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12/26 금(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 칼미키아 사람들 본문

여행/러시아

12/26 금(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 칼미키아 사람들

bravebird 2015. 1. 3. 01:51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모스크바에 남겨놓았지만 아무래도 카메라를 잃어버린 채 다음 날 출국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영 찜찜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왔더니 뜻밖에도 룸메이트들이 카메라를 찾아 놓았다! 사진도 그대로 다 남아 있어서 기마상 사진들을 고스란히 다 보전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오후 느즈막히 나와 트레차코프 갤러리 본관으로 갔다. 이곳에서 사진촬영용 표를 안 사고서 바부쉬카들 딴 데 쳐다보는 틈을 타 사진을 찍는 얌체짓을 좀 하였다. 날 이곳까지 오게 한 도스토예프스키와 푸쉬킨 등등 초상화 앞에서는 같이 사진 찍기도 하고. 저번 여름에 갔을 때는 사진 같은 건 생각조차 않았는데 두 번째는 한번 다 봤다는 여유도 있고 욕심도 나서 많이 찍었다. 역시 사진은 정복욕의 발현. 그렇지만 상상적인 소유에 그칠 뿐. 수전 손택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베레샤긴 그림 보고 있는 아저씨

 

이바노프 그림 보고 있는 사람들

 

레핀 그림 보고 있는 사람들

 

브루벨이 디자인한 벽난로 장식

 

작품들을 보고 있는데 웬 중국 아저씨가 중국인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중국인은 아니지만 중국어는 할 줄 안다고, 베이징에서 살았었다고 대답하며 몇 마디 나누었다. 타지에서 외국 여자가 고국 말로 말을 받아주니까 신기했나 보다. 중국어 오랜만에 써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히 아직은 잘 나왔다. 올해도 틈틈이 신문 보고 동영상 클립도 챙겨보고 해야겠다. 말 까먹지 않도록 중국 거래처랑은 웬만하면 중국어를 쓰도록 하고 이모저모 노력해야겠다. 

 

그림들 앞에서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러시아 청년이 또 중국인이냐고 중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_- 아 너무 관광객 같았나 보다. 그림들이 너무 좋아서 고삐 풀렸었음. 옛날에 내 친구 알렉세이 발음에서 제일 특징적이었던 거칠디 거칠은 권설음 r 발음이 빼다 박은 듯 똑같았다. 나 중국인 아니에요 아니야. 이럴 땐 아니고 싶다고요! 중국에서 여행 다닐 때만 중국인으로 봐줬으면 좋겠어! 표값 덜 내고 티베트 쉽게 들어가게! ㅋㅋ

 

중국인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자신있게 중국말로 말을 붙인다. 여름에 레닌 묘 들어가려고 붉은광장 입구에 줄 서있을 때도 중국 할아버지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중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딱 한국 사람인데. 한국 학생들이 여름에 이삭 대성당 안에서 나 보자마자 큭큭거리면서 "저 사람 한국 사람이다"하고 수군거렸었는데. (니들도 딱 보면 한국 대학생이야, 헤헤 -_-) 여하튼 나 중국사람 아니야. 중국 좋아하지만 중국인은 중국 관광지 매표소에서만 하고 싶어요. 외국 관광지에서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시크하게 사진 촬영을 삼가는 기조를 고수해야겠다.  

 

