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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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인도 웨스트 벵갈 칼림퐁 셋째날

bravebird 2024. 5. 17. 13:01

천국에서의 여유로운 하루. 현재고도 1228m 정도인 칼림퐁은 낮엔 좀 더워도 저녁에는 꽤 시원하며 에어콘은 필요 없다. 매일 샤워와 빨래가 가능하다. 방안에 조금 습도가 있을 따름이다.


숙소에서 챙겨주시는 조식



아침을 먹고 더핀 사원 쪽으로 올라갔다. 시장통 랜드마크인 Dambar Chowk 바로 옆 DS 구룽 로드의 택시스탠드에서 Div Chowk 또는 Durpin Monastery 가는 셰어택시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단돈 40루피다. 오늘 만나러 가는 셰르파 아주머니가 출근길에 같은 차를 타러 오셨길래 너무 반가웠다.


더핀 사원
더핀 사원
헬레나 레릭 묘
군부대 운동장에서 본 경치



우선 더핀 사원부터 올라갔다. 이곳엔 니콜라이 레릭의 부인 헬레나 레릭이 묻힌 스투파가 있고 눈앞이 트여 양지바른 곳이다. 이곳의 군부대에 속한 운동장이 경치가 너무 좋길래 멋모르고 들어갔다. 군인 아찌들이 오더니 민간인은 올 수 없다면서도 5분 정도 삥 둘러 경치 구경을 시켜 주면서 씩 웃으셨다. 운무가 걷힌 날엔 여기서 티스타 강뿐만 아니라 칸첸중가 산군까지 보인다고 했다. 아찌들이 오기 전에 사진도 몇 장 찍었었는데 전부 보여 드리고 이런 건 괜찮다는 허락도 받았다.


아미 스쿨

군부대 도서관의 불레틴보드. 재밌어 보이는 책들 많음. 2022년에는 군인의 허락을 구하고 들어가서 구경도 함.



근방에는 아미 스쿨도 있는데 민간인 자녀는 시험을 통해 총인원의 10프로 정도를 선발한다. 숙소 주인 아저씨의 아들이 여기 8학년으로 다닌다.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저녁 때 숙소에 들어갈 때마다 카운터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칼림퐁 아미 골프 코스 (2022년 12월 사진)



근처에는 또 군부대 골프장도 있어서 여권을 보여주면 출입이 가능하다. 경치가 아주 좋지만 저번에 가봤기도 하고 구름 때문에 시야가 또렷하진 않은데다 거길 들어가면 다음 장소까진 걸어가야 해서 이번엔 생략했다. 이번에 군대, 공무원, 여권 검사 등등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겨서 그런 것도 있다.


크루케티 하우스. 대중에게 개방된 곳이 아닌 것 같아 무작정 방문은 안되는 것 같다. 나는 처음에 알렉산더가 소개해 줬고 이곳의 매니저와 친분이 생겨서 미리 연락하여 갈 수 있었음.
도마뱀 침입


더핀 사원에서 Div Chowk으로 돌아와 크루케티 하우스로 셰어택시를 타고 내려갔다. 이곳은 헬레나 레릭이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아들 유리 레릭과 함께 말년을 보낸 아름다운 저택이다. 레릭 가족은 히마찰 프라데시의 마날리에서 한 시간쯤 내려가면 있는 쿨루 밸리의 나가르에 정착을 해서 살았었으나, 니콜라이 레릭이 세상을 떠난 후 보다 따뜻한 칼림퐁으로 이주해 왔다.

이번에 다람살라 갔다가 쿨루도 갈 거라서 이 동네 친구에게도 어제 미리 연락해 놨다. 달라이 라마 설법은 6월 3-4일이고 나가르 친구는 6월 15일 이후부터 일정이 있다고 하니 그전에 도착을 하려면 원래 중간에 보드가야 바라나시 쿠시나가르 산치 마투라 등등 불교 성지 및 불교미술 유적지에 가려던 일정은 고민이 필요하다.


