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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화장품 용어 정리 (2)

bravebird 2015. 4. 6. 00:10

지난번의 지난한 기초화장(础护)을 끝낸 다음 본격적인 색조화장() 준비를 해보겠다.  간호하다, 돌보다 등의 의미인데, 중국에서는 화장 한번 하려고 피부를 간호해 준다고 생각하나 보다. 색조화장 彩妆에서 는 색채, 채도 할 때 쓰는 글자라 상식적인 번역이다. 내 얼굴에 본래 없었던 색을 입히는 과정, 이걸 해야 화장한 티가 난다. 그런데 바로 아랫문단부터 소개할 피부 표현도 색조화장에 들어가나? 기초화장인가? 그것은 필자는 잘 모르겠으며, 화장학 개론은 이 글의 포커스인 듯 사실은 아니므로 패스한다.

 

메이크업 베이스는 파운데이션 전에 발라 파운데이션의 퍼짐과 밀착 상태를 좋게 만들어주고 피부톤도 조절해준다. 이뿐 아니라, 자외선 등의 물질과 피부를 격리시켜 주기 위해 바르는 크림형태기 때문에 隔离霜이라고 한다. 격리 크림  정직하기 짝이 없는 번역어... 역시 주체적인 대륙의 기상! 

 

파운데이션은 분 바르기 전에 분이 얼굴에 잘 묻어 있으라고 바로 그 밑바닥()에 발라주는 기초이기에 粉底霜이라고 부른다. 기저, 해저 할 때 그 밑바닥 저 자다. BB크림은 그대로 BB. CC크림도 마찬가지. 비비솽, 씨씨솽. 컨실러는 흠결을 가리는 연고라는 말뜻 그대로 遮瑕膏이다. 차단하다 할 때 쓰는 막을 차, 티 하, 그리고 연고, 고약 할 때 쓰는 기름 고.

 

컴팩트는 분이니까 그대로 이라 한다. 뒤에 칠 박 자를 붙인 粉扑는 컴팩트를 묻혀 톡톡 두드리는 용구인 파우더 퍼프가 된다. 이 칠 박 자를 동사로 써서 扑粉이라고 하면 컴팩트를 하는 동작이 된다. 문지를 찰 자(擦粉)나 바를 말 자(抹粉)를 대신 써도 무방하다.

 

 

이렇게 가루 형태의 분은 흩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흩을 산 자를 써서 散粉. 이런 형태는 아직 못 봤는데 나만 못 봤나? 아마 옛날에는 이런 제형이 많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휩쓸었다던 박가분 같은 것.

 

 

이렇게 압축된 고체 형태로 되어 있는 고형분, 흔히 말하는 컴팩트는 이라고 한다. 이때 은 전병이나 월병(, 중국인들이 중추절(추석)에 먹는 과자) 할 때 바로 그 떡 병자다. 둥글넓적한 모양을  자로 형용하기 때문에 컴팩트도 이 되었다. 컴팩트를 떡 병 자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비원어민은 연상하거나 구사하기가 어려운 그 언어만의 고유한 어감이랄까 비유법이다. 이런 걸 주워듣고 익히면서 외국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외국어 공부의 묘미인 것 같다. 참고로 이 컴팩트는 피부화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고정해 주는 분이므로 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이건 어감상 일상 용어라기보다는 업계 전문 용어 같다.

 

혈색을 강조해서 생기를 주고 싶을 때는 블러셔를 가볍게 바른다. 뺨을 붉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뺨 시, 붉은 홍 을 써서 腮红이라고 한다. 동사는 중국어 만능 동사인 를 사용. 택시 잡을 때도(), 할인할 때도(打折), 카드놀이 할 때도(打牌), 컴퓨터 할 때도(电脑), 전쟁할 때도(打仗), 뭔가 물어볼 때도(打听) 쓰는데 심지어 블러셔 바를 때도 쓰다니. 칠 타 자인데, ‘치다(hit)’라는 원래 뜻이 무색할 정도.

 

그 다음은 인상을 좌우한다는 눈썹을 그려볼 차례. 내 친구가 고등학교 때 눈썹을 새로 기르려고 빡빡 밀고서는 아침마다 그리고 왔다. 그걸 본 친구 아버님 왈, “넌 아침마다 얼굴에 무슨 난을 치냐.” (…) 그러고 보니 난을 치다라는 우리말 조합도 재미나다. 아마 그물 치다, 거미줄 치다 할 때 그 치다인가 보다. 이렇게 눈썹을 그리는 것은 말 그대로 그릴 화 자나 묘사하다 할 때 묘 자를 써서  혹은 描眉라고 한다. 눈썹 미 자에 털 모 자를 붙여서 眉毛라고 해도 역시 눈썹이라는 의미다. 눈썹 그릴 때 쓰는 아이브로우 펜슬眉毛라고 한다. 붓 필 자를 붙인다.


