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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다시 만난 파우스트

bravebird 2015. 9. 4. 03:12

베를린의 한국문화원은 베를린 중심지인 포츠다머 플라츠 근처에 있다.  

 

 

 

도시 곳곳에 이렇게 그래피티가 그려진 옛 베를린 장벽터가 남아있다. 이 장벽터는 한국문화원 바로 맞은편에 있다. 베를린 장벽이 지나갔던 자리 바로 위에 한국문화원을 설립하여, 통일에 대한 염원뿐만 아니라 독일과 한국 사이의 역사적 유사성을 공간적으로 표현했다.

 

 

 

문화원에서 한국어 수업 듣는 친구를 기다렸다. 밖에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근처의 웬만한 관광지는 다 본 관계로 도서실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이런저런 책이 많아서 뒤져보았는데 웬걸. 초등학교 1, 2학년 때 읽었던 어린이용 파우스트가 있지 않겠는가!

 

 

 

그때는 아버지 근무지 발령 관계로 1년 반 동안 경북 의성에 살았었다. 집 바로 가까이에 아늑한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 자주 갔었다. 어머니가 파우스트는 꼭 읽어야 되는 근사한 책이라고 하셔서 빌렸다. 잘 이해가 안갔다. 몇 달 지나고 다시 읽었다. 대학자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방황하지만 결국은 구원받는다는 줄거리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사실 열린책들 판본의 파우스트를 챙겨가서 비행기 안에서 거의 다 읽었었다. 이제 다시 읽으면 이해가 될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파악한 딱 그 정도 중심 내용만 붙잡을 수 있었다. 기독교 상징, 독일 민속, 그리스 로마 고전 레퍼런스 등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걸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에 대충 감만 잡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냥,

앉아서 어린이용 파우스트 다시 읽었지 뭐. :)

의성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잔뜩 어린 책을 먼 땅에서 만나게 되다니 더없이 뭉클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게 맞다며 파우스트 횽아를 포용해주신 하나님, 제가 기독교인도 아닌데 많은 힘을 얻어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요 책 부록으로는 괴테의 여러 명언이 실려있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을 카메라로 많이 찍어왔는데, 생각날 때 조금씩 조금씩 올려보아야겠다.

 


베를린 한국문화원에는 이렇게 학술서도 제법 많다. 아래는 평소에 읽고 싶었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서 시리즈.

 

 

 

아래는 각국 언어로 쓰인 분단사, 전쟁사 관련 도서들. 사실 난 근현대사를 수능 본 이후와 외교학 수업 몇개 들은 시절 이후에는 건드린 적이 없다. 당사자가 살아 있는 현대사는 현실정치에 꽉잡혀 정권 바뀔 때마다 논쟁거리가 되므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너무 고대여서 신화를 방불케 하거나, 너무 현대여서 동시대 정치나 다름없는 것 사이, 그러니까 평가가 대략 안정이 된 근세~근대 정도의 역사가 가장 재미있고 다루기에 무난하다. 한국은 조선~개화기, 중국은 청. 물론 이 시대 역사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기에 이걸 좋아하는 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위에 말한 이유로 현대사를 도외시해온 건 굉장히 회피적이고 위험한 태도라 반성이 필요하다.

 

당장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물을 땐 보통 근현대사 이슈가 주가 된다. 밖에 나가면 내가 한국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데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려주거나 좋은 토론상대가 되어줄 수 없어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참고로 독일은 나치의 만행을 반성하기 위해서 역사교과서의 70% 이상이 근현대사 내용이라고 한다. 

 

 

 

 

요 아래 녀석은 평소에 꼭 읽어보려고 했던 책. 개관 부분을 스윽 읽어보는데 생소한 인류학 개념이 많이 나온다. 줄쳐가며 집중해서 읽어야 될 책이었다. 티베트인과 한족 세계의 중간에 위치한 강족의 정체성이 유동하는 내용을 토대로 중화와 변방이라는 경계설정의 문제, 중화민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정리가 되면 이 책을 꼭 읽어 봐야겠다.  

 

 

 

서가 옆 창문에는 요렇게 케이팝 땐쓰 교습소 광고문도 붙어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바람이 독일 땅에도 조금 영향을 주고있긴 한가 보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어린이용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어릴 때 읽어본 책들이 많으니 도와주기로 했다. 원하는 키워드로 몇 권 뽑아 줬더니 진짜 그걸 빌려 가더라! 뿌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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