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IS는 왜》 요약 본문
1. IS가 이라크에서 처음 나타난 이유
이라크전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수니파)이 무너지고 누리 알 말리키 정권(시아파)으로 교체되었다. 알 말리키 정권은 부패지수가 높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수니파를 탄압하는 한편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알 말리키 정권에 배척당한 후세인 잔당이 IS 지도부로 합류하였다. 후세인 시기 집권당인 바트당은 범아랍권 통일, 아랍사회주의 및 반서구 반식민의 기치를 내건 집단으로 IS와 기본 성향이 비슷하다.
요약: 알 말리키 정권의 무능과 종파 갈등
2. 미국 중동 정책의 명분과 결과
* 1990-91 걸프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명분: 이라크의 부당한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UN 집단안보 행사
결과: 미국의 중동 석유시장 헤게모니 장악, 사우디 친미화
* 2003 이라크 침공
명분: WMD 존재, 이라크-알 카에다 연계 가능성
결과: 후세인 정권 붕괴, 종파 갈등 심화, 알 카에다 연계조직 확장
* 2007 미군 증파
명분: 이라크 내 민주주의 정착, 이라크 및 미국 안보
결과: 국제사회 반발, 이슬람주의자의 분노
* 2011 미군 철수
명분: 중동 개입 최소화
결과: 민족 및 종파 갈등 표면화, 이슬람주의자 간 연합
3. 중동 각국의 구심점 없는 대응
* 터키
시아파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기대. 쿠르드족 반군이 자국 쿠르드 독립세력과 연합하는 것을 가장 우려함. 공개적으로는 IS를 타도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방관적이며, IS와 석유를 거래했다는 의혹마저 있음. 시리아 난민의 주요 피난국으로 분담 수용을 주장. IS 지망 청년들이 IS로 넘어가는 통로 역할.
* 사우디
수니파 종주국으로 시아파 이란과 대립 관계. 원칙적으로는 IS를 비난하며 미국 주도의 공습에 협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온적으로 대응. 같은 수니파 세력인 IS가 시아파인 이란, 시리아, 이라크 알 말리키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 IS에 지원금을 보내는 개인 부호들도 많음. IS보다는 예멘 및 이라크 사태에 관심이 많음.
* 이란
IS 진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 시아파 종주국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IS 격퇴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 러시아를 설득하여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게 함. 미국과의 공조는 거부.
* 이집트
수니파 대국. 원칙상 IS를 타도하나 지상군 파견에는 회의적. 사우디의 지원금을 받으므로 사우디 정책에 맞출 가능성이 큼. 아랍의 봄 이후 국내정치 안정화에 치중하는 경향.
* 쿠르드족
강력한 전투력으로 IS 격퇴에 큰 역할을 수행. IS 위기를 계기로 독립국가를 수립을 추진할 전망. 민병대 페쉬메르가 미국의 지원으로 함께 활약.
4. 중동 내 갈등의 역사
* 1917년 1차대전 종전 시 영국은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아랍인에게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스라엘에게는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20세기 중반의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이후 이-팔 갈등이 심화되었다. 1979년 이스라엘과 중동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왕따가 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탄생했다.
* 2차대전 이후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후퇴하자 세속적 아랍민족주의와 정치 이슬람의 이념이 힘을 얻었다. 아랍민족주의 세력은 서구와 결탁하여 철권통치로 무슬림을 억압하였고 계층 갈등을 심화시켜 이슬람 급진주의의 성장을 부추겼다. 사이드 쿠틉의 무슬림 형제단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와 지하디즘을 기치로 내걸고 무슬림 형제단을 이끌었다. 레바논 내전 등은 아랍 세속 독재정치로 인한 종파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팔레비 왕조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에 의지하여 석유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한편 시장 상인의 대부분이 파산하고 농업은 파탄이 났다. 미국은 석유 국유화로 인한 이란 내 갈등이 자국 이익을 해칠 것을 우려하였다. 결국 팔레비 왕은 미국의 뜻을 받아들여 농지개혁, 국영공장의 민간 불하, 노동자에게 기업 이윤 분배, 여성참정권, 문맹퇴치 등을 내용으로 한 백색혁명(서구화)를 강권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이슬람 성직자의 반대가 거셌다. 성직자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의 친서구적 독재정치를 타도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이는 지하디즘을 옹호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았다.
* 198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하는 무자헤딘 세력이 탈레반으로 발전하였다. 탈레반은 수니파 성향을 공유하는 알 카에다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끈 알 카에다는 무슬림 형제단의 뜻을 이어받은 조직으로, 서구 세력 타도를 목표로 테러활동을 전개했다. IS는 그 뒤를 이어 시아파, 수니 정부군 및 서구 세계를 적으로 두고 있다. 알 카에다가 IS의 대부 격이지만 현재 두 세력은 결별한 상태다.