▲ 눈썹 그리기 


눈썹을 그렸으니 아이라인도 해야겠지. 아이라인은 눈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눈가에 선을 긋는 것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线. 동사는 말뜻 그대로 그릴 화 자를 써서 线. 펜슬형이나 붓펜형 아이라이너 모두 붓 필 자를 덧붙여 线笔이라고 한다.


▲ 아이라인 그리기 


눈가에 음영을 주고 싶다면 아이섀도우를 쓰게 된다. 영어 번역어를 그대로 옮긴 그림자 영 자를 써서 眼影라고 부른다. 동사는 자동차 도장공정, 도료(=페인트) 같은 단어에 들어간 칠할 도 자, 혹은 바를 말 자를 써서 涂眼影, 抹眼影이 된다.

 

▲ 대지색 계통 아이섀도우

 

조신한 출근용 화장의 기본 색조인 베이지와 브라운 계통 아이섀도우. 모두 땅(대지)의 색채이기에 대지색 계통(大地色系)이라고 부른다. 화장품 뿐만 아니라 옷 색깔을 일컬을 때도 사용하는 패션업계 고정 콜로케이션(固定搭配)이다.

 

섹시함의 지름길, 클럽용 화장의 대명사 스모키 화장은 烟熏. 연기에 그을린 스타일의 화장이라는 뜻이다. 눈에 연기 자국 대신 반짝임을 입히고 싶다면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우를 쓰면 된다. 화장품에 함유된 펄은 진주 주 자를 써서 珠光이라고 한다. 아예 아무 것도 안 바른 듯한 누드 화장은 裸이다. 나체 할 때 나 자를 쓴다. 

 

마스카라(睫毛膏)로는 속눈썹을 길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마스카라 역시 바르는 제품이기 때문에, 똑같이 칠할 도 자나 바를 말 자를 써서 涂睫毛膏 抹睫毛膏와 같이 표현한다. 속눈썹을 집어 올리는 뷰러 睫毛라고 한다. 는 낄 협 자로, ‘끼워 집다, 겨드랑이에 끼다, 둘 사이에 끼다,클립, 집게 등의 뜻이 있다. 뷰러는 벌어진 틈새에 속눈썹을 껴서 집는 기구이므로 를 사용. 참고로 뷰러는 영어로 eyelash curler라 하고, 일본의 뷰-(ビュ--)에서 나온 고유명사가 일반명사화한 경우라 한다. beauty+curler의 조합이라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입술. 다른 건 다 스킵해도 꼭 한다는 입술. 립스틱은 입을 붉게 만들어주니까 말 그대로 口红이고, 동사는 앞의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擦口红이라 하면 된다. 입술 트는 것을 방지해주는 립밤은 입술 순에 기름 고를 써서 唇膏. 입술에 색깔을 입히는 립스틱, 틴트, 립글로스 등속의 총칭唇彩이다.


 

립스틱이 옛날 이름으로는 입술 연지였다. ‘연지구(Rouge)’라는 홍콩 영화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귀신이 되어 나타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어쩐 일인지 1980년대 후반 최초 수입 당시에 번역이 잘못되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인지구로 알려졌었다. 홍콩의 최고 인기 연예인이자 단짝 친구였고 지금은 모두 거짓말처럼 작고한 매염방과 장국영이 연인으로 분했다. 감독인 관금붕은 남성 동성애자인데, 여성의 심리를 세세하게 그린 작품들로 유명. 왕가위 감독과 함께 80-90년대에 시작된 홍콩 뉴웨이브를 주름잡은 감독이다. 어렵게 어렵게 구해 본 지하정, 인재뉴약, 완령옥 등등 모두 기억에 남지만 모든 작품에 상실과 허무함의 정조가 뭉게뭉게 깔려 있다. 왕가위 영화도 그렇고 관금붕 작품도 그렇고, 중국 반환을 앞둔 당시 홍콩 사회의 한 반영일 것이다.

 

한국어에서 패션/화장 관련 용어는 전혀 번역을 거치지 않은 외래어 일색이다. 나이 지긋한 분이 화장품 가게에 가거나 잡지를 읽을 때 과연 뭐가 뭔지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중국 사람들은 번역 과정을 거쳐서 외래어를 모국어와 조화시킨다. 외래어가 들어오면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国家语言与文字工作委员会)라는 국가 기관에서 한번 싹 번역을 해서 배포한다고 하는데 이 정부기구의 웹사이트 주소는 http://www.china-language.gov.cn/ 이다. 안타깝게도 영문 버전이 없어 샅샅이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이곳에선 외래어 번역어뿐 아니라 한자 필순 같은 것도 표준화해서 배포한다고 한다. 국가 차원에서 단어를 관리한다는 것이 다소 통제적이기도 하지만, 외국 문물을 자국 언어로 번역해내어 자기화하는 한자의 조어력도 대단하고 중국 사람들의 주체적인 태도도 본받을 만하다. 중국인들의 중체서용 정신이 언어생활의 면면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이상 짧은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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