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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청의 대러시아 외교

bravebird 2017. 9. 12. 10:05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1842)으로 동아시아의 전통적 조공체제는 막을 내리고 청은 근대 조약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청은 이전에 이미 러시아와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과 캬흐타 조약(1727)을 맺은 적이 있다. 

강희 연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은 헤이룽장 국경을 확정하고 현지 주민의 관할권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옹정 연간의 캬흐타 조약은 러시아인들이 베이징 외에 캬흐타 등지에서도 국경무역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고, 베이징에 러시아 정교회 교당 건설을 허용했으며 할하(외몽골)와 시베리아 간 국경을 확정하는 내용이었다. 청은 왜 조공·책봉 체제의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러시아와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했을까? 바로 준가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오이라트(서몽골) 4부족 연맹에 속한 준가르는 강희 연간부터 건륭 연간에 이르기까지 투르키스탄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티베트와 외몽골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상당한 세력을 자랑했다.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천산 북록 준가르 분지에 살았던 준가르는 당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급속히 팽창하던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웠다. 이에 강희제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준가르와 러시아의 연합 가능성을 차단해 놓은 다음, 무려 세 차례의 친정(親征)을 통해 준가르의 수장 갈단을 격파했다. 이후에도 준가르는 여전히 강성해서 건륭 연간이 되어서야 완전히 복속된다.  


건륭 연간 궁정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작 玛瑺斫阵图 (마창이 준가르 적진을 가르고 전공을 세우는 장면)


이렇게 1750년대 후반 준가르 정복이 완료된 후에 청과 러시아 사이의 캬흐타 무역은 정지된다. 이후 캬흐타 시약을 통해 재개가 되기는 했지만 청은 고압적인 태도로 변했다. 이 때는 네르친스크 조약이나 캬흐타 조약 체결 당시와는 달리 준가르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심지어 오이라트의 다른 일파로 볼가 강 유역으로 건너가 살던 토르구트(볼가 강 유역 러시아 영내에 그대로 남은 토르구트의 후손들이 바로 칼미크족)마저 처절한 행군을 거쳐 청으로 복귀하면서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즉 청은 철저히 몽골 문제의 연장선에서 대러시아 외교에 접근했다.

청의 외교 업무는 이분화되어 있었다. 조선, 베트남, 류큐처럼 유교 및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고 전통적 조공 체제에 편입되어 있던 지역은 예부가 담당했다. 반면 티베트, 신장, 몽골처럼 서북 변경의 초원·유목 지역은 이번원 관할이었으며 현지인 수령을 두고 청이 간접지배하였다. 몽골 업무의 연장선인 러시아 사안 역시 이번원 몫이었다. 한인은 이번원 업무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한인은 이번원 관할 지역에 파견되지 못하도록 순례권도 제한돼 있었다.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 역시 여러 언어로 번역·교환되었지만 한문 버전은 존재하지 않았고 한인이 참여하지도 않았다.

청 말기가 되면서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등의 한인 관료들이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 그리고 서북 변경의 무슬림 반란을 진압하는 데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 이후 중앙 정부에서도 점차 활동 반경을 넓히고 이번원 업무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리바디아 조약이나 이리 조약(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등 청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 문제에도 한인이 참여하게 되었다. 일례로 이리 조약의 담당자인 쩡지쩌(증기택)는 증국번의 아들이다.



※ 이 글은 이번에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을 3번째 읽고 청과 러시아의 외교에 관한 챕터를 대폭 참조해서 썼습니다.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쓰인 양서입니다. 저에겐 완전히 관심분야 그 자체를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서이기도 하고요.


※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玛瑺斫阵图 이미지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amgalant.com/castiglione-macang_lays_low-cut/ (앗 이 블로그 주인 goodreads에서 저 팔로우한 사람!)

https://kknews.cc/zh-cn/culture/k8yy4pv.html (중문 설명)

http://www.chinaonlinemuseum.com/painting-lang-shining-machang.php (영문 설명)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3/Macang_Lays_Low_the_Enemy_Ranks.jpg (전체 그림이 크게 나옴 - 굉장합니다 정말)


※ 이전 관련글

2017/01/17 - [중점추진사업/실크로드] - 청-러시아 이리 국경선 관련

2015/01/03 - [여행/러시아] - 12/26 금(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 칼미키아 사람들

2015/07/26 - [여행/러시아] - 칼미키아 공화국

2014/12/10 - [여행/중화권] -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아옥석지모탕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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