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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만네르하임 관련 도서 (2)

bravebird 2017. 7. 2. 01:44


만네르하임의 전 생애를 다룬 전기문 Mannerheim: President, Soldier, Spy. 이거 작년에 런던 Foyles 서점에서 보고 내년에 핀란드 가기 전에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 내년이 겨우 2주 앞이네. 조너선 클레멘츠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까 《해적왕 정성공》 저자였다. 예전에 대만 가기 전에 봤었고 당시 대만에서 교환학생 중이었던 친한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정성공도 흥미롭지만 만네르하임도 만만찮게 재밌는데 번역본 나오면 좋겠다. 

만네르하임은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이었던 핀란드에서 1867년에 태어났다. 독일 혈통이 섞인 스웨덴계 핀란드 귀족 가문 출신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병 학교에서 공부하고 러시아 군대에서 복무한 후 핀란드 독립을 이끈 다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겨울전쟁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핀란드 독립을 이끌었으며, 세계 2차대전의 틈바구니에서 핀란드의 국익을 성공적으로 지킨 지도자였다. 

만네르하임은 어머니를 어린 시절에 잃었다. 파산한 아버지가 정부와 함께 파리로 도피한 직후에 어머니가 사망했다. 아버지가 딸을 하나 낳아서 새 부인과 함께 돌아왔지만 만네르하임 형제들은 잘 섞일 수가 없었고, 결국 그들은 친척집에 흩어져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다. 만네르하임도 삼촌 집에서 자라는데 교육비를 가지고 꽤 눈치를 준 것 같다. 게다가 만네르하임은 어린 시절에 꽤 말썽꾸러기여서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퇴학까지 당했다.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병 학교에 입학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꽤 의젓하게 잘했다. 성적도 좋았고 기마술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만네르하임은 기본적으로 과묵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고 사생활을 드러내기를 매우 꺼렸다. 잘생긴 귀족 남자라 염문설이 많았고 심지어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생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지금까지도 파다하고 관련된 책도 계속 출판된다. 만네르하임은 유력 가문 출신인 러시아 여자 아나스타시와 결혼해서 두 딸을 뒀는데 오랫동안 별거하다가 결국 이혼했다. 여자 쪽이 더 많이 좋아했고 만네르하임은 아마 여자 쪽의 재산을 보고 정략적으로 결혼한 것 같다. 

만네르하임은 러일전쟁에도 참전했다. 핀란드에 있는 가족들은 차르를 위해서 목숨 걸지 말라고 반대했다. 반면 만네르하임은 실전 경험이 없는 군인은 승진을 못한다고 판단했다. 더 늙어서 실전 투입이 어려워지기 전에 기회를 잡아 참전했고, 목표한 대로 승진도 한다. 꽤나 야심가였다. 이후 중앙아시아-북중국 정탐 임무도 맡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내가 핀란드까지 가는 것. 

당시는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이었으며 만주를 발판으로 한 일본의 야욕도 상당했다. 이에 러시아에서는 중국 정탐을 통해 중국 민중의 생활이 어떻고 군사적인 역량은 어떤지 미리 가늠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만네르하임은 스웨덴어를 구사하는 핀란드 출신이라 신분 위장이 편리한데다, 기마술이랑 지도 제작에도 능했기 때문에 러시아군 수뇌부에게 직접 발탁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커리어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러시아 내에서는 핀란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군 고위부의 눈에 직접 들어 얻게 된 기회인데다, 여론의 흐름상 잠깐 피신해 있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고 판단해서 임무를 수락한다. 

만네르하임은 가기 전에 스벤 헤딘, 마르코 폴로 등 문헌 조사를 부지런히 했다. 현지에서는 위구족 민족지를 작성하는 업적을 올린다. 중국 민간 신앙에도 관심이 상당해서 숭배 대상들을 카탈로깅하기도 했다. 중국 민간 신앙은 타이페이 용산사 갔다오고 나서부터 진짜 흥미롭다고 생각한 분야인데(클릭) 만네르하임이 정리해서 책까지 냈다니까 궁금했다. 만네르하임은 이때 영국의 서슬에 우타이산으로 피신한 후 러시아와의 접선을 학수고대하던 제 13대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기도 한다. 이 북중국 정탐 임무가 끝나고는 니콜라이 2세를 친견해서 보고를 올린다. 차르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이후 러시아 혁명과 핀란드 내전, 그리고 핀란드 독립 부분은 읽긴 했어도 아직 소화가 덜 되었다. 사람들은 주로 겨울전쟁이나 세계대전을 계기로 만네르하임을 알게 되는데 나는 국제 둔황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핀란드 컬렉션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걸 보고 처음 알게 돼서 그렇다. 세계대전보단 중국 정탐이 관심사다 보니 아무래도 이 부분은 조금 생소하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핀란드 독립 투사일 것 같은 만네르하임이 가진 의외의 모습들이다. 꽤 나이가 들어서까지 핀란드어를 잘 못했다. 러시아 군대에서 오래 복무해서 그런지 차르에 대해서 일말의 의리와 충성심을 계속 갖고 있었다. 핀란드의 러시아화를 반대하긴 했지만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 내에서 공국으로 남아있는 것에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귀족 출신이어서 그런지 왕정을 지지했고, 하류 계급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는 소극적인 편이었다. 러시아에서 벌어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공감하지 못했고 핀란드 내전에서도 백군 편에 서서 적군 세력을 탄압했다. 겨울전쟁을 거쳐 핀란드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원래 생각했던 것은 러시아 영내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반혁명을 이끄는 거였다고 한다. 여러 정체성이 경합했던 입체적인 삶이다. 이런 다면성은 언제나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이후 계속전쟁, 라플란드 전쟁, 올란드 제도 획득, 카렐리아 이슈 등등은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 같은 다른 책에서도 미리 조금 봤지만 직접 이야기를 풀기에는 아직 모자라다. 겨울전쟁부터 계속전쟁까지 핀란드는 워낙 레전드이자 모든 밀덕들의 로망이라 이 부분만 따로 다룬 책이 정말 많다. 2차대전 중 보급로가 마땅찮은 와중에 러시아에 삼켜지지 않도록 나치 독일을 잘 이용해 먹고, 추축국으로 몰리지 않도록 적당한 시기에 발을 빼고 선을 그은 결단력과 외교술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런 레알폴리틱 능력자들을 아주 좋아한다. 

현재 아마존 킨들에 올라와 있는 만네르하임 관련 책 중에 전 생애를 포괄하는 전기문이 바로 이거다. 그 전에 읽은 건 중국 탐험에 초점을 맞춘 거였고, 이외의 대부분은 겨울전쟁과 2차대전에 대한 밀리터리 서적이다. 만네르하임의 전반적인 생애를 파악하기에는 이 책이 유용하다. 여행 가면 헬싱키 가장 중심가에 만네르하임 동상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마침 핀란드 독립 100주년이다. 다시 간단히 훑고 친구한테 얘기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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