이라크전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수니파)이 무너지고 누리 알 말리키 정권(시아파)으로 교체되었다. 알 말리키 정권은 부패지수가 높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수니파를 탄압하는 한편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알 말리키 정권에 배척당한 후세인 잔당이 IS 지도부로 합류하였다. 후세인 시기 집권당인 바트당은 범아랍권 통일, 아랍사회주의 및 반서구 반식민의 기치를 내건 집단으로 IS와 기본 성향이 비슷하다.
요약: 알 말리키 정권의 무능과 종파 갈등
2. 미국 중동 정책의 명분과 결과
* 1990-91 걸프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명분: 이라크의 부당한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UN 집단안보 행사
결과: 미국의 중동 석유시장 헤게모니 장악, 사우디 친미화
* 2003 이라크 침공
명분: WMD 존재, 이라크-알 카에다 연계 가능성
결과: 후세인 정권 붕괴, 종파 갈등 심화, 알 카에다 연계조직 확장
* 2007 미군 증파
명분: 이라크 내 민주주의 정착, 이라크 및 미국 안보
결과: 국제사회 반발, 이슬람주의자의 분노
* 2011 미군 철수
명분: 중동 개입 최소화
결과: 민족 및 종파 갈등 표면화, 이슬람주의자 간 연합
3. 중동 각국의 구심점 없는 대응
* 터키
시아파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기대. 쿠르드족 반군이 자국 쿠르드 독립세력과 연합하는 것을 가장 우려함. 공개적으로는 IS를 타도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방관적이며, IS와 석유를 거래했다는 의혹마저 있음. 시리아 난민의 주요 피난국으로 분담 수용을 주장. IS 지망 청년들이 IS로 넘어가는 통로 역할.
* 사우디
수니파 종주국으로 시아파 이란과 대립 관계. 원칙적으로는 IS를 비난하며 미국 주도의 공습에 협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온적으로 대응. 같은 수니파 세력인 IS가 시아파인 이란, 시리아, 이라크 알 말리키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 IS에 지원금을 보내는 개인 부호들도 많음. IS보다는 예멘 및 이라크 사태에 관심이 많음.
* 이란
IS 진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 시아파 종주국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IS 격퇴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 러시아를 설득하여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게 함. 미국과의 공조는 거부.
* 이집트
수니파 대국. 원칙상 IS를 타도하나 지상군 파견에는 회의적. 사우디의 지원금을 받으므로 사우디 정책에 맞출 가능성이 큼. 아랍의 봄 이후 국내정치 안정화에 치중하는 경향.
* 쿠르드족
강력한 전투력으로 IS 격퇴에 큰 역할을 수행. IS 위기를 계기로 독립국가를 수립을 추진할 전망. 민병대 페쉬메르가 미국의 지원으로 함께 활약.
4. 중동 내 갈등의 역사
* 1917년 1차대전 종전 시 영국은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아랍인에게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스라엘에게는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20세기 중반의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이후 이-팔 갈등이 심화되었다. 1979년 이스라엘과 중동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왕따가 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탄생했다.
* 2차대전 이후 중동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후퇴하자 세속적 아랍민족주의와 정치 이슬람의 이념이 힘을 얻었다. 아랍민족주의 세력은 서구와 결탁하여 철권통치로 무슬림을 억압하였고 계층 갈등을 심화시켜 이슬람 급진주의의 성장을 부추겼다. 사이드 쿠틉의 무슬림 형제단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와 지하디즘을 기치로 내걸고 무슬림 형제단을 이끌었다. 레바논 내전 등은 아랍 세속 독재정치로 인한 종파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팔레비 왕조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에 의지하여 석유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한편 시장 상인의 대부분이 파산하고 농업은 파탄이 났다. 미국은 석유 국유화로 인한 이란 내 갈등이 자국 이익을 해칠 것을 우려하였다. 결국 팔레비 왕은 미국의 뜻을 받아들여 농지개혁, 국영공장의 민간 불하, 노동자에게 기업 이윤 분배, 여성참정권, 문맹퇴치 등을 내용으로 한 백색혁명(서구화)를 강권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이슬람 성직자의 반대가 거셌다. 성직자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의 친서구적 독재정치를 타도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이는 지하디즘을 옹호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았다.
* 198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하는 무자헤딘 세력이 탈레반으로 발전하였다. 탈레반은 수니파 성향을 공유하는 알 카에다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끈 알 카에다는 무슬림 형제단의 뜻을 이어받은 조직으로, 서구 세력 타도를 목표로 테러활동을 전개했다. IS는 그 뒤를 이어 시아파, 수니 정부군 및 서구 세계를 적으로 두고 있다. 알 카에다가 IS의 대부 격이지만 현재 두 세력은 결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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