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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화권

캄/암도 티베트와 2012년 샤허 여행기

bravebird 2017. 6. 4. 23:50


여행이 가고 싶어서 구글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요즘입니다. 꼭 돌아가겠다고 다짐한 캄/암도 티베트 지도를 만들어 봤어요.

중국 영내의 티베트는 세 가지 문화권으로 나뉩니다.
위짱 - 시짱 티베트 자치구의 라싸, 시가체, 아리 일대 (달라이 라마의 포탈라 궁전을 중심으로 한 티베트 문화의 중심지)
암도 - 간쑤, 칭하이, 쓰촨 일대 (티베트 유목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곳)
- 시짱 창두, 칭하이, 쓰촨, 윈난 일대 (티베트 전사들의 문화가 발달한 곳. 소규모의 독립 왕조도 많았고 호전적인 기질.)

위의 지도는 암도와 캄 티베트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포탈라 궁전이 있는 시짱은 여행사를 통해 퍼밋을 발급받아 가이드를 대동해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여행이 어려운 지역입니다. 패키지 신청하면 되니까 직장인 신분으로 가기에는 오히려 가장 용이한 곳이죠. 그렇지만 라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고도 적응 기간이 없기 때문에 고산병 100% 닥칩니다. 제 친구는 비행기 타고 갔다가 말 그대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왼쪽 눈 시력을 손상당한 채 돌아왔습니다. 칭짱열차를 타고 천천히 적응하면서 가는 편이 나아요. 베이징에서 출발하면 편도로 이틀 꼬박이기 때문에 직장인으로서는 어려움이 있죠.
 
암도나 캄은 대부분 자유여행이 가능해요. 가끔씩 특정 지역이 여행 제한이 걸리긴 하지만요. 간쑤, 칭하이, 쓰촨, 윈난의 가장 구석진 지역이기 때문에 기차가 구석구석 다니지도 않고 버스를 타고 열 몇 시간씩 다녀야 해요. 중간중간 며칠씩 고도적응 하면서 이동해야 하고요. 한족 이주도 적고 여행자의 발길도 비교적 덜 닿았습니다. 칭짱열차로 엄청난 여행객들이 오가고 한족들이 이주해와 절반 이상 차지해버린 라싸보다도 티베트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암도 티베트의 샤허와 허쭈어는 2012년 초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간쑤성 간난 장족자치주에 있고 란저우에서 버스로 4시간 걸립니다. 해발고도 약 3000m의 고원 지대에 있어요. 다행히 이곳에서 아무런 고산반응 없이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갈 땐 이렇게 높은 곳인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그러네요. 란저우 자체가 지대가 꽤 높아서 아마 천천히 적응을 한 모양입니다. 더 높은 곳도 천천히 적응해서 가면 갈 만하겠는데 하는 희망이 생기네요.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교환학생 있을 때 우슈 동아리에 가입했었는데 거기 티베트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온가족이 시짱 티베트 자치구의 낙추로 이사가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원래 간쑤 샤허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에 형이 샤허에서 결혼을 한다면서 그때 실크로드 여행할 거면 들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갔죠. 며칠 머무르면서 가족 친척들도 만나고 결혼식도 갔죠. 그땐 축의금이란 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거 같은데... 냈던가...? ㅋㅋㅋ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처음 네 장은 암도 티베트의 중심인 샤허의 라브랑 사원이고, 마지막 한 장은 허쭈어 시의 허쭈어 사에서 찍은 승려의 사진입니다. 지금 허쭈어에는 학교에서 친했던 또다른 티베트 친구 하나가 일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도 샤허 사람이에요. 얘를 어떻게 알게 됐더라? 같은 반이었던 미국 친구 두 명이 얘랑 친해서 정말 우연히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자주 다같이 놀았지요. 

