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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 본문

독서

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

bravebird 2016. 4. 10. 23:41

최근에 처음 기항한 어느 항구의 대리점에다가 하역 작업을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다음 기항지의 선적 기일을 맞추라고 각처에서 독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대리점은 갖은 노력을 해서 사전 작업을 훌륭하게 해놓았고 밤을 새가며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 놓았다. 그런데 막상 하역비 인보이스를 받아서 상사에게 보였더니 할인을 받아야겠다며 돈을 보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일을 재촉한 입장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있는데, 이제 와서 후려치기식 할인을 요구하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게다가 협상에서 괜히 우위를 내어줄까 봐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사표시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손익을 생각하는 사측 의견을 앞세우며 대리점의 노고를 의도치 않게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항구에서 오랜 작업을 한 다음 자가용을 운전해서 사무실로 돌아오느라 답장이 늦은 대리점 직원에게 과장이 쌍욕을 한 적도 있었다. 당시, 인격을 모독당했다며 내게 대신 따지는 그에게 사과를 대신 했다가 과장한테 크게 욕을 먹었다. 왜 감히 사과를 하냐고. 너는 내가 시킨 대로 어떻게든 재촉을 해서 결과물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에 왜 사과를 하느냐고.

개인의 신념과 회사의 입장이 충돌하는 이런 딜레마 상황은 빈번하다. 그 속에서는 인지상정을 억누른 채 상부의 지시나 이익의 방향을 따라 건조하게, 심지어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이익추구라는 목적과 상명하복식 관료제라는 수단에 매몰돼서 소명의식을 잃고 기계적으로 변해가는 시니컬한 스스로에 대해 자기소외를 느끼고 있다.

나는 특히나 감정보다는 사고가 편한 사람이라 맥락의 특수함은 애써 눈감고 원칙을 갖다대는 샌님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이 이익추구 관료제 조직 속에서 일하다 보니 일말의 인간미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내게 딱 시의적절했다. 융통성과 규율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진정 윤리적인 것인지, 유연한 지혜와 자발성, 그리고 윤리적 의지가 정해진 규범과 인센티브제에 얼마나 크게 훼손당하는지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일의 내용에 대한 회의는 깊지만,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아직도 내겐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샌님에게는 경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일반 법칙을 갖다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감 능력을 발휘해서 상황의 특수성을 세심히 포착하고 자를 이에 맞게 구부려 갖다대는 강단을 동시에 발휘하려면 많은 경험이 앞서야 한다. 나는 지금의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그저 경제적 자립이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찾아 왔다. 이것보다는 더욱 가치있는 목적을 스스로 정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투박한 인식틀을 세련되게 정련시켜 나가야 한다.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면서도 대리점의 밤샘 노고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과장의 급한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대리점 직원의 상한 감정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 좀더 지혜로운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로, 병실 청소를 담당하는 루크는 그걸 못 본 환자 아버지가 청소하라고 따져들자 그냥 한번 더 했다고 한다. 자기 일은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들을 보살피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참 마음이 찡했는데... 그럼 나는 납기일을 준수해서 화주와 수화주를 안심시키는 일에 가치를 두면 되나?!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봉사심이 드는 대상도 아니라서 그런 인간관계적인 가치와는 잘 결부시키지 못하겠는데... ㅡㅡ;; 번 돈으로 누군가를 돕는다거나 하는 식의 소명은 찾을 수 있지만, 일 자체에서 찾는 건 아직 무리다. 우리한테 절대 갑이자 정부까지 우리 세금으로 밀어주는 굴지의 기업을 도대체 얼마나 더 섬겨야 하길래, 하는 마음이 여전한 것. ㅠ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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