트레차코프 갤러리 다시 오고 싶어서 러시아에 돌아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이 생각이 났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기대 이상으로, 기억 속에서 미화된 그 이상으로 휘황한 작품들에 눈이 부셨다. 그냥 통째로 다 갖고 싶었고 황홀했다. 흡족한 관람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다음 저번 금요일에 갔었던 쿠즈네츠키 모스트의 바로 돌아갔다. 원래 사장님이 토요일날 바 근처에서 그루지야 음식 같이 먹자고 하셨는데 내가 비행 스케줄을 착각하는 바람에 약속을 깼기 때문이다. 인사 드리려고 갔었는데 또 이게 신의 한 수였다. 아센 아저씨가 타지에서 바를 경영하느라 결혼을 안 한 대신 친구가 많은 덕분에, 놀러오는 사람들한테 다 인사시켜 주고 심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이번에도 맥주 한 잔 시켰을 뿐인데 서비스로 양주며 뭐며 다 얻어먹었다. 중국에서 10년, 모스크바에서 25년 일한 이탈리아 여자분도 있었고, 아일랜드 대사관 직원도 있었고, 방학 때 프로젝트 하러 온 이탈리아인 컴퓨터 공학도도 있었다. 저번 주에 봤었던 요한 아저씨도 돌아와서 천만다행히도 귀국 인사 드릴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저번 주에 만났던 한 그룹을 또 만났다. 바에 1주일 간격으로 두 번 갔는데 어떤 그룹을 두 번 다 마주친 거다. 첫 번째는 그냥 몇 마디 말만 나눴는데 이번에는 반가워서 이야기를 오래 했다. 일반적인 슬라브계와 다른 외모에 다들 영어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들이라 배경이 좀 궁금했는데, 들어 보니 엠게우 법대 나온 변호사들이었고 그 중 하나는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가서 더 공부했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분들이 서몽골 출신이라는 점. 내가 갑자기 흥분해서 "서몽골? 오이라트요??? 칼미키아?!!?!?" 하니까 반색을 했다. 어떻게 오이라트라는 말을 아냐면서. 어떻게긴. 옛날에 잠깐 팠는걸.

 

중국에 있는 동안 몽골티베트관계사 수업 들으면서 이런저런 책을 한국으로부터 공수해서 봤는데, 서몽골 오이라트 부족연합체의 역사를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중국 신장 천산 근처에 살다가 볼가 강 유역으로 이동해 갔다가 다시 신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수하게 학살당했던 그 오이라트 연합체 토르구트 부의 자손이라니! 건륭제가 그 눈물의 귀환을 칭송하기 위해 토르구트 귀순비도 세워 줬었는데! 그때 토르구트 중 신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볼가 강 유역에 그대로 남은 것이 지금의 칼미크족이다. 오이라트 부족들의 이야기는 청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사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한 챕터 중 하나로 아직까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그 남자분들은 칼미키아 공화국의 수도인 엘리스타에서 왔고, 종교는 당연히 티베트 불교이고, 다들 대여섯살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교 학부까지 함께한 다음 모스크바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오랜 친구들이었다. 내 편견어린 상상 속 칼미키아는 뭔가 아직까지도 유목민 전통이 남아 교육수준도 당연히 낮고 (중국에서 공부할 때 중앙아시아 친구들이 공부 지지리도 안했었다) 근대학문보다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지대한 곳이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엘리스타 시가지 본 적 있는데, 중심가도 시골 변두리 같았다. 인구를 끌어모아봐야 10만 명 수준인 변두리 공화국에서 유년기부터 같이 보낸 서너 명씩이나 한꺼번에 엠게우 법대를 갔네. 뭐야 무서워. 물어보니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풍토가 거기도 있다고 한다.

 

내가 당신들 조상 역사를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는지, 준가르의 갈단이라는 장군의 무용에 얼마나 놀라고 또 놀랐는지, 토르구트 눈물의 귀환이 얼마나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인지 다 기억하고 있다고 하니까 다들 깜짝 놀라며 굉장히 반가워했다. 그렇게 해서 다들 통성명을 하고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티무르여서 또 한바탕 호들갑을 떨고 말았다. 핸드폰에 잔뜩 저장돼 있는, 그림 앞에서 찍은 셀카들을 보여주면서,

 

바실리 베레샤긴, They are triumphant

 

이건 당신이랑 이름이 똑같은 티무르가 세운 위대한 도시 사마르칸트요,

 

바실리 베레샤긴, Apotheosis

 

이것은 그가 정복지에서 한 짓이로다. 이 그림들을 하도 좋아해서 굳이 여기 돌아와 이렇게 셀카까지 잔뜩 찍었음이로다, 하고.

