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현 시점 국내외 주요 정치 상황에 대해 본문
나는 트럼프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관세를 높이고 내수와 제조업 기반을 확충하고자 하는 그의 정책 방향성 자체는 상당 부분 논리적으로 이해가 간다. 현재 인건비와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는 제조 공장이 빠져나갔고, 이로 인한 공급망의 취약성은 코로나 시기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제 무역과 분업은 효율적이나, 기본적으로 실물 기반 산업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고용을 창출하고 대외 의존성도 줄일 수 있다. 이는 기본적인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반도체 안보가 중요한 이유와도 같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의 정책 방향성은 꽤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했다고 본다. 트럼프가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나 본인을 표현하는 태도가 거칠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제시한 문제의식이나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억제 역시 안보 강화와 내국인 보호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를 극우 파시즘으로 보는 시각이나, 사회 갈등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도 타당한 데가 있지만, 유럽 각국 또한 난민 문제로 인해 치안이 악화되고 사회 불안이 증가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민 및 다문화 갈등은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자 국민국가의 정체성 위기가 표출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계엄 및 탄핵 정국 역시 이러한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의 마약 단속 정책 또한 이러한 배경 속에 있다. 미국 내 마약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며, 특히 펜타닐의 공급망에는 멕시코 너머 중국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체제 경쟁 중인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마약과의 전쟁’은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 역시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나 역시 푸틴을 좋아하지 않고, 패권주의적 전쟁을 긍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러시아에도 나름의 역사적 배경과 안보적 입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서방 무기 유입은 러시아 입장에서 실존적 위협이었다. 마치 중국이 북한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매우 핵심적인 지역이다. 이것이 당위적으로 옳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엄연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한국의 특수성은, 우리가 난민이나 이민자 유입에 관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후발 주자인 한편 북한이라는 동일 민족과의 전쟁 상태를 장기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강력하나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체제이며, 궁지에 몰릴수록 핵을 앞세운 도발을 통해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외부 지원을 얻어내려 한다. 마치 흉노와 몽골이 무척 강력하였지만 정주세계인 한과 명의 물자를 반드시 필요로 하였기에 군사적 침략을 계속하였듯이. 즉, 핵무기와 갈등은 북한의 생존 전략이다. 북한의 역대 수뇌는 결코 항구적 평화를 원하지 않았으며, 필요할 때는 평화를 가장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원조받은 자금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또한 대한민국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패턴에 대해 경제적 유화책으로 대응하거나, 안일하게 협상을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이 바라는 바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평소 부국강병의 기반을 갖추고,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물론 전쟁은 피해야 하지만, 진정한 평화를 위해선 전쟁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전쟁은 단순한 윤리적 당위로 억제되는 것이 아니며, 이해관계 조정 실패의 결과다. 전쟁 또는 침략이 있고 나서 대비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며, 외국이 도덕적 기준에 따라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도 비현실적이다. 조선을, 티베트를, 홍콩을 보라.
북한의 뒤편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한반도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요충지로 여기며,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에 흡수 통일될 경우, 중국은 더 이상 완충지대 없이 한미일 동맹과 직접 대치하게 되므로 전략적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하며 북한과 공조하고, 대한민국은 자국의 세력권에 두고자 한다. 무력은 최후 수단일 뿐, 산업·정보·문화·학술·언론·정치 등 비군사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고, 정치적으로도 분열이 심하여 침투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간첩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하는 중국이나 북한과 달리, 한국의 간첩법은 느슨하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제한되어 있어 정보전 측면에서 비대칭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계엄 및 탄핵 정국과도 맞닿아 있다. 계엄이라는 조치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중국·북한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우리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세계화라는 토대 위에, 그 체제 자체를 전복하고자 하는 적대 세력들이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군사 독재를 겪었다. 그 시기의 독재는 북한의 위협이라는 명분 아래 일정 정도 정당화되었고, 이후 점차 극복되며 민주주의가 발전해왔다. 이처럼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안보는 종종 충돌하는 가치처럼 여겨져 왔다. 독재에 대한 저항을 통해 1987년 이래 민주주의가 급속히 진전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국가 안보라는 가치는 퇴색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이나 사상적 자유조차도 기본적인 ‘안전’이라는 기초 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세 가지 위기를 ‘공산화(전체주의화)’, ‘절대 빈곤’, ‘군사 독재’라고 본다. 보수 정권은 군사 독재라는 분명한 과오를 저질렀으나, 공산화 저지와 경제 발전이라는 확실한 성과 역시 이뤄냈다. 진보 정권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는 공로가 있으나, 그 과정에서 국가 안보는 종종 희생되었고, 특히 문재인 정권 시기에는 재정과 경제 분야에서도 심각한 정책 실패가 반복되었다. 오늘날 진보 세력은 오히려 기득권화되어 구호와 실천 사이의 괴리는 커졌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데 앞장서면서 민주주의의 원칙마저 스스로 훼손하는 자가당착 상태에 빠져 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르듯 한국 현대사는 언제나 진자 운동을 반복해왔다.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새삼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한국이 처한 현실을 곰곰 되짚어 보면 특수한 부분도 있지만 미국과 유럽 정치 상황과도 꽤 닮아 있다. 세계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두렵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진보 쪽에도, 보수 쪽에도 표를 줘본 20대와 30대를 지나오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지금 이대로라면 소위 진보·좌익 정치인에게는 더 이상 표를 주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사 3대 위협을 모두 개선이 아닌 악화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우경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정치를 바라볼 때 양쪽 진영의 공과 과를 함께 따져보고, 상식적인 기준에서 사안별로 판단하려 해왔다. 무엇보다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생각하고자 한다.
2023년, 시진핑 집권 10년을 넘기고 코로나 국면을 지나 몇 년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생체 정보까지 활용하는 전방위적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 되어 앱이 엿듣고 있을까봐 친구들 간에 잡담도 편히 못하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고, 결국 참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던 경험이 있다. 한편, 재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시민 개개인의 기본적인 재산권을 침해하고 사다리를 걷어차며, 각종 사안에서 후안무치한 내로남불 태도를 보이고, 국가 재정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며, 안보와 동맹을 약화시키고, 2년간 무려 30번의 탄핵을 발의하여 갈등과 낭비를 초래한 특정 정치 세력의 행보 또한 목도해왔다.
나는 확신한다. 계획경제는 본질상 전체주의 독재를 전제로 하며, 전체주의는 용납될 수 없는 체제다. 그 안에서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체주의와 독재를 혐오한다는 같은 이유로 오히려 좌익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그 인식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기득권이 바뀌는 만큼, '우익=보수=독재=미국 일본(?), 좌익=진보=민주=북한 중국(???)'이라는 낡고 이상한 프레임 또한 지금 이 시점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 재검토가 앞으로도 계속 번갈아 가며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많은 희생과 헌신으로 쌓아올린 안전과 번영이라는 물적 토대,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신적 유산이 찢겨 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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