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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12월 시작한 독서모임친구모임 첫 책. 정치 전공한 친구가 제안했지만 군주론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1년에 한 번 꼭 읽는다. 마키아벨리는 천재다. 로마 카톨릭이 주름잡고 있던 시기에 별 보잘것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인간의 악함을 이야기하고 군주의 술수를 권하는 책을 군주한테 바친 과감함을 존경한다. 인간은 선하고 성스럽기도 하지만 영악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모두가 경건한 척 하기 바빴던 시대에 인간의 영악함을 현실정치 운영에 참고시키는 이 대담함! 이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태도 자체도 높이 사지만,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내용이 전혀 퇴색되지 않아서 더 놀랍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
독서모임을 빙자한 친구모임을 월 1회 하고 있다. 10년 된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오늘은 두 번째 모임이었고 내 제안으로 노자 《도덕경》을 다뤘다. 저번 달은 군주론이었는데 글을 아직 안 남김. 다음 기회에. 《도덕경》은 얇고 쉬워서 금방 읽혔다. 아포리즘 모음이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마음 편하게 한 2-3일 정도 읽으니 끝났다. 평가는 내가 제일 후하게 줬다. 한 친구는 동양철학이 잘 안 맞는다고 했다. 도가 뭔지 설명도 못하는 걸 보니 엄밀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고,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 같단다. 다른 친구는 꽤 호평을 했는데 《도덕경》 내용이 상식(직선적인 세계관)에 반하기 때문에 허를 찌르고 시야를 넓혀준다고 했다. 나도 대체로 비슷한 감상이다. 내용 요약은 ..
푸쉬킨의 〈보리스 고두노프〉처럼 동란시대에 대해 다룬 희곡. 선악구도가 상당히 단순하다. 슈이스키와 가짜 드미트리 1세(본명 그리고리 오트레피예프, 본업 수도자)는 실존 인물이지만, 슈이스키의 딸인 크세니야와 그 연인 게오르기는 가상 인물이다. 크세니야를 강탈하려는 가짜 드미트리 1세의 악랄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 구도이다. 드미트리는 재고의 여지 없이 극악무도하고 크세니야는 더할 나위 없이 가련한 희생자여서 복잡다단한 심리드라마(예: 맥베스!!)를 보는 듯한 현대적 재미는 좀 떨어진다. 무대에 올리면 무대장치도 상당히 간소할 것 같다. 전투 장면 같은 것은 보여주기 방식이 아니라 말하기 방식으로 간단히 처리돼 있다.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고전비극의 전형적인 작..
푸쉬킨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 뿐이어서, 여름에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민음사판 푸쉬킨 선집을 빌렸다. 전권을 다 읽진 않고 몇 작품만 발췌독. 먼저 〈보리스 고두노프〉. 죽은 줄 알았던 황자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와 나라가 뒤집어진 동란시대를 그렸다. 여러 이설이 있기는 하나,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위 계승자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리스의 치세에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민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수도승 하나가 승복을 벗고 황제의 의관을 입기로 마음 먹는다. 보리스가 죽이려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황자가 바로 자신임을 주장하던 그는, 마침내 보리스의 아들을 죽이고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찬탈자에게 황위를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