 

이 그림들은 트레차코프 갤러리 처음 갔을 때 가장 강렬하고 반가웠던 그림들이고 이번에도 오랜 시간 바라보다가 왔다. 트레차코프 갤러리의 베레샤긴 방에는 인도 아그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투르키스탄 추구착, 칼미키아 등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로 가득 차있다. 내가 언제나 가보고 싶은 중앙아시아 세계를 옛날 옛적에 탐험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라니 반갑고 또 반가웠다. 결국 이번에 갔을 때는 베레샤긴 관련 화집 겸 역사책도 하나 사왔다. Russia's Unknown Orient - Orientalist Painting 1850-1920.

 

사실 이번 겨울에 우즈베키스탄에 가려다가 겨울 비수기에는 부하라에서 키바로 가는 국내 기차편이 끊기니 장시간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결국 러시아 한번 더 가는 것으로 바꿨다. 이번에 갔다오니 또 내년 백야 시즌에 한번 더 가고 싶어졌고, 7-8월쯤이 될 여름 휴가로는 예전에 가려다 못 갔던 중국 사천성의 티베트 초원지대를 가고 싶다. 중국 안 간 지 벌써 1년이 되어 가서 더 가고 싶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이 또 미뤄지면 안 되는데 대체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언제 볼 수 있는 걸까.

 

칼미키아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청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사가 너무나도 다시 읽고 싶고 그걸 그렇게 아무 고민 없이 즐겼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런 것과 아무 관계가 없고 오히려 이런 걸 모르면 모를수록 좋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도 뭔가를, 하나도 아닌 여러 가지를, 그렇게 궁금해 했고 열심이었다. 누구도 안 알아줬고 아무 짝에도 실용적인 쓸모는 없었지만 그런 것은 따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순진하게 열중했다. 다른 사람과는 나눌 수가 없는 혼자만의 열정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해둔 것들이 몇 년 후에 모스크바의 한 바에서 이렇게 흥미진진한 대화를 가능하게 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이제는 가물가물해지려 하니 신년에는 다시 한번 중앙유라시아사를 복습해야겠다. 그리고 티무르랑 빅토르에게 틈틈이 메일로 물어 봐야겠다.

 

이 친구들은 금요일마다 이렇게 바에서 모여 노는 모양이다. 이 날도 6시 문닫을 때까지 춤도 좀 추고 계속 이야기 나눴다. 티무르와 빅토르는 일찍 돌아갔고, 남아있던 다와(다와는 티베트어로 '달'이라는 뜻. 티베트 여자 이름에 많이 들어가는데 이 분은 남자. 몽골이랑 티베트의 문화 친연성이 높긴 높구나 싶다), 나딕(이 친구는 아제르바이잔계), 니콜라이(이 친구도 칼미크인)가 키타이 고로드의 호스텔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줬다. 티무르와 빅토르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었기에, 한국 돌아와서 인사 메일 보내면서 다와, 나딕, 니콜라이에게도 감사 인사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둘 모두에게 친절한 답장을 받았는데 나중에 모스크바 돌아오거나 엘리스타 갈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친구든 친척이든 동원해서 구경시켜 주고 궁금한 것이란 다 알려주겠다고 했다. 아아! 청나라 때 서몽골 조상 이야기를 대대로 전설처럼 듣고 자라왔을 사람들에게 역사책 읽다가 질문할 수 있다 ㅠㅠ 서몽골 이야기도, 러시아 이야기도 다 물어볼 수 있다! 진실로 진실로 감사한 인연이다!! 

 

뭘 하든 나중에 결국 쓸모가 닿고 인연이 이어지고 삶의 지도가 되는 거였네. 나의 관심사가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어진 것이 얼마나 큰 시너지를 가능하게 했는지 새삼 놀랍고 감사했으며, 새해에 부지런히 공부해나가야겠다는 커다란 동기부여를 받았다. 어디 가서 뭘 하든 일단 열심히 하고 봐야겠다. 일도 뚝딱뚝딱 하고, 중앙유라시아 역사도 다시 봐놓고, 중국어도 녹슬지 않도록 연마하고, 러시아어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뭐든 재밌게 열중해서 해둬야지. 넘치는 의욕과 함께 여행을,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