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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의 탄생 -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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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의 탄생 -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bravebird 2018. 1. 21. 08:06


데이트의 탄생 -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이것은 심히 의표를 찌르는 제목이다. 미국의 근현대 데이트 변천사를 써내린 '역사책'이다. 출간 무렵부터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렸는데 오래 잊고 있다가 드디어 발견해서 바로 빌려 읽었다. 

데이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행위 같으면서도 코드이자 제도이고 패러다임이다. 이 책에서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10년 이전에는 구애자 남성이 여자 집을 방문하는 만남이 정석이었다. 손님을 맞는 쪽인 여자가 초대를 통해서 관계를 주도했고, 초대받지 않고 찾아온 구애자 남성의 미래는 암울했다. 초대와 방문을 둘러싼 수많은 의례(적당한 시간 간격, 다과 준비 여부, 보호인 동반 여부, 대화 주제, 적절한 방문 시간, 복장, 제스처 등)가 있었고 이걸 우아하고 능숙하게 준수해야 짝짓기에 희망이 있었다. 가시적인 규범이 많았던 클래식한 시절이었다. 

191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도시문화가 확산되고 소비자본주의가 발전했다. 이 무렵부터 현대적 의미의 데이트가 이전 시대의 방문 관습을 대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데이트는 일단 집 밖으로 남녀 둘이 나가야 성립되었다. 대표적 데이트 장소인 레스토랑, 카페, 영화관, 극장 같은 곳은 모두 대도시의 공공장소이자 소비공간이다. 데이트는 이전 시대와 달리 남자가 여자한테 신청하고 여자가 수락하면서 시작된다. 한번 나가면 돈을 쓸 수밖에 없는데 당시 경제력의 우위가 남성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에티켓 조언서들을 보면 여자가 관심을 먼저 보이고 적극적이면 그 관계엔 가망이 없었다. 남자가 돈을 내기 때문에 주도적인 위치를 점해야 했다. 적극적인 여자는 공격적이고 드센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제2차대전 이전에는 여러 상대를 경쟁적으로 만나는 풍조가 우세했다. 댄스홀에서 쉴새없이 파트너를 바꿔가며 춤추면서 교제하고 인기를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춤을 다 췄는데 여자에게 그 다음 상대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만큼 치욕적인 일은 없었다. 전쟁 후에는 완전히 세태가 바뀌어 한 상대자를 오랫동안 사귀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전쟁으로 남성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전쟁과 냉전 등 불안정한 세계 정세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욕망도 한몫 했다. 조혼 풍습이 유행했고 10대 초반부터 데이트를 시작하도록 부모들이 등떠밀었다.

연애 규범은 이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그렇지만 데이트가 소비 행위와 결부되면서 남녀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성역할 구별이 뚜렷해졌고, 이것은 남녀 간 재력의 격차가 현저히 줄어든 지금까지도 살아남았. 데이트가 방문 관습을 막 대체했던 20세기 초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미비했다. 소득을 가진 쪽이 남자이고 데이트는 소비공간에서나 이뤄졌기 때문에 돈 쓰는 쪽인 남자가 먼저 신청해야 만남이 가능했다. 남자가 돈을 내니까 주도권도 가졌다.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납득은 된다. 그렇지만 이 틀이 지금까지도 대체로 유지된다는 것은 2010년대 극후반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전형적인 문화지체 현상이다. 

그간 여자들은 일터로 진출했고 충분한 구매력을 갖게 되었다.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전담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남자가 장소를 제시하고 밥값을 내고 여자가 후식 같은 자잘한 걸 내게 되어 있는 소개팅 체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모르는 사람한테 얻어먹는 것이 당연한가? 남자나 여자나 사람 만나려고 나간 건 똑같은데? 그런데 내가 그냥 내버리면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얻어먹자니 요즘 여론도 험악하고 나도 돈을 버니까 그럴 이유가 없다. 나눠 내자고 하는 것도 초면에 왠지 쪼잔해 보여서 좀 그렇다.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당겨주고 가방을 들어주는 것도 별로 필요 없다. 왜 데이트에 나온 남자는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욕을 먹고 여자는 고맙게 받기만 해야 하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른 몸이어서 허약할 거라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자랐다. 그게 엄청난 굴레여서 진심으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약해 보이는 것을 적극 기피한다. 이것은 내 성격과 행동 방식과 각종 취향과 가치관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특성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데이트와 소개팅을 하려면 약하고 보호받는 역할을 자처하고 거기에 감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난 직접 선택하고 싶어한다. 선호와 요구사항이 뚜렷한 편이다. 직접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걸 좋아한다. 뭔가를 진지하게 하려고 하면 이미 머릿속에 커리큘럼이 있다. 직접 선택한 일을 할 때는 눈빛이 다르다. 태도도 능률도 다 다르다. 사람 대하는 일에도 마찬가지라서,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직접 말을 걸고 교제를 넓히고 싶다. 그런데 데이트 상대한테 이렇게 하면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왜 여자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만남에 적극적인 것이 결함이 되는가? 여자는 왜 가만히 기다리거나 은근히 유혹하는 역할에 붙박여야 하는가? 

데이트 비용과 계획의 부담을 남자가 짊어지는 건 확실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동반되는 현상, 즉 적극적인 여자가 별종 취급받는 것 역시 구시대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도 동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남자들은 얼마나 될까? 동전의 양면인 이 두 현상을 한꺼번에 문제삼을 수 있는 (+잘생기고 담대한) 남자라면 아마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이고 삼고초려라도 불사하겠다. 직장에서 몸 사리고 남자들에게 의존하는 여자들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연애 관계에서는 여전히 전형화된 답답한 여성상이 아무래도 좀더 일반적이다. 그리고 어느 쪽에서든 똑똑하거나 의견이 확실하거나 담이 센 여자들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비슷한 남자들은 각광받고 주도적인 위치를 점한다. 남자들이 데이트에서 돈을 많이 내고 직장에서 궂은 일을 거의 떠맡고 부양자 역할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아쉬운 현실이다.

지금의 나는 연애 제도의 경계선에서 그 안팎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현행 데이트 제도의 불문율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데이트가 한정적인 소비공간에서나 이뤄지는 점은 뭐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렇지만 양식화된 돈계산을 둘러싼 엄청난 공방, 약하고 보호받는 역할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 비슷하게 행동했을 때 회사에서는 욕을 먹으면서도 데이트에서는 대체로 그렇게 해야 되는 점내가 먼저 다가가면 부담을 주는 점... 다 내 방식이 아니다. 남녀 둘다 직접 생활에 부딪쳐서 같이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결혼이 차라리 더 평등해 보인다. 

책은 재밌고 가볍게 읽힌다. 역사책이라서 당시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연애 조언서 등등 아주 실제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다거나 무리한 주장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역사책이나 사회학/인류학 책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한번쯤 외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주어서 흥미롭다. 이 책은 현행 연애제도를 시간과 공간의 좌표축에서 상대화시키면서 연애나 데이트 자체가 얼마나 사회경제적인 현실에 기대어 있는지, 얼마나 제도 혹은 패러다임처럼 기능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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