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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bravebird 2018. 4. 30. 16:04

살다보니 물리 단행본을 다 읽네. 친구들이랑 이번에 같이 읽었는데 철학학회다운 책 선정이었다. 과학서로 분류되지만 철학서에 가까웠다. 


물리는 꽤 좋아하는 과목이긴 했었다. 물화생지 중에 물리가 제일 나았고, 고3때도 대학에서도 물리를 수강했다(만 거의 까먹었다). 물리가 그나마 괜찮았던 이유는 비교적 적은 개념과 공식으로 많은 현상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 말하자면 뻑뻑 외울 것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생물이랑 지구과학은 암기 위주여서 그다지 흥미를 못 붙였고, 화학은 재밌었지만 화학반응 식을 외워야 되는 게 번거로웠다. 반면 물리는 지금까지도 비교적 여러 개념이라든지 공식이 기억난다. (그 수준은 일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순명쾌한 원리. 예전엔 물리가 그런 것을 다루는 것 같아서 꽤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의 존재에 대해서 좀 갸우뚱하다. 그런 것이 있으나 없으나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인간이 절대 진리를 완전하게 인식하고 검증할 수 있는지 회의적이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창시자 입장에서 이런 인식론과 존재론의 문제를 대화 형식으로 다루지만... 내겐 절박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므로 상당히 괴로운... 독서였다. 



1. 과학 발전은 암벽등반처럼 차근차근 한 발짝씩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중심 문제가 해명되면서 모든 것이 같이 풀려나가는 쾌도난마 식으로 발전하는가? 


2.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인 세계가 실재하는가? 혹은 실체는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구성되는가? 


3. 인식범위를 초월한 질서라든지 원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가치 있는가?



어렵게 읽은 이 책이 남긴 질문들을 간신히 정리해보았다. 진지하게 대답을 시도해볼 계획은... 없다... 정확히 같은 질문을 다루는 철학 수업을 들었다가 안드로메다로 갈 뻔 했었다. 철학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추상적인 절대 진리를 끝없이 파헤치기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법칙을 발견하고 실제에 적용해 가며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좋다. 이론적이고 원리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경험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면이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또 내 사고는 일상세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인 것 같다.


어떤 사실이 있었는지 발로 뛰고 기록을 뒤져서 밝혀내는 일이 재미있다. 탐정 역할에 멈추기보다는 여러 사실을 관통하는 체계, 법칙 혹은 원리를 함께 발견해서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결론도 짓고 싶은 욕심은 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전체 진상의 작고 불완전한 한 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또 그 진상이란 것은 존재하기는 해도 내 이름은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처럼 관점에 상관없이 일정한 모습이라기보다는 홀로그램 형태일 것 같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조각을 추가하거나 폐기해 나가면서 더 크고 정밀한 홀로그램으로 발전하겠지. 진실에 대한 이런 관점은 그냥 소박한 믿음일 뿐이고 어떻게 '논증'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철학 시험이나 페이퍼를 앞두면 도통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결론. 나는 경험의 세계에 사는 생활인이다. 하이젠베르크 어려워. 철학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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