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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이날은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오전 시간만 있었다. 타이완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국부기념관과 중정기념관은 꼭 방문해야 할 것 같았다. 타이완이랑 단교하고 중국이랑 수교할 때, 명동대사관을 3일만에 비우라고 하는 바람에 외교문서를 다 실어가지도 못하고 대사관 마당에서 태워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타이완은 한국을 별로 곱게 보진 않는다. 처절하게 배신했으니 타이완 역사에 대해서 예의라도 보여야지 ㅠㅠ 실제로 타이완 역사에 나름 경의를 표할 만한 게, 상당히 발전되어 있으면서도 물가 수준도 안정돼 있고 민주주의도 진통 끝에 꽤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외교적으로 아주 고립돼 있으면서도 내실 있는 발전을 이뤄냈다는 느낌. 한국이 잔인하게 배신을 때렸는데 앞으로 남부럽지 않게..
푸쉬킨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 뿐이어서, 여름에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민음사판 푸쉬킨 선집을 빌렸다. 전권을 다 읽진 않고 몇 작품만 발췌독. 먼저 〈보리스 고두노프〉. 죽은 줄 알았던 황자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와 나라가 뒤집어진 동란시대를 그렸다. 여러 이설이 있기는 하나,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위 계승자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리스의 치세에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민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수도승 하나가 승복을 벗고 황제의 의관을 입기로 마음 먹는다. 보리스가 죽이려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황자가 바로 자신임을 주장하던 그는, 마침내 보리스의 아들을 죽이고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찬탈자에게 황위를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