海绵宝宝이다. 는 보석 보() 자의 간체로, 두 글자 연달아 쓰면 귀염둥이라는 뜻. 아기나 연인을 부르는 애칭으로 쓰인다. 스펀지밥이 과연 귀염둥이가 맞는지는 의문이나, 술 몇 잔 걸치고 나서 스펀지밥을 배속 재생하면 high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추천 에피소드는 jellyfish jam. 내 생각에 PD 이거 만들 때 약 빨았다.

 

 ▲ Jellyfish Jam 명장면

 

에센스는 말 그대로 정수만 뽑아 모은 액체이므로 이라 한다.   모두 각각 정수, 알짜배기를 의미하며 둘이 붙여 쓴 ‘정화’ 역시 같은 뜻이다. 수분 크림은 피부()에 윤기()를 더해 주는 크림이라는 의미에서 润肤이라고 한다. 수분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水霜이라고도 한다. 피부에 바르는 크림 종류를 일컬을 때 주로 서리 상() 자를 쓴다. 보너스로 핸드 크림은 손을 보호()해주는 크림이므로 手霜이라고 부른다.


 ▲ 여러 크림(霜)의 종류

 

수분까지 보충했으면 자외선을 막아주는 선크림, 을 빠뜨릴 수 없다. 는 쬘 쇄 자로, ‘햇볕을 쬐다()’ 혹은 햇볕에 말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햇빛에 타는 것을 막아() 주는 크림이다. 참고로 햇볕에 타는 것은 결과보어로 검을 흑 자를 붙여 라고 말한다. “黑了.(나 햇볕에 탔어.)” 미용 용도로 일부러 태우는 선탠美黑라고 한다.

 

각 언어의 문법에는 고유한 특징이랄까 매력포인트가 있다. 일본어와 한국어에는 매력포인트라기보다는 분노유발자인(...) 존대법이 있다. 유럽어 세계에는 처음 배울 땐 어렵지만 한번 익히면 이만큼 유용한 게 없는 관계대명사 체계가 만개해 있다. 영어의 핵심 포인트는 아무래도 분사일 테고, 이 분사는 책임소재를 교묘하게 감춰주는 사회생활 전가의 보도, 수동태와 직결된다. 여기서 전가의 보도는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传家 전할 전, 집 가) 보물과 같은 칼이라는 뜻이다. 수동태는 과연 대대손손 내려오는 전가(传家)의 보도일까, 책임 전가(转嫁)의 보도일까?!??! (…) 여기서 또 흥미로운 것이, 책임 전가 할 때 쓰는 转嫁 는 구를/옮길 전 자에 시집갈 가 자를 쓴다. 글자를 뜯어보니 원래 재가한다는 의미였던 것. 갑오개혁 때 허용됐다는 그 과부 재가. 결국 책임 전가는 책임을 새시집 보내서 치워버린다는 뜻이다.


 ▲ 집안에 내려오는 보도 


다시 각 언어 문법의 매력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중국어는 보어가 매우 흥미롭다. 한국어에서는 물건을 찾는 동작 그 자체든 찾아서 발견해내는 것이든 모두 찾다라는 한 표현을 쓰고 문맥으로 의미변별을 한다. 영어에서는 search find라는 별개 단어로 구별해 쓴다. 중국어에서는 결과보어를 써서 둘을 구별한다. 찾는 동작 그 자체이자 아직 발견은 못한 단계인 search , 그 결과 뭔가 찾아낸 상태인 find는 도착할 도() 자를 결과보어로 붙여 找到가 된다. 아주 쉽고 직관적이고 체계적인 문법 시스템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어의 꽃으로 여긴다.

 

 ▲ 결과보어 好와 到가 쓰인 예문


이 보어와 관련하여 원래 테마인 화장품을 갖고 예를 들어보자면, 선크림을 쓰는 건 인데 다 써서 없어지면  뒤에 결과보어를 붙여야 한다. 이때 어떤 보어를 쓸까? 뜬금없게도 빛 광. 다 써서 텅텅 비어버리는 걸 用光이라고 하는 거다. 밥을 깡그리 먹어치웠으면 吃光, 아예 싹싹 핥아서 그릇이 번쩍번쩍 빛날 지경이면 강조체로 吃光光이라 하면 된다.

 

 하면 잊을  없는 단어로 光头 있다. 光头    머리 두(頭) 자의 간체다. 빛나리라는 뜻이다. 웬만해선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단어다.


 ▲ 소림축구의 조미... 지못미...


굽이굽이 딴얘기를 지나 다시 원래 이야기인 화장으로 돌아와보자. 마스크은 얼굴에 붙이는 막()이기 때문에 面膜라고 한다. 얼굴에 펴서 붙이니까 동사는 펼 부 자를 써서 敷面膜라고 한다. 그냥 일반적인 하다 동사인 를 써서 做面膜라고 할 수도 있다. 재미난 것은, 바르는 종류의 마스크팩도 어쨌든 일종의 막이긴 막이니까 똑같이 面膜라고 한다는 점. 유사품으로 밤에 바르고 잔 다음 아침에 씻어내는 나이트 크림 이다. 이걸 사전에서 찾으면 늦서리라고 나올 듯. 늦을 만() 자는 중국어에선 밤이라는 뜻의 명사로도 쓰인다. 서리 상 자는 아까 언급한 대로 얼굴에 바르는 크림 종류.


 ▲ 짐 캐리 마스크? 


나이트 크림이랑 바르는 마스크팩은 이름만 다른 건지 기능도 다른 건지 잘 모르겠는데, 혹시나 별도 품목이라면 화장품업계의 시장세분화(라고 쓰고 상술이라 읽는다) 기술은 참 대단하다. 시장세분화 场细 혹은 场划이라 하고, 상술은 상업전쟁의 기교이기에 技巧로 옮긴다. 마케팅은   모두 가능한데, 전자는 팔다라는 뜻의 두 한자(, )가 결합한 단어여서 판매, 매출, 영업의 의미가 강한 반면, 후자는 추진하다 추동하다 추천하다, 그리고 서정주 추천사(그네밀기) 할 때의 밀 추()자가 쓰였기에 판매를 촉진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평소에 피부에 신경쓰는 것을 말 그대로 관리하다(管理)’라고도 하지만 보양하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몸을 보양하다, 원기를 보양하다라고는 해도 피부 보양은 어색한 조합이다. 중국어에서는 피부 보양이 말이 되는 것이다. 한자문화권끼리 어휘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용례는 조금씩 달라서 자국 한자어를 그대로 쓰다가 오히려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데, 이게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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