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최근 독서 본문

독서

최근 독서

bravebird 2017. 5. 10. 00:06

아. 뭔가 알찬 글을 쓰고 싶은데 진도가 더디다. 이제 휴일도 끝인데 독서 잡담이나 해야지. 최근 몇 달간 책이 정말 재미없었는데 황사어린 황금연휴를 맞아 내내 집에 뒹굴면서 조금은 속도를 붙였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입니다. The Common Law in Two Voices.

https://www.goodreads.com/book/show/8426895-the-common-law-in-two-voices

(제 아이디 bravebird 보이실 겁니다. ㅎㅎㅎ 올해 읽은 책들은 리뷰도 조금 끄적인 게 있습니다.)


영어를 기반으로 한 보통법이 이중언어 사회인 홍콩 법정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사회학적 이야기입니다. 영어와 광둥어의 사회적인 기능 분화, 그리고 각 언어로 진행되는 재판이 어떻게 다른지 다루고 있습니다. 법과 정치 + 언어 + 홍콩 + 사회학을 다 다루고 있으니 심각하게 취향 저격인 책이고 이 주제로 나온 유일한 논저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전혀 출간돼있지 않은 내용이라 킨들로 원서를 찾아읽을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잘 읽혀요. 중간에 담화분석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 부분은 조금 재미가 덜합니다. 지금은 다 까먹은 거 같지만 언어학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데 (언어 덕후임) 현상보다는 체계에 이끌리는 게 아무래도 맞는지, 화용론보다는 통사론이나 음운론, 의미론 같은 분야가 훨씬 흥미진진했습니다. 담화 분석은 왠지 조금 지루하게 느껴져요. 이 담화분석 부분을 잘 극복하고 결론까지 다 읽고서 홍콩 법조계의 이중언어 현상에 대한 글을 쓰려 합니다. 


랭던 워너에 대한 Langdon Warner Through His Letters는 옛날에 제본을 해놓은 게 있습니다. 읽고 랭던 워너 이야기를 이어서 조금만 더 쓰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원래 7월에 네덜란드/핀란드 가기 전에 랭던 워너, 알베르트 폰 르콕(베를린 달렘 미술관), 러시아 탐험가들 이야기를 다 정리해 놓고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핀란드 전 대통령(러시아 군대에 소속돼있던 시절 신장 탐험가였음)에 대해서도 조사해 놓고 가려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부족해 보입니다.



작년 런던 Foyles 서점 스칸디나비아 코너에서 발견한 만네르하임 관련 책들. 아 내년은 핀란드네, 하고 감이 왔음.



핀란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조사도 못했고 네덜란드 준비는 조금 하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도 갖고 싶고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일도 계속 하고 싶은 사람이라 가족과 여성 노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덜란드가 아무래도 이쪽 분야에선 앞서가는 나라죠. 동성결혼도 제일 먼저 인정한 나라고요. 최근에 국내정치적으로도 이슈가 된 김에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읽어보았습니다. 안식년 1년 받아서 파트너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체류했던 미국인 레즈비언 경제학자가 쓴 책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동성결혼 연구를 한 후에 매사추세츠로 돌아갔더니 마침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행운을 누리신 분이죠 ㅋㅋ 번역이 별로여서 집중이 안되어 휙휙 넘겨 읽었습니다만 생각거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벌써 나이가 차서 올해부터 부모님이 하루도 빠짐없이 사위 데려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고 저도 농담으로 넘깁니다만, 결혼을 과연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결혼이란 대체 무엇이고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게 지금부터 앞으로 몇 년 동안, 아니 평생을 걸쳐 아주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동성결혼 이슈를 통해서 결혼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 결혼 권리를 얻으려고 투쟁하는지 살펴보면 되니까요. 


