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쿰부 3패스 트렉 중 상념 본문

여행/남아시아

네팔 쿰부 3패스 트렉 중 상념

bravebird 2024. 4. 27. 00:35

*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그 현장에 일단 가라. 예컨대 쿰부 에베레스트 트렉을 하고 싶다면 카트만두부터 일단 가서 타멜을 돌아다니며 묻고 다녀라. 그럼 불과 며칠 뒤에 그곳에 가있을 수 있다. 일단 현장에 가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모여있기에 쉽게 일이 이루어진다.

*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 일단 가볼까? Workaway 같은 방법으로? 일단 가 있기만 하면 일자리를 얻는 것은 허무하게 간단할 수도 있다. 기존에는 회사에 고용되어 있어서 그걸 때려치고 이동하는 게 어려웠을 뿐이다.

* 그러나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하는 걸 과연 내가 좋아할까? 남의 밑에서 남의 돈 받고 일한다는 본질은 그대론데? 다니고 싶은 회사나 해보고 싶은 직무가 전혀 없을 뿐더러 남의 회사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들지 않는다. 거주지를 옮겨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한 임시 수단, 또는 내 일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용의만 약간 있다.

* 그러나 아쉽게도 취직 말고 다른 돈벌이 수단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런 건 차차 생각하고 우선 실컷 놀기로 한 대결정심을 굳게 지키자. 돈벌이는 일단 다 걷고 나서 생각해!!

* 회사생활은 차치하고 해외생활 자체는 즐길 수 있을까? 해외에서 나답게, 물고기가 물 만난 듯이 살 수 있나? 여러 번 생각해봤지만 아닌 것 같아 실천하지 않았다. 몇 년간 단기적으로 배우고 느끼는 것은 많겠지. 분명 재미도 있을 거야. 그러나 장기 정착은 그다지 원치 않는다.

* 한국 자체에는 딱히 애착이 없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주로 내 할일에 집중했기에 인간간계 끈도 대부분 느슨해져 있다. 단 한국에 있으면 모국어로 나 자신을 100% 펼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한국이 어디 붙은 나라인지 등등 외국인 상대할 때 반복되는 개씹노잼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난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너무 싫은데 외국에서 맨날 저런 대화를 반복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 또 나는 전통적인 데가 있어서 연로하신 할머님들이 살아계시는데 멀리 이동하고 싶지 않다. 90이 넘어 100세에 더 가까워진 분들을 두고 해외로 간다는 것은 그분들을 다시 못 뵙는 걸, 장례식에조차 참석 못하는 걸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해외 이주의 최대 억제기 중 하나였다.

* 내향성이 점차 짙어지는 듯 하다. 꼭 필요한 순간에 최소한의 말만 하면서 가만히 쉬고 싶고, 여섯 명보다는 한 명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좋다. 세 명 이상과 이야기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빨리 빠져나가고 싶고 잠이 온다. 또 실은 사람과 만나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조용히 쉬면서 뭔가 구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고 편안하다. 또 난 블로그에는 자기 표현을 하고 있지만 이 이상 다른 곳에는 원치 않으며 내가 모르는 남들에게 나를 노출시키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소리없이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I realize more and more that I am a fiercely private person...

* 눈길이라도 한 번 스치면 무조건 통성명을 하고, 여러 명 모이려고 하고, 뭐라도 한 마디씩 계속 딜을 넣어야만 하는 극외향 유럽인 미국인들의 모임이 극도로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일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면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계속 자기 어필을 하며 외향적인 척 하며 생존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동일한 생각은 이미 10년 전에 하였고 지금도 비슷하다.

* 나한테 합장 인사를 하고 니하오 하고 인사하는 ㅂㅅ 같은 서양 사람들을 한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 산길에서 딱 1초 스치고 지나가는, 그러니까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굳이 저러는 서양인들이 있는데 너무 무식한 것 같다. 내가 하도 걸어서 몸이 피곤해서 인내심이 없어진 건가? 그렇다기에는 호객행위 하는 현지 사람들이나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니하오 곤니찌와 거리는 건 기대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그냥 그러려니 싶은데. 이중 잣대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꾹꾹 참지만 마나가 딸려서 킹받을 때는 하이? 님 러시아 사람임?? 하고 되받아칠까 싶지만 애꿎은 러시아 사람이 뭔 죄인가 싶어 다시금 참는다.

* 알유 프럼 타이완? 이라는 정말 신박한 질문도 들어봤다. 나름 예의 차리려고 알유 프럼 차이나? 대신 그렇게 물어봐준 것 같다. 그런데 타이완인이고 중국인이고 자시고 대체 아예 애초에 산길에서 1초 스쳐 지나가며 얼굴만 본 사이에 다짜고짜 첫마디로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굳이 왜 설명해야 되는지? 그냥 웃으면서 서로 하이! 하고 지나가면 서로 기분 좋고 간단하지 않을까요?

