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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bravebird 2018. 1. 14. 22:13

12월 시작한 독서모임친구모임 첫 책. 정치 전공한 친구가 제안했지만 군주론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1년에 한 번 꼭 읽는다. 

마키아벨리는 천재다. 로마 카톨릭이 주름잡고 있던 시기에 별 보잘것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인간의 악함을 이야기하고 군주의 술수를 권하는 책을 군주한테 바친 과감함을 존경한다. 인간은 선하고 성스럽기도 하지만 영악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모두가 경건한 척 하기 바빴던 시대에 인간의 영악함을 현실정치 운영에 참고시키는  대담함! 이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태도 자체도 높이 사지만,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내용이 전혀 퇴색되지 않아서 더 놀랍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p.109-110)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너무 자비롭기 때문에 무질서를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데에 반해 군주가 명령한 처형은 단지 특정한 개인들만을 해치는 데에 불과할 뿐입니다. (pp.117-118)

그(군주)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그것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p.126)

이상주의가 다분했던 학생 때 읽었으면 별로 마음에 안 들어했을 말이다. 이젠 뼈가 저리게 와닿는다. 학생 때는 정해진 역할이 한정적이고 상대하는 사람들이 이해관계와 딱히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용당하거나 기만당할 일이 별로 없었다. 모두를 호의와 진심으로 대해도 크게 잘못될 일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그런 상황에 종종 처한다. 친절하고 온순하게 대했더니 어느 새 일이 나한테 다 와있고 당사자는 퇴근했다거나, 반대로 우호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뭔가 짐을 얹어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거나... 

그래서 이제는 착함의 가치를 별로 믿지 않는다. 진심을 보이고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도 될 사람/일 vs 적당한 포장으로 에너지를 절약해가며 대해야 할 사람/일을 분별하는 능력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착하고 친절한 것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하다. 최소한의 공중도덕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급적 선량하고 호의적으로 행동하려고는 노력하겠지만, 필요할 때는 태도를 바꾸어 단호하게 처신하는 분별력과 과단성이 중요하다.  

다만 만사를 이렇게 대처하자면 너무 팍팍하다. 그래서 공사를 나누어 놓았다. 공적 세계에서는 현실주의적으로 대처하려고 한다. 그곳은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여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획득해와야 하는 경쟁과 투쟁의 장이다. 약간의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장소 자체가 그렇다 보니 어차피 다 비슷한 처지잖아. 이렇게 얻어온 자원을 갖고 다정한 세계로 퇴근하고 나면 온전히 아끼고 신뢰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공사 분리가 중요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원을 쟁취하는 곳과 그걸 풀어놓는 곳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인 공적 세계에서의 처신에 군주론의 경구가 도움을 준다. 



어떤 국가도 안전한 정책을 따르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안전한 정책을 모호하고 미심쩍은 것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물의 도리상 하나의 위험을 피하려고 하면 으레 다른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란, 다양한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따라야 할 올바른 대안으로 가장 해악이 작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p.157)

우리나라엔 안정지향 가치관이 너무 강력하다. 나도 그런 배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소소하게 반항을 해본 적도 있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안전하게 검증된 길만을 착착 걸었다. 그렇지만 그 '안정'이 과연 절대적일까? 알파고가 사람을 이기는 세상에서 '대기업'이라든지 '평생고용'이라든지 '연금'이나 '저축' 같은 것들이 과연 변치 않는 정답일까?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오히려 가장 어리석은 선택으로 판명날지도 모른다. 자만과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만물은 변한다는 것만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법에 의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첫째 방법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둘째 방법은 짐승에게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로는 많은 경우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에 의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군주는 모름지기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모두 이용할 줄을 잘 알아야 합니다. (...) 반인반수를 스승으로 섬겼다는 것은 군주가 이러한 양면적인 본성의 사용법을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그중 어느 한 쪽을 결여하면 그 지위를 오래 보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사자의 방식에만 의지하는 자는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됩니다. (pp.123-124)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 다 가지고 싶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질이 다양해야 한다. 고정된 틀에 갇히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 나는 당연히 사람처럼 점잖게 살고 싶지만 짐승 같은 환경에 처해 있다면 짐승의 방식을 알아두어야 한다. 함정을 파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함정에 빠지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밖으로 드러낸 외양을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수는 군주의 위엄에 의해서 지지되는 대다수의 견해에 감히 도전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보통 인간들은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왜나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대다수와 정부가 하나가 될 때 소수는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pp.126-127)

사회생활에 아주 능한 동료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된다고. 이 사람은 일을 아주 똑똑하게 잘하고 회식도 잘 따라다녀서 호의적인 인상이고 친절하고.. 딱히 깔 구실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사원증 안 들고 나와서 복도에 갇혀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보면 신호가 가자마자 전화를 끊는다. 절대 안 받는다. 여러 번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박정하고 가식적이지 않은가?! 와 난 평소 이미지랑 달라서 엄청 충격받았다. 이런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로 전화걸어볼 일이 소수 이외에는 잘 없으니까. 그래도 딱히 깔 수가 없다. 평소의 매너와 제스처와 외양이 사람을 만든다는 건 이런 뜻일 것이다. 



저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운명은 여성이므로 그녀는 항상 청년들에게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고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p.174)

이건 여러 경험으로 자명한데, 과감함은 자산이다. 말 잘하고 논리 정연하고 리스크 최소화하고... 그래 다 좋아. 근데 원하는 걸 자기 힘으로 손에 넣는 자들을 관찰해보면 그런 것보다는 '기백'이 있었다. 이 멋진 건 내가 갖겠다! 하는 당당함이 있다. 우선 자기가 성취하려는 것을 멋지게 생각하는 상상력이 충분하다. 워낙 대단한 대상이니까 시간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과감하게 투자한다. 많은 것을 걸고 부지런히 추구하니까 결국 손에 넣게 되고.

예전에 아는 중국 동생이 나한테 농담을 걸었다.

누나 나랑 결혼해요. 생각 있으면 베이징으로 와요.

왜 베이징에 왔을 때 안 찾았어요? 생각 안해본건가? 

얘 이거 순 농담이다. 위구르어 수업 같이 들은 여러 친구 중 하난데 가끔 농담따먹기나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와.. 근데 농담 스케일.. 내심 감탄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 기백과 뻔뻔함은 있어야 뭐든 하지 않겠는가 말이야. 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너 대성할거야. ㅋㅋㅋㅋㅋㅋㅋ

너한텐 그런 기백과 뻔뻔함이 있나? 승률을 따지고만 있지 않은가? 비용이 얼마인지, 어떡하면 줄여볼지 재고 있지나 않은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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