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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빚으로 지은 집

bravebird 2018. 5. 28. 11:42

이것도 친구들이랑 같이 읽었다. 이번 모임은 내 집으로 초대를 했다. 빚으로 빌린집임 ㅋㅋㅋㅋㅋㅋ 가계부채의 급증이 경제위기의 징후라는 얘기는 흔히 들어보았다. 그게 어째서 그런지 총수요 중심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현 대출제도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하는 책이다. 


서민들은 자산 대부분이 주택에 묶여 있고 자산의 대부분을 빚을 내어 형성했다. 빚 많은 서민 가계는 한계소비성향도 높다. 빚이 있을수록, 집값이 떨어질수록 소비를 드라마틱하게 줄여버린다. 밤은 깊어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듯이 집값이 폭락해도 채무 액수는 고정돼 있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서 빚 갚으려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빚 내서 독립해 나오면서 허리띠를 졸랐다. (근데 슬픈 것은 그다지 졸라지지가 않는다 대체 여기서 뭘 더 줄임?) 올해는 빚이 생겨서인지 휴가 의욕도 별로 없고, 진짜 옵션가구 이외에는 가구도 하나 없이 살고 있다. 누가 와보면 도닦는 암자인줄 앎. (이 책 보면 가구, 가전, 자동차 같은 내구재 소비가 줄어드는 것도 경제위기의 징후라고 하는데 딱 내가 그렇게 살고있음) 하다못해 몇천원짜리 생활용품 하나도 없는 대로 버틸 만큼 버텨보다가 가격비교 해가면서 산다. 그런데 서민 채무자들의 이런 상환 노력 때문에 총수요가 줄어들어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경제 위기가 시작된다.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이다. 


부자들은 그 반대다. 총자산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으며 자기자본비율이 높고 다양한 금융자산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집값이 좀 떨어져도 다른 자산을 다양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크게 줄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 주로 은행으로 대표되는 부유층은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준 쪽이며, 집값이 떨어져도 빚은 원래 액수 그대로를 돌려받게 되어 있다. 최악의 경우 깡통주택이 되어버려도 집을 압류해버리면 된다. 저자는 이처럼 자산 시황의 변동에 아랑곳없이 액수가 고정된 채권-채무 계약이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며, 집값 붕괴의 부정적 연쇄효과에 취약한 경제 펀더멘탈을 만든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증권의 방식을 도입한 좀더 유동적인 채권-채무계약을 지지한다. 갑작스럽게 집값이 떨어지면 채무자를 보호해 주고, 집값이 오르면 채권자에게 추가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채무자와 채권자는 자산 시황의 갑작스러운 변동 시 고통과 이익을 분담할 수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르더라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좀더 내야 되기 때문에 무분별한 투기심리를 막아주어 집값 버블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집값이 많이 떨어질 경우에는 채권자가 고통을 분담해야 되기 때문에 부실 대출을 내주지 않게 되고, 채무자의 부담이 줄기 때문에 압류와 경매가 들불처럼 번져 집값이 내려앉는 사태도 방지할 수 있다. 


이런 고통분담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는 우려도 있다. 애초에 무리하게 빚을 내서 형편에 안 맞는 집을 구입한 개인이 그 선택의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이다. 집값의 붕괴는 태풍 같은 것이라 개인의 잘못이라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은행 역시 집값의 상승과 붕괴와 경제 위기를 부추겼다. 채권의 액면은 부동산 시황이 어떻게 되든간에 보전되고 최악의 상황에선 압류를 해버리면 되기 때문에 은행은 잃을 것이 없다. 따라서 은행은 상승장일 때는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어 집값을 올렸고, 하락장일 때는 압류를 때려서 그 지역 집값의 연쇄 붕괴를 일으켜 많은 가정을 파산으로 내몰았다. 그러므로 집값 폭락에 따른 불황은 선택을 잘못한 개개인뿐만 아니라 채권-채무계약 체제 자체의 불평등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나는 이렇게 증권의 방식을 응용한 채권채무 계약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봤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다음 읽기로 미리 정해놓은 책은 《보수의 정신》이다. 정치 전공한 친구가 제안했는데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빚으로 지은 집 읽으면서 아무래도 진보/보수, 좌익/우익 같은 진영 문제가 계속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보수'가 뭔지 '우익'이 뭔지, 그렇다면 과연 '진보'는 뭔지 그 정의를 잘 모른다. 그나마 우익은 자유와 성장 중심, 좌익은 평등과 분배 중심의 경제 논리로 정의가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보수나 진보는 정말 상대적인 것 같다. 보수는 기존 체제를 가급적 지키려는 태도, 진보는 그것을 개혁하려는 태도인데 기존 체제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만 보수/진보 개념을 못 잡는가 했는데, 같이있던 애들 다 정치에 경제 전공했는데도 의외로 마찬가지였다. 내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예를 들었더니 그러고 보면 진보/보수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며 흥미로워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우익 진보와 우익 보수로 나누는 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우리끼리 대략 중지가 모아졌는데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를 보통 나눠서 생각한다는 거, 진보와 보수는 그 내용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기존 체제에 대한 '태도'라는 거, 우익과 좌익은 자유·성장 vs 평등·분배 구도로 정리되는 경제적 입장 차이라는거. 자세한 것은 그 다음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는 거였다. ㅋㅋㅋㅋ 글 엄청길어졌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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