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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기업 파타고니아

bravebird 2017. 8. 21. 20:01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쓴 Let My People Go Surfing 책을 주말에 다 읽었다.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브랜드 회사인데 평소에 옷 잘 만든다고는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더 멋지다. 


나는 비즈니스 월드에 대해서 대체로 삐딱한 생각이다. 직접 몸을 담게 되면서 좀 바뀌긴 했어도 이 두 가지 생각은 그대로다. (1) 이런 물건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자꾸 없는 욕망까지 조장해서 팔아 먹는다. (2) 이렇게까지 일 안해도 생존에 문제가 없는데 수당도 안 줄 거면서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퇴근을 안 시킨다. 이런 인상이 뿌리가 박혀 있다. 사실 이젠 나도 그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시장의 압박이라든지 인간의 어리석음^O^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곳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싶고, 그래서 비교적 마음 편히 살고 있긴 하다. (=포기하면 편해요^O^)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그룹에서 취급하는 아이템에 대해서 관심이 희박할 뿐 아니라 그거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 너무 팔리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기업의 목표를 내 인생과 동일시해야 하는 고위직까지 진출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이게도, 이게 자기실현적 발언이 될까봐 조심스럽다!) 그나마 오기와 자존심은 남아 있고 월급 좋은 줄은 알기 때문에 붙어있는 거지. 세상에 완벽한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살려고 조금이나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파는 아이템이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이 명함을 갖고 야심과 자부심을 갖고 잘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회사 생활이 과히 나쁘지 않은 지금도 유효하고, 기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파타고니아도 낙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고민은 덜해 보인다. 애초에 아웃도어 애호가들이 자기가 쓰려고 손수 만든 제품을 팔면서 시작한 회사다. 처음부터 퀄리티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수십 년을 쓰게 한다. 수리하거나 중고 거래해서 재사용하게 하는 시스템도 잘 갖춰 놓았다. 자사 옷을 팔면서 이 재킷을 또 살 필요 없다고 광고를 낼 정도로 꼭 필요한 소비만 권장한다. 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자발적으로 진짜 믿었다. 이에 매출의 1퍼센트 혹은 순수익의 10% 중 더 큰 액수를 매년 환경 단체에 기부하도록 정해 놓았다. 직원은 자녀랑 같이 사내 보육 센터에 같이 출근하고 식사도 함께할 수 있다. 평소에 아이들을 조그만 핵가족의 울타리에 가둬놓기보다는 마을 전체가 다같이 키워내는 게 더 좋다고 믿는데, 사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요즘 세상에는 거의 공상에나 가까운 그런 보육을 파타고니아에서는 실제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파도가 좋은 날엔 나가서 서핑을 할 수 있도록 플렉스타임을 운영하는 건 기본이다.


파타고니아는 선량한 기업을 지향하고 엄청나게 쿨한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끌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합목적적이고 일관성이 있어서 호감이 간다. 창업주 이본 쉬나드는 산이 좋으니까 산 타러 다니려고 직접 대장간에서 장비를 만들었다. 가족들과 친구들도 쓸 거니까 튼튼하게 만들었다. 물건을 만들다 보니 꽤 괜찮아서 회사를 세웠다. 돈을 벌다 보니 바위가 망가지는 게 눈에 보여서 환경 보호 활동을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원래 하이커에 서퍼들이니까 날이 좋으면 밖에 나간다. 자사 제품을 들고 나간다. 산 타고 파도 타야 되니 회사를 너무 크게 키우지 않고 본연의 일에 집중한다. 파타고니아의 이 모든 성장 과정과 일상 생활에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없다. 모든 플로우가 유기적이고 일관적이며 적절하고 지당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저 뽑아주는 회사에 들어가서 참고 다녀야 하는 현실이다. 월급이나 받으면 다행인 세상에 가치관의 부분까지 고민하는 것은 사치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월급이 인생 목적 자체는 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많이 팔릴수록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아이템을 분노를 눌러가며 아침식사와 저녁시간을 희생해서 팔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거리낌없이 펼쳐보이기는 어렵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안정되어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 덕분에 멀리 볼 욕심이 나면서 오히려 더 깊어지는 고민이다. 나는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일에 사심 없이 치중하고 싶고, 속한 단체와 나의 이익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가급적 일치했으면 한다. 표현력이 모자라서 감상적으로 클리셰처럼 적힌 글일지도 모르겠지만 절실하다. 


예전에 마즈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사회 공헌 기업이라는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마즈도 파타고니아도 전부 공개기업이 아니다. 창업주의 주관대로 밀어부치려면 주식 상장된 공개기업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본 쉬나드는 책 표지에도 썼지만 reluctant businessman이고 기본적으로는 아웃도어 사나이기 때문에 돈 버는 것보다는 클라이밍에 관심이 많다. 오너가 이러니 주식상장 기업일 수가 없다. 부채 비율도 낮게 유지하고 있다. 역시 자기자본비율이 중요해. 그래야 멋대로 하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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