결혼은 경제 제도입니다. 부부의 자산을 합쳐서 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자녀를 공동 양육하기 유리하도록 갖은 혜택을 주고, 세제나 사회 보험도 기혼 가정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경제적 권리를 이성애자 커플과 동일하게 누리기 위해 동성애자들은 결혼권 쟁취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는 결혼뿐 아니라 시민결합이라는 유사 선택지도 있습니다. 경제적 권리와 의무는 결혼의 경우와 거의 비슷하고요. 그런데도 동성 커플들은 시민결합보다는 결혼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결혼은 두살배기도 이해하는 강력한 결합이고, 가족과 친구들 앞에 평생의 헌신을 선언하는 일생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시민결합의 파트너십은 그런 의미가 빠진 채 그저 실용적이고 행정적인 함의만을 주기 때문에 진정한 결혼 평등을 원하는 동성 커플에게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결혼은 그 뿌리부터가 사유재산 보호와 자녀 양육을 위한 제도인데 요즘처럼 무자녀 상팔자 추세가 지속된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방법으로 결합해야만 할까, 하는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유럽처럼 동거 커플이나 생활 동반자 관계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앞으로는 그런 법도 당연히 생기겠지,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혼과 시민결합의 선택지가 모두 주어진 네덜란드에서, 결혼 제도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경우도 많고 + 결혼 자체가 낡은 관념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동성 커플들이 시민결합보다는 결혼을 선호한다는 겁니다. 이걸 보니 결혼의 의미가 좀더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성적으로 배타적인 결합 + 공동 생활과 자녀 양육을 위한 경제 제도 + 사회보장이 적용되는 기본 단위 + (근대 이후부터 특히낭만적 결합 + 거기다가 평생의 헌신 +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선언하고 널리 인정받는 것. 뭐 여기서 딱히 반대하는 부분 없네요. 결혼 괜찮은 것 같습니다. ㅋㅋㅋ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돈도 벌고 내 이름 세 글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육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 후에 평생을 아쉽고 괴로워하는 걸 가까이서 많이 봤거든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여자든 남자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결혼을 더 알차고 지속 가능하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도록 결혼의 외연은 넓어지고 내연은 평등해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 현실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투표 했고 앞으로도 계속 가족과 노동 이슈에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가질 수밖에 없겠죠. 매일매일 부닥치는 직접적인 현실일 테니까요.


《성·노·동이라는 책도 보고 있습니다. 왠지 오늘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낮잠 자서 망했어요. 조세핀 버틀러라는 사람이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철폐하자는 abolition 운동을 벌였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게 벌써 19세기 말의 일이라네요. 빅토리아 시대에 이런 주장을....! 매춘폐지주의(prohibition), 규제폐지주의(abolition), 비불법(not illegal)과 비범죄(decriminalization) 구분의 의미도 새로 배웠습니다. 매춘폐지주의는 성매매 행위 자체를 근절하려는 것으로 한국의 성매매특별법이 취하고 있는 기본 입장이지요. 규제폐지주의는 성을 거래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국가 규제를 철폐하고, 대신 포주나 알선 행위에 대한 법은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성매매 행위 자체는 문제삼지 않지만 실제 일을 하기 위한 모든 일들이 불법이라 성노동자의 운신에 제약이 생기지요. 비범죄주의라고 하면서도 불법화되어 있는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좀더 알아보면 의견 정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성을 사고 싶지도 팔고 싶지도 않고 성매매에 관여된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지만, 성노동을 노동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서 음성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입장으로 점차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원래는 내가 감정적으로도 찬동하고 실제 실천해도 거리낌이 없을 입장을 갖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싫어서 안 하더라도 그 길을 선택한 다른 사람들이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양립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제 국지주의를 주장할지 전면개방하자고 할지 단계적으로 하자고 할지 뭐 이런 걸 생각해 봐야겠네요. 


정책적으로는 최대한 여러 가지 옵션을 주고 개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주는 방법이 끌립니다.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연인이랑 시민결합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친구랑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뭐 이런 식으로요. 성매매도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성노동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대신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고, 그만두고 다른 일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처음부터 말고 싶으면 말고. 이렇게 선택지가 많이 있는 사회가 아무래도 좀더 좋은 곳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삶에서는 (아무래도 실용적인 이유에서) 그 많은 선택지 중에서 빨리 추린 다음에 어서 선택해서 대략 만족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욕심에 머리가 아프군요. 해내고 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은 모자라고, 가고 싶은 곳도 넘치는데 돈과 휴가일수는 한정돼 있네요. 