* 살면서 닥치는 일들을 최대한 열심히 해볼 것이다. 그러나 잘되든 잘 안되든 반드시 어떠어떠해야만 하는 건 결국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일단 뭐든 부지런히 애써본 다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를 직접 체험한 후 모든 애쓰던 것들로부터 점차 해방되어 가다가 미련 없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으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와이파이를 안 쓰니까 고요하고 책만 읽고 일찍 자고 좋다. 롯지에서는 안네의 일기, 이중톈 중국사, 부탄의 역사, 칼림퐁의 누들메이커 등등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대하소설을 읽기도 좋은 환경이라 크레마도 한번 사볼 만할 것 같다.

* 당이 부족한지 초콜렛, 아이스크림, 디저트 같은 것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몸에 안 좋은 것이긴 하지만 먹고 싶을 만한 이유가 충분한 상황이다. (실제로 트레킹 후 살이 적어도 2~3kg는 빠진 듯 하다.) 이럴 때는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 아낌없이 먹어야 한다. 이렇게 간절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흔치 않거든. 그런 순간은 꽉 잡아야 해. 그런데 물가가 미친 듯이 비싸서 대부분 참았다. 간절히 먹고 싶으며 또 사먹어야 할 이유도 충분한 상황에서 남이 정한 가격표에 지배당하는 것 같아 조금 비참했다. 가격은 남이 정해서 내미는 것이지만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인데. 내가 정한 것이 중요한 것인데.

* 정찰제가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일까? 아닐 수도 있다. 난 사사건건 네고를 해야 하는 인도 네팔이 처음엔 싫고 두려웠다. 뭘 모르는 외국인이라 참조할 만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뭐든 협상이 가능하며 따라서 남이 정한 가격과 내가 정한 가치를 서로 중간에서 만나게 할 자유도도 높은 것이다. 또 순간순간의 욕구와 수요 공급에 따라 매 순간 쉬지 않고 변화하는 순간순간의 가치를 오히려 더 정직하게 가격에 반영시킬 수도 있다.

* 하여튼 돈돈돈 하면서 한푼두푼 아끼고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가를 지불하고 가치를 실현시켜 보는 것이 좋다. 남이 정한 가격과 내가 인식하는 가치 사이에 괴리가 커서 고민된다면 일단 협상이라도 시도해 보라. 쿰부에서 초콜렛 한 개는 애기 발바닥만한 게 3~4천원씩으로 비싸지만 여러 개를 살 테니 깎아달라고 하면 대부분 해주더라.




* 현지에서 러시아어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다. 러시아 현지는 현금만 사용할 수 있고 카드 사용이 제재받은 상태라 어려울 것 같고, 일주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어 공부를 집중적으로 몇 달 해볼 수 있다면 빠르게 늘지 않을까?

* 중간에 한국에 잠깐 들어가서 보급을 좀 받은 다음에 중국 신장 - 카라코람 하이웨이 - 파키스탄 - 인도로 이동해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반대 방향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 현재 중국 여행 비자를 제3국에서 발급받을 방법이 없다.

* 집만 놓으면 운신에 자유가 생기지 않나?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랑민이 아니고 정착민이라 돌아올 곳은 있어야 한다. 또 나에게 집이란 것은 home이라는 인간관계적 측면은 사실은 약간 부차적이고 house라는 공간적인 실체 그 자체가 매우 의미가 크다. 오직 나한테 속하는,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생활 편의에 맞게 공간 배치를 해놓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공간 그 자체'가 정말 중요하다.

* 여행이 끝나면 등운동, 삼두근, 어깨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요리도 자주 해 먹고 싶다. 운전면허도 따긴 해야겠다. 지금 당장은 간절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여행을 해보고 싶다.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도 좀 궁금하다. 직접 운전해서 음악 틀어놓고 고속도로 달리다가 로키산맥 보면 너무 신날 것 같음.

https://youtu.be/JkRKT6T0QLg?feature=shared

미국에서 운전하면서 들으면 너무 신날 것 같은, 내가 아는 최고의 도핑송 Easy Lover


https://youtu.be/fMtByPKb7lY?feature=shared

역시 미국 여행하면서 운전할 때 들으면 기가 막힐 것 같은 핑크의 Troubles


https://youtu.be/xCorJG9mubk?feature=shared

운전을 하면 매일 틀어놓을 것 같은 록셋의 Joy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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