크루케티 하우스 소개글
책 구경
제일 위의 책은 내가 부탄 파로에서 만난 저자가 쓴 책

나가르 및 레릭에 대한 내용만 쏙 골라 읽음
사진집인데 설명글도 꽤 좋음
스뱌토슬라프에 대한 책. 대부분 다 읽음.
매우 재밌어보이는 책
스뱌토슬라프 레릭이 그린 네루 초상. 인도 국회의사당에도 스뱌토슬라프가 그린 네루 및 인디라 간디 등의 초상이 걸려있다고 함.
레릭의 여행 루트

https://www.deccanherald.com/india/karnataka/from-russia-with-love-the-svetoslav-story-1204724.html

From Russia, with love: The Svetoslav story

www.deccanherald.com



칼림퐁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스코틀랜드 선교사 그레이엄 박사도 이 집에 살았다. 이후 부탄 공주의 소유가 되었다가 헬레나 레릭에게 팔렸다. 지금은 헬레나 레릭이 활동했던 아그니 요가 단체의 소유가 되어 그곳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셰르파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계신다. 이날은 아그니 요가 단체를 이끄는 이탈리아인 두 분도 와계셨다. 이날 아주머니는 회계 일을 보느라 매우 바쁘셔서 얘길 나눌 새가 없었다. 건물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방명록에 글을 남긴 다음 소파에 앉아 책꽂이의 책을 꺼내서 오래오래 읽었다. 사진집도 보고 레릭의 둘째아들이자 화가였던 스뱌토슬라프 레릭에 대한 책도 보고. 또 SW Laden La라는 부티아인에 대한 아주 재밌는 책이 있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아 다 못 읽었는데 이북도 안 팔고 책도 절판이 됐다. 진짜 필요한 내용이라 필사적으로 구글 검색을 해서 PDF를 찾을 수 있었다.


닥터 그레이엄 홈스 스쿨. 영어로 수업하는 칼림퐁 지역 명문 보딩스쿨.
교회 내부
몇 년 전 지진이 나서 현재 외관 개보수 중인 교회의 내부



3시 반까지 숙소에 돌아오기로 약속을 한 터라 일찍 떠났다. 숙소 아저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 산책을 하시는데 구경시켜 준다고 같이 가자 하셨다. 숙소에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닥터 그레이엄 홈스 스쿨도, 개보수 중인 교회당도 봤다. 거의 델로 뷰포인트 인근까지 갔다가 동네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창밖을 내다보며 인사해 주신 이웃집 아저씨 집에 잠깐 차를 마시러 들어갔다. 숙소 아저씨와 같은 타망족이었고 두 아저씨 다 선조가 네팔 솔루쿰부 출신이라고 한다. 타망족은 구르카를 구성하는 부족 중 하나로 강인한 산악민족이다. 이 분은 현재 부동산 사업을 하신다. 집이 진짜 넓고 깨끗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중에 다르질링 차를 한 잔 하면서 숙소 아저씨랑 여기 집주인 내외와 아들과 둘러앉아 시간을 보냈다. 너무 그리울 것 같은 한가롭고 평화로운 초저녁이었다.


산책로
칼림퐁은 온화해서 집집마다 화분을 많이 키운다
화려한 꽃이 피고 참나무도 대나무도 야자수도 많은 칼림퐁



칼림퐁에서 살라면 진짜 살 수가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번 지내보고 싶다. 마침 부동산을 하신다길래 월세를 한번 여쭤봤다. 모든 가전과 집기가 다 갖춰진 1인용 스튜디오를 1만~1만5천 루피(16만원~24만원)면 렌트 가능하니 말만 하라고 하셨다. 인도에선 보통 보증금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3개월 정도 살 거면 보증금이 아마 없을 것 같단다. 1년 계약 기준으로 중개수수료는 1개월분 월세를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진지하게 끌렸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일을 한다면 칼림퐁에 사는 게 가능할 거라고 본다. 그냥 3개월 정도면 백수로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살아도 좋다. 난 평생 빌어본 소원이 별로 없고 절간에 가도 기도할 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일단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 10년이 넘게 걸리더라도 어쨌든 진짜 해버린다. 그러니까 칼림퐁에 지내 본다는 것은 아마 나의 오래된 미래가 될지도.


숙소에서 만들어주신 치킨모모



이날 숙소에서 저녁마저 챙겨 주셔서 난 식비도 한푼 쓰지 않고 너무 알찬 하루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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