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일리야 레핀,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 국가평의회 본문

여행/러시아

일리야 레핀,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 국가평의회

bravebird 2014. 12. 15. 00:25



일리야 레핀,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 국가평의회


크게 보기


레핀의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구도의 드라마틱함 측면에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과 함께 최고가 아닐까 싶다. 화폭 안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도 당장에 니콜라이 2세에게로 시선이 가 꽂힌다. 황제가 가운데에 있지 않은데도 눈이 그리로 간다. 내가 결코 한 그림 오래 살펴보는 눈썰미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랬다. 러시아 박물관 가면 한 전시실의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데, 내가 마치 저 안의 조그만 한 부분이 된 것처럼 실내를 가득 장악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미술에 문외한인데다가 러시아 화가 하면 샤갈이랑 칸딘스키밖에 모르고 내 취향도 아니어서 전혀 기대 않고 갔던 게 러시아 박물관이랑 트레차코프 갤러리였다. 근데 이젠 그것 때문에 러시아 돌아간다. 난 미술 전시회 갔다와도 기억에 남는 그림이 몇 점 없는 편인데, 러시아 박물관이랑 트레차코프 갤러리에서 보고 온 건 신기하게도 웬만한 건 다 기억이 난다. 그림들이 어딘지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것이, 줄거리로 머릿속에 남는다. 난 도저한 세계 명화로 들어차 있는 에르미타주도 사실 그저 그랬고(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코카서스 등 역사고고학 분야 전시실 제외) 프랑스 인상파 작품이 많다는 푸쉬킨 미술관도 별 관심이 안 가서 생략했을 정도인데, 러시아 박물관이랑 트레차코프 갤러리는 그냥 통째로 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프랑스 미술은 어디가 아름답다는 건지 모를 후덕한 여자 그림이거나 그나마 인상주의쯤 오면 예쁜 게 많지만 그냥 예쁘고 끝인 그림, 르네상스 미술이나 종교화는 성경 레퍼런스나 당시의 문화적 상징을 몰라서 하품 나는 그림, 반면에 러시아 미술은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결코 잊기 어려운 특색이 있는 그림이다. 그 중에서도 레핀이 제일 인상적이다. 정말 레핀이 이 겨울에 굳이 러시아 한번 더 가는 큰 이유다. 이번에도 아마 에르미타주와 푸쉬킨 박물관은 생략하고 러시아 박물관과 트레차코프 갤러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듯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