우리 회사의 최대 장점은 1주일 남짓의 휴가를 2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대에 여유 있고 체력 될 때 견문 넓혀두는 게 최고인 거 같아 이 혜택은 매년 알차게 누리고 있습니다. 한 번은 7월에 핀란드+네덜란드로 갈 건데 나머지 한 번은 어디로 갈지 생각 중입니다. 그간은 실크로드 약탈 유물을 마저 구경하는 게 목표여서 다음 행선지가 거의 고정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아무 데나 갈 수 있어서 후보지는 많은데 선택이 어렵네요. 선택의 역설입니다. 


1. 부탄 - 티베트 네팔 북인도 히말라야 이쪽 정말 아름답습니다. 티베트랑 네팔 정말 좋았습니다. 올해 수교 30주년 프로모션도 있어서 좋은 기회인 듯 합니다. 8월에 가려고 나이 비슷한 여자 동행 분을 구해봤는데 하필 등산 과호흡증이 있다고 하셔서 정중히 거절한 후에 계획 자체가 붕 떴습니다.  

2. 디트로이트 - 어떻게 그 도도했던 도시가 그렇게 폭망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입니다. 진짜 가보고 싶습니다. 자동차공업 도시가 지금은 도시농업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슈퍼마켓이 없어서 단백질 보충이 어려워 스컹크 사냥해 먹는다는 얘기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우리 돈으로 몇백 만원만 주면 살 수 있는 폐가가 널렸고, 덕분에 독립예술가들과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점점 몰려든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끝나기 전 아직 황폐할 때 가서 구경하고 싶습니다. 다만 위험하고 대중교통이 별로 없을 것 같아 혼자 다니기 매우 힘들 테고, 주변에 엮어 갈 만한 곳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시카고를 묶어? 아이오와에 친구 보러 가? 아니면 아예 캐나다로 넘어가? 아니면 아예 필라델피아를 묶어서 소울음악 투어를 다녀올까! ㅋㅋㅋ 디트로이트 하면 모타운 레코드, 필라델피아 하면 필리 소울! 


모타운 하면 생각나는 Jackson 5. 아기 마이클잭슨의 열창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 소울 하면 Jill Scott. 딱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된 The Roots. 제일 좋아하는 힙합 그룹. 6월 3일에 필라델피아에서 공연도 있네요. 끌린다!!!!!!!!!!!!!!!!!!!!


 

3. 우즈베키스탄 - 가보려고 러시아어를 4년째 배우고 있으나 여름에는 쪄죽을 것 같아서, 겨울에는 황량해서 아직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4. 쓰촨 - 낙산대불이랑 도강언이랑 쓰촨에 있는 티베트 자치주들 보고 싶은지 오래 됐는데 여름에 정말 익어 죽을 것 같아서 안 가고 있다고 합니다.

5. 러시아 - 기승전 러시아. 요즘 자꾸 모스크바랑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그립습니다. 단지, 이미 4번이나 같은 도시에 가봤다고 합니다... 그것도 매년

6. 인도 - 오렐 스타인 컬렉션이 인도 뉴델리에 남아있습니다! 인도는 끝판왕이라 왠지 내공이 쌓이면 더 구석구석 즐길 수 있도록 좀 나중에 가고 싶습니다. 근데 나이들면 무서워서 못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디 갈지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이제 개표상황 한번 더 보고 자러 가야지.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주 독서  (9) 2017.07.02
북유럽 세계사  (7) 2017.06.11
러디야드 키플링, If  (6) 2017.04.04
항우와 유방  (8) 2017.03.06
보편과 에고 사이의 진동 - 『저항과 아만』 서평 -  (3) 2016.11.2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