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보편과 에고 사이의 진동 - 『저항과 아만』 서평 - 본문
보편과 에고 사이의 진동
- 『저항과 아만』 서평 -
1.
『저항과 아만』은 책 제목부터가 그 내용을 기대하게 했다. 이언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오만(傲慢)이라는 흔히 아는 단어가 아니라 아만(我慢)이라는 ‘나 아(我)’자가 들어간 새로운 단어가 사용된 것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자의식이 강렬하고 주변과 쉽게 융화할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겠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고, 400쪽이 훌쩍 넘는 두꺼운 책은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이언진은 틀에서 벗어난 글재주와 사유방식, 그리고 당시 사회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없었다. 결국 이언진은 자신이 지향하는 지점과 현재 딛고 있는 지점 사이를 진동하다가 27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부분만 빼고는 읽는 내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고 하면 그것도 아만일지 모르겠다. 이언진 같은 괴물에 나를 빗대는 게 가당하지는 않을 터이니. 그렇지만 자아와 아만이 중요한 주제를 이루는 책인 만큼, 이 서평을 통해 나를 이언진에 비추어서 평소의 생각들을 풀어놓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겠다. ‘나’라는 주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글이 될까 조심스럽지만, ‘이언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지혜롭게 줄다리기를 해나가며 『저항과 아만』 그리고 『호동거실』과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2.
시인은 자신을 ‘호동의 자식’으로 생각하면서도, 호동에서 삶을 영위하는 대다수 사람들과는 달리 독서와 선정(禪定)을 행하고 있는바, 이로부터 호동에 대한 양가적(兩價的) 감정이 자기 내부에 싹트게 된다.
이언진을 나와 가깝게 느끼도록 해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품어왔다. 나는 여성이고 앞으로도 언제든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는 기대를 의식적으로 거부할 때가 많았다. 여자는 자신을 치장하기 좋아한다는 생각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아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중성적이고 수수한 옷만을 주로 입고 다녔다. 여자들은 햇볕에 타는 것도, 모험을 하는 것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을 뒤집고 싶어서 대담하게 혹은 천방지축처럼 행동하기를 좋아했다. 여자니까 혼자 여행 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말리면 오히려 더 멀고 외진 곳으로 나가서 보란 듯이 오랫동안 쏘다녔다. 여자는 너무 똑똑하면 별로고 무엇보다 결혼을 잘 하는 게 최고라고 하면 나는 결혼하지 않고도 충분히 앞가림을 하고 재미있는 것을 배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떵떵거렸다. 그렇게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의 틀에 갇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으며 그 저항을 스스로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왔다. 다른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기대하는 여성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더더욱 그런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다른 여성들과 스스로를 구별짓기하면서 ‘나는 달라. 나는 그렇게 고분고분하고 재미없는 기성품처럼 되지 않을 거야.’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틀림없이 여자이면서도 여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쉽게 공감하거나 동참할 수가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들이 모인 자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는 그 자리를 편하게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곳도 어딘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럴수록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까 어느 정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지’ 하면서 스스로를 높은 망루 위에 가둬두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한편으로 나의 오만과 비대한 자의식을 경계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그 유명한 정신 승리가 아닐까 걱정하면서. 강해지기 위해 선택한 길인데도 스스로를 부여잡으며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의아해 하면서.
책 제목을 『호동거실』이라고 붙여놓고서도 8수에서 달구지 소리가 뚜닥뚜닥 들리고 여인네들이 조잘조잘거리는 “시끄러운” 곳에서 면벽한 승려처럼 평생 신을 기른다고 한 것을 보니, 이언진도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구별지어서 자아를 우뚝 세우려는 자의식이 강렬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호동에서 나고 자란 호동의 사람이지만 주변의 시정인들과는 달리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호동은 자신의 재주가 소통되지도 소용되지도 않는 공간이었다. 그 반대편인 사대부 세계 역시 그가 속할 수도 동일시할 수도 없었던 공간이었다. 결국 이언진은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든 스스로의 타자성만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절대적인 외로움과 막막함에 함몰되지 않고 자존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높이는 아만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호동은 친숙한 공간이지만 완전히 동화되기에는 너무 범속한 세계였다. 사대부 세계는 그가 지닌 재주와 학식이 든든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세계였지만, 중인층인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은 바로 그 사대부들이 생성하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예속해온 것과 동화되고 그에 안주하는 길을 택하기에 이언진은 너무도 급진적인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위무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자신 안에서 찾으려 하였다. 76수에서 “자기가 곧 자기를 심판하는 신”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54수에서 스스로를 “이선생”으로 일컬은 것이나, 91수에서 “내 엄마가 곧 부처 엄마”라고 말한 것이 모두 이언진의 그러한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항과 아만』을 다 읽고 나서 최인훈의 『회색인』을 우연히 집어 들어 읽고 있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내게는 이 우연한 책 선택이 예사롭지가 않다.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독고(獨孤)준이다. 그 흔한 김준도, 이준도, 박준도 아닌 홀로되고(獨) 외로운(孤) 혈혈단신의 독고준이다. 