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러시아의 음악가들 본문
이번에 보로딘의 이고르 대공 보기 전에 워밍업으로 읽고 가려고 빌린 책. 글린카, 다르고미쉬스키, 발라키레프, 세자르 퀴,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등 여섯 작곡가의 전기적인 사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다. 1980년도에 출판된 책이라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소설 읽듯이 술술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보로딘은 과학자이기도 하고 음악가이기도 하면서 두 분야 모두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뤘고, 성격도 온화하고 유머러스했으며 아내와의 관계도 좋았다. 진정한 사기캐릭터임을 알고 살짝 박탈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보로딘보다는 발라키레프에 관한 서술이 무척 흥미로웠다. 예전에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라는 책을 홀린 듯이 읽은 적이 있는데 옹정제랑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 같다. 드높은 기준,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독선, 집념, 근면성실, 철두철미함, 양심, 소박함, 엄정함 등등. 옹정제를 한 러시아 음악가로부터 느껴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는 많은 음악을 썼고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경우와 맞지 않는 경우 양자 모두의 발전을 지켜 보았고, 전에는 그의 친구였고 그의 동료였던 음악가들이 그를 기피하고 그를 잊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한없는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널리 보급하려고 애를 썼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보답하려고 정열을 다했었다. 이런 것은 바로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특이체질에 비교할 만한 특이한 성격 때문이었다.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무관심하고 극히 양심적이고 타협할 줄 모르고 정열적이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지녔으며 타협을 몰랐으며 깊숙한 곳까지 완벽한 천재적 재능을 지녔다. 그래서 그는 한 곡을 몇 년씩 걸려서 썼으며 자신이 완벽하게 그 곡을 쓰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작품의 완성을 미루었다. 또 자신이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직위나 책임 등은 거절했으며 독재적이고 거리낌 없는 말을 잘했다. 또한 그는 자기의 결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pp.111-112)
그는 당시에 무소르그스키의 예술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을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발라키레프와 많은 일을 했는데 그는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성실한 우정을 유지했었다. 이 둘은 성격상의 공통점이 많았다. 열정적이고 이설을 허용치 않으나 섬세한 마음의 동향을 따지기를 좋아하고 또 애정에 대해 폭넓은 포용성을 지녔지만 이상을 위해서는 끝까지 투쟁하는 끈질김이 있었다. (p.119)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 다만 신이 운명지어 주는 대로 살 뿐이다. 신은 나의 대중을 향한 음악적 활동에 축복을 내리지 않았다. 나는 최고의 지휘자로 인정되었고 내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칭찬 외에는 받은 것이 없지만 나는 사임해서 철도청 직원의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3년간이나 성실하게 내 직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내 운명을 한 번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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