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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임어당, 유머와 인생

bravebird 2015. 6. 21. 00:07


"정열적이고 유유자적하며 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임어당 저, 김영수 편역, 《유머와 인생》, 도서출판 아이필드, 2003, p.165.

임어당 수필집 《유머와 인생》을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 가져와봤다.

유머감각 있는 사람들과 일하면 확실히 마음이 편하다. 이것저것 잘 베풀기도 하고 일할 때 재량권도 더 많이 허용해준다. 긴장상황도 웃음으로 식혀 주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해준다. 그럴 수 있으려면 우선 정열적이어서 사람들에 대한 정이 있어야 한다. 과정에는 열심이되 결과에 대해서는 유유자적할 줄 알아야 한다. 한편, 남의 서슬에 퍼렇게 질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지킬 줄 아는 겁없는 성격이어야 한다. 이게 유머의 전제조건. 항상 무언가에 집착하여 동동거리는 마음으로부터 유머가 나올 수 없다.

사원들이 깔깔거리는 것만 봐도 화가 치민다는 우리 과장.. 실무장악력은 낮은데 관리자 노릇은 해야 하니 마음이 급해 화가 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권위에 대해, 주재원 나가고 싶다는 희망에 대해, 윗사람의 평판에 대해 너무 극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따라배우게 된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범함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유머를 가미하는 노력을 계속 해야겠다. 그 노력이 소용이 닿게 되면 누가 어떻게 하든 별로 생각도 안 날 것이며 이렇게 굳이 주워섬길 필요조차 못 느낄 것이다.

"유머"의 중국어 번역어인 "幽默"를 만들어낸 게 바로 임어당이다. 산문이 꽤 괜찮다.《생활의 발견》도 몇 가지 티(여성관, 동서양 문화에 대한 단순도식화 등)가 있긴 했지만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큼 유익한 독서였다. 너무 진지하게 몰두하느라 시뻘개진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문장들이다. 하루하루가 진지한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내게(그 목적이 뭔지 꼭 집어 말할 수도 없으면서!), 점심식사 후의 포만감과 맑은 날 잠깐의 산책, 샤워 후 침대에 누워 음악 듣는 시간, 친구들과의 한담 같은 자그마한 일상 속에서 유유히 소요하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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