샤허에선 또다른 에피소드가 있었죠. 우리가 카카오톡을 쓰듯 중국에선 지금 위챗이 대세입니다. 제가 있을 때는 여전히 QQ 시절이었어요. 저는 중국 친구를 많이 사귀어서 QQ를 자주 썼고요. 어느 날 누가 랜덤으로 말을 걸었어요. 그냥 베이징 사람 아무한테나 말 건 거라고 하더군요. 프로필을 보니까 샤허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티베트 남학생이었어요. 프로필 사진은 한국가수 비였습니다. 티베트 친구도 거의 없었고 샤허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신기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정말 크게 놀라더군요. 드라마 풀하우스 팬이라면서. 너 진짜 한국 사람 맞냐고. 너무 신기하다고. 

근데 알고 보니 얘가 결혼식 초대해준 그 친구랑 고향 친구인 거예요 -_-;; 세상이 엄청 좁은 거죠. 샤허에서 셋이 만났어요. 온통 포커치는 남자들 뿐인 찻집에서 노닥거리던 게으른 오후가 생각나네요. 티베트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여자들은 일하고 남자들은 노닥노닥한다네요. 티베트족, 강족 이쪽 문화권이 제가 알기로는 고대에 여인국도 있고 일처다부제도 있었을 만큼 좀 문화가 남다른데요. 이제는 밖에 남자들 뿐입니다. ㅋㅋㅋ

티베트 남자들은 잘생겼습니다. 저는 시력이 안 좋고 외부자극에 대해서 반응이 느립니다. 게다가 워낙 터널비전이라 목적지만 생각해요. 주변을 잘 안 둘러보고 휙휙 뛰어가다가 간판 못 보고 이마 찍히고 눈 다쳐서 퉁퉁 붓고 이러는 수준인데요... (중국 카이펑에서 있었던 실화) 티베트에서만은 유독 남자들이 왜 이렇게 잘생겼나 싶더라고요. 특히 캄 지역 사람들이 전사의 후예라 키도 상당히 크고 매력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캄 남자들은 원래 유명하다네요. 지금 사진으로 보면 그냥 그런데... 그때 정말... 사람들이 너무 잘생겨서 놀랐습니다. 

티베트 사람 잘생겼다고만 쓰자니 좀 마음이 그러네요. 고뇌도 많은 그들입니다. 제 친구는 왜 자기가 베이징에서 중국어로 생활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고향과 가족과 친구들을 다 티베트에 놔두고 혼자 먼 곳에서 외국어나 다름없는 중국어로 생활하는 낯선 외로움. 또다른 친구는 중국 정부도 공산당도 지극히 싫어하는데 커리어를 위해서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티베트인 중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제 또래들의 고뇌입니다. 민족국가를 갖지 못한 서러움이죠. 1920-30년대에 일본으로 유학 간 조선 청년들, 일제 치하의 조선 공무원들 심사와 크게 다르지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이 티베트 친구들의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100년 전이 이들에게는 지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메인 루트는 우루무치와 란저우와 시안을 동서로 잇는 하서주랑이었어요. 란저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캄과 암도 티베트를 더 돌아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여름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곳이라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게다가 중국의 유명한 석굴은 다 가봤는데 여기 샤허 바로 옆의 린샤 후이족 자치주에 있는 병령사만 못 가봤죠. 여름에만 보트를 타고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 언젠가 여름에 이 지역 순례를 하겠다고 손꼽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티베트가 너무 그립습니다. 하얀 불탑들,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 어린 동자승들, 야성미 넘치는 남자들, 담배연기 자욱한 찻집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노닥거리던 시간, 코라를 도는 불도들, 눈이 덮여 있는 황량한 목초지, 언덕 위를 어슬렁거리던 야크들... 지금쯤 그곳에는 풀이 돋아나 있겠죠. 언젠가 꼭 암도와 캄에 돌아가서 족히 한 달은 보내고 싶습니다. 라싸의 포탈라 궁전에도 가보고, 죽 내려가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도 보아두고, 그대로 네팔에 도착해서 부탄, 인도, 파키스탄까지 티베트-히말라야 문화권 일대의 맑은 공기 속에서 한 마리 야크처럼 배회하고 싶네요. 

샤허 근처 지역에 대한 또 다른 여행기들이 아래에 있습니다.

실크로드 or 중화권 두 폴더 중에 고민하다가 위의 세 편을 따라 못내 중화권 폴더로 분류합니다. 티베트.. 중화권..... 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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