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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위대한 개츠비

bravebird 2018. 3. 15. 15:55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다. 

아무리 애써도 처음 몇 장 이후로 넘어가질 않아서 무수히 실패했었다.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두 번을 읽어도 도통 페이퍼가 안 써지더라. 열심히 했는데도 그 학기에 그 수업만 안 좋은 학점을 받았다. 아 난 문학을 전공했으면 안 되었다;; ㅋㅋㅋ 문학 페이퍼 쓰는 거는 처음이 신선했지 그 후부터는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건 가끔의 취미로 남기고 딱딱 떨어지는 테크니컬한 걸 전공했어야 하는데 ㅋㅋㅋ 그런 거야말로 대학 졸업하고 나면 못 하는 거잖아 ㅋㅋㅋ 내세에는 수학과 물리에 매진하여 이과를 가는 걸로..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이번에 어떤 기회가 있어서 오랜만에 읽었다. 역시나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개츠비의 대체 무엇이 위대하단 말인지 집착하게 만드는 답정너 제목이다. 제목부터 '위대함'이라는 단어에 붙잡히지 않아도 된다면 마음에 걸리는 데 없이 비교적 잘 읽을 것 같다. 이 제목은 스콧 피츠제럴드가 직접 붙인 게 아니라 아내와 편집자가 고집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는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등등 몇 가지 제목을 제안했는데 모두 퇴짜를 맞고 '위대한 개츠비'를 마지못해 수락했다고 하는데 이게 신의 한수로 평가된다고 한다. 난 좀더 객관적인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쪽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위대한 개츠비' 쪽이 훨씬 복잡한 여운을 남긴다는 데는 동의한다.

사실 아무리 봐도 개츠비는 별로 특별히 위대하지 않다. 출신과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지만 성실하게 신분 상승을 꾀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자기계발 청년이었다. 근데 그 동기란 것은, 데이지라는 부잣집 여자한테 반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다가가기 위해 5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재에 성공한다. 이미 결혼한 데이지를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되지만, 개츠비는 권태기를 맞은 데이지 가정의 치정극에 휘말려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고 만다. 데이지는 오랜만에 만난 개츠비 앞에 펑펑 울며 한다는 말이, 셔츠가 아름다워요... 따위인 얼빠진 여자다. 자기네 가정 생활의 권태를 뺑소니 살인과 책임 전가 및 여행 떠나기... 라는 방식으로 타개하는... 무책임의 끝을 달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간이다. (데이지년) 그런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학력을 부풀리고 출신을 꾸며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위대한지? 

데이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위대하다? 너무 진부하다. 난 낭만파는 되지 못하기에 우선 사랑에 그렇게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되어야 하는지부터 잘 모르겠다.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지만 아무리 봐도 데이지는 목숨 바친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개츠비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랑 때문에 삶을 낭비했고, 인생을 허비한 사람에게 위대함이라는 형용사는 좀 과하다. 그렇다면 신분의 한계에 도전하고 삶을 발전시킨 노력과 성취가 위대하다? 역시 케케묵었다. 이건 자기계발서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축재 방법도 부정했다. 주류 밀매로 큰 돈을 벌었으며, 사람 이빨을 커프 링크스로 달고 다니고 월드 시리즈 결과를 조작해내는 조폭과 파트너였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위대한 개츠비'는 어느 정도 반어로 볼 수밖에 없다. 친한 친구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바이링구얼이고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 The Great Gatsby라는 답정너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옛날 서커스 제목 같다고. 개츠비는 모두에게 쇼맨이지만 실체를 알고 보면 그냥 찐따일 뿐인데, 그 결핍과 아픔은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쓸쓸히 쇼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이중적이고 슬픈 제목이라고. 이렇게 보니까 또 기가 막히게 말이 되는 거다. 딱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이 소설엔 닉 캐러웨이라는 화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중서부의 적당히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점잖게 잘 자란 사람이다. 닉은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 머물려 한다. 개츠비가 출신을 속였다든지 어둠의 세계에서 돈을 번다든지 하는 것도 알고 있고, 이런 행동에 반대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점점 개츠비에게 매료된다. 개츠비 당신은 저 모든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외치기도 한다. 나는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삐딱하다. 반어를 염두에 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닉의 말에는 동의한다. 닉이 반어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닉에게 있어서 개츠비는 무엇 때문에 훌륭할까? 다시 순수한 사랑이니, 근면한 노력이니 하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달달 외운 것 같은 이야기로 돌아와야 되는가? 그럼 뻔한 신파 로맨스나 자기계발서가 되어버리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사족**을 좀 덧붙이겠다)

개츠비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이 많았고 헛된 것을 좇았으며 종종 부정직했다. 위대함의 이유로 일컬어지는 그의 순수한(?) 사랑도 그다지 위대할 게 없다. 오히려 판단력을 상실한 맹목적 얼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츠비도 이처럼 여느 못난 인간이었지만 한 가지 훌륭한 점은 자신과 그 주변을 둘러싼 불완전함을 직시했다는 것. 그 속에서 불완전한 그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욕망에 부딪치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스콧 피츠제럴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어떤 삶을 살았기에 개츠비와 그에게 점점 매료되는 닉과 또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바라보는 에클버그 동상을 만들어 놓았는지 알고 싶어졌다. 미국의 1920년대 그 시대가 솔깃하고 그걸 배경으로 한 피츠제럴드의 일대기가 궁금하다. 아마 헤밍웨이와 비교해 놓은 전기문을 언젠가 찾아볼지도. 난 가공의 이야기를 가공 그 자체로 즐기기보다는 실제의 거울이자 파편으로 삼아서 사실을 더듬어보길 훨씬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사족** 

인생 잘 모르긴 하지만 사실 통속 로맨스나 자기계발 그 이상 뭐 대단한 별게 있을까? 성녀에게 목숨을 걸면 아름답고, 데이지 같은 gold digger에게 목숨을 걸면 헛된 인생인 건지? 여자 환심을 사려고 돈을 모으면 시시하고,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돈을 벌면 대단한 영웅인 건지? 그냥 갑자기 이런 분별이 부질없어 보인다. 나 왜 사니? ㅋㅋㅋㅋ 그냥.. 아마도 태어난 김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고..??ㅋㅋㅋㅋㅋㅋ 어찌보면 위대한 개츠비는 인생별거없음을 아주 리얼하게 얘기하는 사실주의 소설인가 싶다. 나는 이 사족을 붙임으로써 개츠비가 위대하네 마네 논하는 이 글 전체가 별 부질없다고 인정한 셈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 페이퍼가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느꼈었고.

이렇게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사실 문학뿐 아니라 모든 게 별 의미가 없고 가벼워진다. 삶의 의미 같은 무겁고 진지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마음 편히 나풀거리고 다니는 것을 나는 대체로 긍정한다. 그렇지만 내게도 대뇌가 있는지라 가끔은 허무한듸 싶기도 하다. 특히 신입사원 때 대체 이럴려고 사나 하면서 개츠비를 종종 떠올렸는데 그때 개츠비가 대단한 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쳤다. 개차반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 내고, 불완전한 모습으로나마 힘껏 자기 욕망에 부딪쳐 보고 그 결과를 감당해 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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