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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bravebird 2017. 9. 11. 11:24

이 블로그에는 아주 눈엣가시같은 글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대표적인 것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쓴 글이다. (bravebird.tistory.com/355)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이만 도대체 어떤 부분이 내 일상의 무슨 구체적인 조각을 건드렸는지 얘기하는 데 실패했다. 개인적인 인상을 구체적인 글로 번역해내는 데는 원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해를 도울 에피소드나 이미지를 찾아내서 아이디어와 연결시키고, 생각을 다듬고 단어를 골라가며 글을 여러 번 수정하는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다. 그런 노역은 귀찮아 전부 생략했기 때문에 저 따위가 된 것이다. 

'좋은 차와 번듯한 집 이거 진짜 원하는 건가?' 하는 뻔하디 뻔한 하품나는 생각이 그나마 저 글의 중심 생각인 듯 하다. 그런데 '개인주의'와 '나치즘'과 '직장'과 '국가'에 심지어 '징병제'라는 거창한 단어에까지 휘둘려 버렸다. 나는 개인주의며 나치즘이며 징병제가 뭔지 한마디로 꼬집어 말할 능력이 없다. 직접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단어와 관념을 어떻게든 글에 꽂아넣기 위해 생각을 생략해버린 것이다. 결국 주제도 불분명한 형편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저 글은 이런 책을 읽었노라 + 직접 본문을 베껴썼노라 말고는 아무런 메시지도 가치도 없기 때문에 그냥 삭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준거로 삼을 만한 좋은 세이가 있다. 조지 오웰의 <정치와 영어(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이다. 옛날에 영어 어구를 익힌다고 문장을 여러 개 써서 친구한테 보여줬다가 그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글쓰기와 영어에 대한 생각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았다. 조지 오웰은 이 짧은 에세이에서 이미지의 진부함과 의미의 불분명함 때문에 현대 영어 산문의 수준이 떨어져 있다고 썼다. 그 원인으로는 생명력을 잃은 비유 표현, 의미를 과장시키는 기성 어구를 간명한 단어보다 선호하는 경향, 수동태 범람, 현학적인 라틴·그리스 계통 단어의 남용, 구체화되지 않은 채 거창하기만 한(=의미 없는) 추상적 개념어의 남발을 들었다. 

친구에게 보여줬던 영어 문장에 빈발한 어구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in the vicinity of, in lieu of, have a proclivity to 등등. 논문이나 학술서를 읽다가 영어의 부족함을 느껴서 이런 유식한 어구나 표현들을 통째로 익히려 했던 건데, 전부 나쁜 영어의 예시였다. 굳이 길고 거창한 어구가 아니어도 near, instead of, tend to 같은 짧고 쉬운 표현으로 해결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기성 어구를 짜깁기하는 식의 글쓰기가 간편하고 똑똑해 보이는데다 글의 길이도 늘려주지만, 글쓴이의 의식적인 노동을 줄여버리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명료성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나는 이 조언 덕분에 학술 작문에 자주 등장하는 유식한 표현을 구사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났다. 이미 알고 있는 기본 어휘나 단순한 구조의 문장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과 함께, 먼저 스스로의 생각을 날카롭게 벼린 다음에 적확한 단어·이미지·비유·예시를 골라서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얻었다.

조지 오웰은 문체론에서 그치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단어와 기성 어구로 글을 도배하는 과정이 치밀한 사고 활동을 대체해 버리면서 정치적 거수기를 대량 생산해낸다고 지적한다. 이 글에서 가장 처절하게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현대 영어에서 fascism은 뭔가 나쁜 것을, democracy는 뭔가 좋은 것을 가리킬 뿐이라는 일갈이다. 파시즘이나 민주주의를 대체 무슨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있어 보이기 위해, 그렇게들 쓰니까, 정치 선전에 사용하기 위해 일단 글에 끌어들이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내가 제일 한심하게 여기는 단어 중 하나가 '진정성'이고 요 근래 대부분 패스하는 단어는 '페미니즘'이다. 대체 뭘 생각하면서 끌어다 쓰는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으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공허한 싸움을 유발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조지 오웰은 그런 식으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의 예로 정치·사회 분야에서는 democracy, socialism, freedom, patriotic, realistic, justice, class, totalitarian, science, progressive, reactionary, bourgeois, equality를 꼽았고, 예술·비평 분야에서는 romantic, plastic, values, human, dead, sentimental, natural, vitality를 골랐다. 글로벌 인재, 거시적 시야, 고객의 니즈 같은 지긋지긋한 자기소개서 클리셰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인재가 대체 뭔지 모르겠고 거시적 시야라는 게 어디까지인지 대중이 없는데 내가 그렇다고 탕탕 우겨야 취업이 된다니 허허 거 참... 과히 찜찜한 경험이었다. 사실 이 블로그에서 자주 쓰는 '실크로드'란 단어도 개념 해명이 부실한 채로 끌어다 쓰는 고정표현임을 고백하는데, 대체어를 떠올려낼 내공이 없어서 일단 사용중이다.

평생 가도 장악할 수 없는 개념이나 거창한 표현에 글 전체를 휘둘려 버리고 싶지 않다. 직접 알고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을 구체적인 이미지나 사례로 이야기하고 싶다. 인용하는 버릇을 버리고 싶은 것,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파시즘'이라는 프레이밍에 관심이 갔던 것, 문예비평이나 문학이론 분야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 장차 재밌는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희망 모두 이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 글쓰기를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당당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http://www.orwell.ru/library/essays/politics/english/e_po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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