독고준은 일본 식민통치와 이념 전쟁이 막 끝난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근대에 이식되어 들어온 서양식 가치를 학습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복잡한 심사를 품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혼란 속에서 자아를 정립하기 위해 번민하고 노력한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이 책의 뒷부분 어딘가에서 ‘보편과 에고의 황홀한 일치’라는 말을 문득 발견했는데, 나와 이언진과 독고준이 모두 보편과 에고 사이의 드넓은 간극을 진동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춘향과 이몽룡이 로미오와 줄리엣 대신 전 세계 로맨스의 심벌인 세상에 살고 있다면? 현대사가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의 이식으로 이어지는 대신,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동학 혁명이 성공하고 그 이념을 바탕으로 해서 한국인이 직접 통일된 민주 공화정을 세웠다면? 그랬다면 독고준은 보편과 에고의 황홀한 일치 속에서 내적 갈등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며, 자신의 에고를 세우는 데 쓸 에너지를 바깥의 더 큰 자신을 향해 마음껏 태우는 일에서 삶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에서 “인간은 그 본성상 감옥 속에서 행복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자기 속에 가둬 두려는 열정이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감옥에 속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 사람의 에고는 이 세상에서 별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초월한 어떤 것에 희망을 부여하고 열중할 수 있는 사람은 에고이스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도 썼으며 나는 이 말에 일말의 의문 없이 찬성한다. 나는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과 반대되는 나를 확립하기 위해 사용해온 자의식의 에너지를 더 넓은 바깥을 향해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훨씬 굳건한 자아안정감 속에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하면서 나 자신을 확립하는 것 이상의 더 큰 일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언진 역시 보편과 에고 사이에서의 힘겨운 진동에 지치는 대신 자신의 혁신적 에너지를 사회를 향해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며 조선 전체를 위한 더욱 큰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나의 도전적인 태도가 바로 보편적인 여성상이라면, 이언진의 급진적인 사유가 당시의 보편적인 시대정신이었다면 우리는 거대한 보편에 맞서기 위해서 소아(小我)에 불과한 에고를 팽창시키는 데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작은 내 한 몸을 넘어서는 대아(大我)적이고 더욱 건설적인 일에 열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편과 에고의 드넓은 간격은 우리가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없는 시작점이자 기본 조건이다. 둘의 합일을 목표로 두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출발점을 부정하고서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지금 서있는 곳을 우리의 주춧돌로 수용하는 동시에 이를 품고 도약하기 위한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언진이 호동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40수에서 평소에는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이상하고 못생긴 털보, 곰보, 혹부리를 보고 지나간 후 늘 눈에 밟힌다며 진성측달(眞誠惻怛)의 면모를 보인다. 21수에서는 욕하거나 깔보면 적선하는 것을 받지 않는 거지의 자존심, 대의에 맞게 훔쳐서 공평히 나누는 도둑의 어짊과 지혜를 이야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진 관심과 옹호를 드러내고 있다. 87수에서는 기와 쌓는 장인인 전형적인 하층민인 개와장과 토담 치는 장인인 토담장이를 소재로 해서 그들이 노동으로써 먼지 속에 하나의 도(道)를 행했다며 찬하고 있다. 이처럼 이언진은 호동의 사람들에 대한 공감적 시선을 간직한 채로 호동을 넘어서서 사유하는 포월(胞越)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회색인』에서도 이 에고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회색인』에서는 독고준의 친구인 김학의 형이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본바탕을 항상 기억하고 아낄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이 예컨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스스로 여행을 하기보다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선택할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하며 나를 그들과 철저히 구별하고 일말의 이해를 거부했던 내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언진이 호동을 시끄러운 곳으로 여기면서도 그곳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지켜보며 다양한 시를 남겼듯, 나도 나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인 여성성으로부터 긍정적인 면모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고 나와 다른 여성들을 연결해 나가는 것을 저항의 시작점으로 삼아야겠다.
3.
『저항과 아만』을 통해 『호동거실』의 시인인 이언진을 ‘저항’과 ‘아만’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갖고 읽어볼 수 있었다. 이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일반적인 여성상에 저항하기 위해서 강렬한 자의식으로 스스로를 구축해온 내 스스로의 이야기와 통하는 점이 많이 있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함께 읽은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의 경우와도 관련시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은 더더욱 특별한 행운이었다. 보편과 에고가 황홀하게 일치하지 못했기에 거대한 보편에 맞서서 스스로의 에고를 살찌울 수밖에 없었던 이언진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넘치는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이며, 자기 자신에게로 쏠리는 에너지는 그 사람을 분열시켜 힘을 앗아가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언진은 그러한 위험 속에서도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바탕인 호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며, 그러한 관심으로 호동을 감싸 안는 동시에 그곳을 넘어 더 넓은 곳을 사유할 수 있었다는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거물임이 틀림없다. 나 역시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여성성을 그저 넘어서는 데 집중하기보다, 나와 같은 곳에 자리하지만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유대감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유대감은 나의 에너지를 스스로의 에고를 세우는 소아(小我)적인 차원에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조금 더 넓고 큰 대아(大我)를 향해 아낌없이 바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호동거실』은 아만의 피치 못할 배경인 ‘보편과 에고의 진동’과 아만이라는 감옥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빛나는 인식론적 성취를 모두 보여주는 다채로운 텍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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