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12/23 화(페테르부르크): 정치사 박물관, 오로라 호 허탕, 호두까기 인형 본문

여행/러시아

12/23 화(페테르부르크): 정치사 박물관, 오로라 호 허탕, 호두까기 인형

bravebird 2014. 12. 28. 21:56

아침에 빈둥거리다가 느즈막히 숙소를 나와 카페 싱어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운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왔을 때 안 와봤는데 듣던 대로 카잔 성당 전경이 끝내주게 펼쳐지는 최적의 장소였다.

 

 

밥을 먹고서는 피의 성당 뒷편에 있는 길로 가서 마블 팰리스를 지나 다리를 건너갔다. 아래는 가는 길에 찍은 피의 성당.

 

 

 

다리를 건너고서는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 바로 근처에 도착했다. 아래는 눈 내리는 날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풍경. 이렇게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인 줄 몰랐네. 저번에 왔을 때는 지도를 구비해 와도 지리를 잘 모르고 거리 감각이 없으니까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었다. 이번에는 거리 감각도 생기고 길도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다음 번에 한번 더 오면 익숙하게 걸어서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헤매서 정치사 박물관에 닿았다. 도착하고 보니 저번에 갔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 바로 근처였음 -_- 모스크는 여전히 공사 중이어서 따로 찍지는 않았지만 저번에 찍어두었던 사진이 남아있다.

 

 

정치사 박물관에 레닌의 집무실이 있어서인지 어김없이 현판이 걸려 있었다. 다음에 올 땐 아래 내용을 번역기 없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안에서 본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인데, 누가 칼로 북북 찢었는지 균열이 많이 생겨 있었는데 까막눈이니 설명을 읽어도 모르겠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답답했다. 재치있는 정치 포스터 같은 것도 많은데 그걸 정확한 뜻도 모르고 이미지로 대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웠다. 이해하며 볼 때랑 전혀 모르고 볼 때랑 완전히 다른데. 러시아어 공부 열심히 해서 여러 번 더 와야겠다. 한두 번으로는 눈요기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정치사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는 연계성 있게 오로라 호를 보려고 이동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또 엄청나게 많이 헤맸는데, 겨우 걸어 도착하니 그 자리에 없었다. 러시아어로 된 안내판만 남아 있고 영어 안내가 없어서 또 자세한 연유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네바 강변 산책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용은 다음에 휴대폰 쓸 때 타자 쳐서 번역기 돌려 보는 걸로...

 

 

길을 많이 헤맨 덕분에 사람 하나 없는 네바 강변을 실컷 걸은 건 보너스였다. 눈이 그친 북구의 겨울 하늘이 창백하고도 부드러웠고, 강에는 유빙이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강 건너편에 삼성 건물이 보였는데, 들어가서 현채인 안 뽑냐고 물어볼 뻔 했다.

 

 

 

 

사실 다른 박물관도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아침에 빈둥거리고 길은 길대로 헤매고 네바 강변에서 하늘 구경하느라 그냥 다른 일정은 깨끗이 포기하고 시내로 내려왔다. 예전에 봐두었는데 못 가본 Tandoori Nights라는 인도 식당으로. 그런데 그땐 까맣게 몰랐는데 탄두리 나이츠가 있는 건물은 크람스코이가 살던 곳이었다. 아마 그 당시엔 크람스코이라는 이름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갔다오고 나서 책 읽어보고 그때서야 아 이 사람이 그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구나 하고 알았으니. 정말 여행은 한번으로는 절대 안 된다. 특히 러시아 같은 크고 아름다운 곳은 더더욱.

 

 

 

맛있는 인도 카레를 먹고 나서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 마린스키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은행에서 돈 뽑으려는데 그 은행 카드를 긁고 들어가야 입장이 가능한 구조였다. 뭐 이래, 하면서 투덜대며 나오는데!! 또 반가운 현판 발견. 그 은행 건물은 1847년부터 1849년까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곳이었다. 이 도시는 걷다 보면 건물에 걸린 현판이 무수한데, 그 오래 전의 작가와 화가와 작곡가를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구나 싶어 러시아인들이 존경스러웠다. 현판 보는 재미가 숨은 보물 찾기 놀이하는 것처럼 쏠쏠하다. 예전 숙소는 라스콜리니코프 하우스 바로 근처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동네 이웃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많이 설렜었다. 

 

 

마린스키에 도착했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서 산책을 하다가 니콜스키 성당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 멀리 지붕이 별들로 빛나는 성당도 보였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한참 걸어내려가서 안에까지 들어가서 잠깐 책 읽다 나왔다. 옛날에 책에서 읽기로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속기사였던 아내와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성당 이름을 까먹었다!!!

 

 

저번에는 미하일로프스키만 가봤는데 마린스키 안 가봤으면 정말 어쨌을까 싶다. 오케스트라가 바로 보이는 제일 앞에서 2번째 줄 한중간에 앉아서 지휘자의 숨소리까지 다 들었다. 예전에 백조의 호수는 보면서 엄청 졸았는데 호두까기 인형은 정신 놓고 봤다. 발레리노가 너무 멋져서 이름 좀 알아보려고 마린스키 홈페이지 들어가 봤더니 바가노바 학생들이 올린 작품이라면서 주연 이름도 안 써놓았다.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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