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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던 그해 달빛 실제 모델 - 청말 갑부 주영

bravebird 2017. 11. 1. 21:16

아 진짜 블루스크린 몇번째냐??? 프로그램 설치도 안하고 곱게 쓴 2살짜리 컴퓨터가 왜이래??? 니가이기나 내가이기나 보자!!!

 

10/27 금 07:38부로 꽃 피던 그해 달빛(那年花开月正圆, 나년화개월정원) 졸업했다. 막바지에 텐센트 유료화가 갑자기 3일 정도 당겨지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근데 위챗페이는 그 좋은 기술력을 갖춰놓고도 어김없이 외국인 카드를 홀대함. 아니 돈을 내겠다는데도?! 이리하여 무료일 때 끝을 봐야만 했다. 덕분에 마지막 날에는 평일 새벽 2시에 잠들고 4시 반에 일어나는.. 미친짓을 하여 출근길에 결판을 냈다. 

 

오늘부터는 중화tv에서 방영을 시작한다. 리모콘 6년만에 잡나요. 엔딩을 이미 본 이상 이제부터는 그냥 간간이 힘 닿을 때 다시 보면서 실화 + 글로 쓰인 줄거리를 좀 봐두려고 한다. 무슨 덕후처럼 2번씩 보고 그러지 않는데, 이건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중국어 드라마라서 예외! ㅋㅋ 참고로 국내 기사에 원작소설이 히트쳤다는 내용이 있길래 도전해볼까 싶어 찾아보니 사실무근이었다. 주영을 다룬 《安吴商妇》이라는 소설은 있지만 주제가 같을 뿐, 이 드라마가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다루겠다.

 

아래는 주인공 주영(周莹)의 실제 이력이다. 치명적 스포일러 없고, 선공개하는 줄거리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이니 편히 읽으셔도 됩니다. 

 

 



섬서성 여자 갑부, 여자 마윈으로 일컬어지는 주영은 청나라 동치 7년 즉 1868년에 섬서성 삼원(三原)현에서 태어났다. 드라마에서는 양아버지와 함께 기예를 파는 천출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대상인 집안 출신이었다. 주영의 증조할아버지 주매촌(周梅村)은 거상이자 형부 원외랑을 지낸 지역 유지였다. 주씨 일가가 살던 저택은 현재 섬서성 삼원현에 민속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陕西三原周家大院民俗博物馆증손녀 인터뷰에도 주영은 관료 집안 출신이고 남편 오씨 집안과 대대로 교류가 있었을 만큼 서로 급이 맞는 집안이었다고 한다그런데 서북 무슬림 반란 등으로 지역 자체가 큰 타격을 입고 가업이 영락해 버렸다고 한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형수의 주관 하에 시집을 보내버렸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런 흥망성쇠 디테일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아 그냥 언급만 해놓는다. 

 

16-17세쯤 되는 나이에 경양(泾阳)현의 상인 집안인 오씨 가문으로 시집갔으나 머지않아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2년쯤 신혼 생활을 했다는 얘기도 있고, 남편에게 낀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병태가 위중할 때 급히 혼인('冲喜'라고 함)하는 바람에 달랑 10일 같이 살고 사별했다는 얘기도 있다. 증손녀 인터뷰에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이 있었는데 요절하여 양자를 들였다고 나온다.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렸는지는 직접 보면 아주 재미있다.


주영은 천성이 총명하고 어질어서 직접 가업을 떠맡은 뒤, 한 나라 재정 규모에 비길 정도로 번창시켰다. 평생 사업에 종사했다. 오씨 가문의 소금 사업을 이어 전국 단위로 사업을 했으며, 잠사, 면화, 면직물, 약재, 찻잎 등 다른 여러 분야도 크게 성공시켰다. 사전에 면화 재배 농가와 계약을 맺고 남방의 뽕밭을 전세내어 견사를 예약 주문하는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매수가격을 안정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자산을 분할해서 직원들을 주주로 참여시켰다. 극중에 이런 전략들이 모두 등장한다.

 

 



1900년도 의화단 사건 때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함락시키자 서태후는 섬서성으로 피난을 갔다. 이에 주영이 10만 냥의 은자를 제공해서 서태후가 이화원에 신용카드를 놔두고 온듯; 호국부인 편액을 하사받고 서태후의 수양딸이 되었다. 서구 열강이 청에 엄청난 배상금을 때려버린 신축조약 체결 후에도 정부에 은자를 제공하여 일품고명부인 칭호를 하사받았다. 주영은 이처럼 국난 극복을 위한 원조 외에도 관중 지역에서 수리 공사, 교육, 문묘 건립, 군인 급료 보조, 난민 구제 등 활발한 자선활동을 펼쳤다. 이 시절 섬서상인들 자체가 의를 중시해서 많이들 이랬다고 한다. 주영도 의리가 있고 포용력이 대단해서 직원들이나 소작농과 대대손손 함께 간다는 마인드가 투철했다. 말만 하면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대단한 여걸이었던 거 같다. 멋지다.

 

주영의 여러 공적은 경양현과 삼원현 지방지에 기재되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다. 이 드라마는 소설 원작은 따로 없고 증손녀 등 후손의 증언을 바탕으로 허구의 요소를 가미해서 만들었다. 후손과의 협의 하에 선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극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한다. 2007년도에 주영 일대기를 다룬 《安吴商妇》라는 소설이 나왔는데 이 소설이 원작이라는 오해가 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영의 양자 오회선(吴怀先)을 아주 막돼먹은 부잣집 패륜아로 그려놓은 바람에 후손들이 소송을 걸어 작가와 출판사로부터 5-6만 위안 정도의 배상금을 받아낸 일이 있다. 실제 오회선은 청말에 훌륭한 관료였고 항일시기에는 애국지사였다고 한다. 부잣집 도련님 느낌이 안 날 만큼 계층의식이 별로 없이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고도 한다. 그 후손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부르주아 출신 불량 분자로 몰려서 고초를 겪었고, 최근에는 《安吴商妇》 내용상의 명예훼손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에 오회선의 손녀 오국화(吴国华) 여사는 진상을 밝히려고 꽃피던 그해 달빛 드라마의 초고를 썼고, 이걸 여러 번 고친 것이 대본이 되었다.


주영은 광서 34년 즉 1908년도에 4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씨 가문의 묘역에서 떨어진 곳에 쓸쓸히 묻혔다. 훗날 오씨 가문의 고택은 항일전쟁 시기 중에 중국공산당 청년간부 양성 기관으로 사용되어 현재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安吴堡战时青年训练班革命旧址



■ 이전글 및 참고 페이지

2017/10/23 - 6년만에 드라마 - 那年花开月正圆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8%8E%B9/19855463?fr=aladdin (바이두 백과 주영 페이지)
https://baike.baidu.com/tashuo/browse/content?id=f97c8e26470ca202f5c2c2d5&fr=qingtian&lemmaId=19855463 (지방지 관련)
http://weixin.niurenqushi.com/article/2015-05-11/3704676.html (서태후 수양딸 된 이야기)

http://www.scxxb.com.cn/html/2017/nfcp_0907/354437.html (주영 증손녀 오국화 여사 인터뷰)

http://hsb.hsw.cn/2008-11/11/content_7153166.htm (오회선 후손들의 소송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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