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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bravebird 2018. 1. 7. 22:36

독서모임을 빙자한 친구모임을 월 1회 하고 있다. 10년 된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오늘은 두 번째 모임이었고 내 제안으로 노자 《도덕경》을 다뤘다. 저번 달은 군주론이었는데 글을 아직 안 남김. 다음 기회에. 

《도덕경》은 얇고 쉬워서 금방 읽혔다. 아포리즘 모음이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마음 편하게 한 2-3일 정도 읽으니 끝났다.

평가는 내가 제일 후하게 줬다. 한 친구는 동양철학이 잘 안 맞는다고 했다. 도가 뭔지 설명도 못하는 걸 보니 엄밀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고,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 같단다. 다른 친구는 꽤 호평을 했는데 《도덕경》 내용이 상식(직선적인 세계관)에 반하기 때문에 허를 찌르고 시야를 넓혀준다고 했다. 나도 대체로 비슷한 감상이다. 

내용 요약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훨씬 잘 해놓았을 것이니 생략하고, 귀퉁이를 접어 놓았거나 친구들에게 소개한 부분을 옮겨 본다. 

1. 성인은 재물을 축적하지 않는다. 모두 그것을 남을 위해 쓰지만 자기는 더욱 많이 갖게 된다. 모두 그것을 남에게 주지만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 (顯質, p.321)

2. 의식적으로 행하는 자는 일에 실패하고, 물건에 집착하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그래서 성인은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실패가 없는 것이다. 그는 집착하는 물건이 없다. 그러므로 잃는 것이 없는 것이다. (守微, p.285)

3. 발돋움을 하고는 오래 서 있지 못한다. 발걸음을 크게 떼어 놓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려 하는 사람은 밝게 알려지지 않는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은 분명히 알려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다.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일들은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먹고 남은 찌꺼기 같은 쓸데없는 행동이 된다. 만물이 모두 그러한 짓은 싫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그렇게 처신하지 않는 것이다. (苦恩, p.200)

《도덕경》을 높이 평가하면서 제일 먼저 꼽은 인용문은 1번이다. 요즘 내 최대 화두가 어떡하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는가라서 그렇다. 어떡하면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훨훨 벗어날까 하는 것. 나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아주 커다란 제약이라고 느낀다. 나 하나한테만 소용이 닿는 일에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쏟는 바보짓으로 삶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작고 낮고 약해야 하고, 작고 낮고 약한 것들이 크고 높고 강한 것들을 이긴다는 게 노자가 말하는 도의 작용이다.



근데 여기 모순이 있다. 무위자연의 도를 추구한다기에는 욕심이 엿보이지 않는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거! 이게 어떻게 무위자연인가!? 

'도'가 목적인 무위자연의 삶은 자유롭게 노니는 삶, 욕심 없고 소박한 동물적 삶일 것이다. 그렇지만 '도'를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세상을 지탱하고 다스리는 일에 응용할 수 있다. 경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제자백가 학파로는 법가와 병가가 있는데 노자 사상이 의외로 이 법가나 병가와 약간 통한다. 

사실 《도덕경》은 여러 나라의 각축으로 어지러웠던 춘추전국 시대의 초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도술을 병술에 적용하는 병가적인 내용이 《도덕경》의 道經과 德經 중 후자에 담기게 되었고, 이에 혹자는 《도덕경》의 본질을 통치사상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이 점을 이중톈 중국사 《백가쟁명》에서 처음 읽고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본격 경세서인 《군주론》을 읽은 김에 《도덕경》을 읽고 비교해 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도덕경》에 대한 내 감상은 이렇다. 

1. 허를 찌르고 시야를 넓혀주는 초월적인 가르침이다. 돈을 모아라, 열심히 일해라, 예의를 지켜라, 큰 뜻을 품어라, 똑똑해져라, 자기 PR을 해라, 노오력해라 외치는 세상인데 그 정반대를 권유한다. 빙 돌아가는 듯한 방법으로 더 크고 넓은 경지에 도달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매력적이다.

2. 그런데 정말 무위자연으로 모든 것을 그저 렛잇비 해가며 살면 동물과 다를 게 뭔가? 소박하게 노닐며 순리에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력하고 발전하고 이룩하는 것도 인간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3. 공적 세계에서는 현실주의적 처세로 성취와 발전을 이루는 동시에, 자연인으로서는 무위자연과 소요유를 추구해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보자. 한마디로 일할 땐 확실히 일하고 놀 땐 화끈하게 놀자는 말이다. 

4. 자아를 잊어버리고 넘어서고 싶은 터에 시의적절한 경구가 많았다. '나'에 집중하고 '나' 하나 건사하는 삶이 정말 공허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기폭제가 바로 이거라는데 그쪽으로 빠지자는 건 당연히 아니고!'나'라는 의식이 별로 으면 좋겠다. 정체성이란 게 희미하면 좋겠다. 모든 것은 변하고 나도 변할 것이기 때문

5. 읽으면서 자꾸 공각기동대가 떠오른다. 다시 보고 싶다. 수차례 봤지만 최고다. 그리고 이 책 후속으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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