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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화권

당번고도의 옛 요충지, 간쑤 타오저우

bravebird 2014. 12. 10. 14:33

이 글은 제 예전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옮겨왔음을 밝힙니다. http://eagleoos.egloos.com/2286952

 


 

한 달 반 동안의 중국 서북부 지역(大西北) 여행에서 가장 이색적이었던 간쑤 간난 장족(티베트)자치주 린탄현 신청향(甘肃 甘南藏族自治州 临潭县 新城乡) 여행을 소개합니다. 이곳은 작고 이름도 없는 시골마을입니다.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이 몇 곳으로 한정돼 있어서 대도시에서조차 종종 발품을 팔아야 하는 중국의 정황상, 이곳에서는 외국인 여행자가 숙박할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여행지가 아니라는 말이죠. 기차는커녕 동네 버스도 없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버스야 있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 터미널 건물도 따로 없고 그저 마을 어귀가 바로 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기차를 탈 수 있는 주변 대도시는 란저우. 그렇지만 란저우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주변의 현이나 시급 단위로 나가서 고속버스를 갈아타야만 갈 수 있지요. 대체 그런 곳에는 왜 갔을까요? 이게 다 퀘스트 때문입니다.

이번 겨울 간쑤 여행을 떠나기 전, 한 친구가 퀘스트를 내주었습니다. 티베트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은 녀석입니다. 이 친구가 역사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지방을 발견했던 모양이에요. 이름하여 타오저우(洮州). 친구는 그곳이 예전 당나라와 토번 경계지역의 중요한 요충지였고, 한 고성도 지어졌는데 지금은 이름 없는 마을이 되었다면서, 현재 간쑤 간난장족자치주 경내에 있으니 가는 김에 답사를 해서 사진을 좀 찍어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성벽이 아직 남아있길 바라면서 좀 알아오기를 바라더군요. 그렇게 퀘스트를 받고서는 바이두 백과 타오저우 관련 페이지를 인쇄해서 여행짐으로 챙겨갔습니다만 읽어보지 않은 채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2월 초, 란저우에서 간난으로 떠나기 전날, 드디어 그 자료와 구글 위성지도를 대조해 가며 검토해 보았습니다.

타오저우는 현재 간쑤성 간난장족자치주 린탄(临潭) 현의 옛 지명입니다. 타오저우라는 지명은 지금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옛 성벽이 린탄 어느 곳에 있는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저는 성벽이 이미 거의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곳인 줄 알았는데, 바이두 백과 내용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니 성벽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성벽의 소재지는 린탄현 내의 신청(新城)이라는 마을. 휴대폰의 구글 위성지도로 린탄 신청을 찾아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인공적인 게 분명한 어떤 윤곽이 마을을 감싸고 산등성이까지 기어올라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오저우 위성(洮州卫城)입니다. 바이두 백과의 내용에 따르면 이 성은 산을 따라 지어져 있고, 동북부는 높으며 서남부는 낮은 형세입니다. 성의 남부에는 한 하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며 성벽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위성지도 상에서 확인 가능하지만, 육안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동, 남, 서면은 매우 곧은 형세이며, 동북, 북, 서북면은 산마루를 따라 지어져 있습니다.

타오저우 위성은 북위 시기에 처음 지어져 당시 홍화성(洪和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이 옛 성벽이 위치한 린탄현 신청은 당과 토번의 문화 및 물자 교류 통로였던 당번고도(唐蕃古道)가 지나간 곳입니다. 이후 린탄은 당 말 ~ 오대십국 ~ 북송 말기를 거치는 동안 토번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남송 시기에는 금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본래 토번의 영향권에 속했으므로 티베트인(장족)이 토박이이지만 원~명시기 회족이 유입되어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이후 명 홍무제 시기 이곳에서 반란이 발생하였고, 이는 이문충(李文忠)이라는 장군에 의해 곧 평정됩니다. 이후 홍무제는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여, 거의 무너진 홍화성 터를 바탕으로 해서 규모를 더 확장하고 성벽을 더 높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합니다. 당시 동원된 난징, 안후이, 장쑤 등 회하(淮河) 유역 출신의 한족 군인들 중 많은 수가 이곳에 남아 전시에는 군인으로서, 평시에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농민으로서 정착한 결과, 이곳은 장족·회족·한족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다만, 제가 방문했을 때는 티베트인이 눈에 띄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티베트인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성벽이 저렇게 뚜렷이 남아있을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총 1,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당번고도의 요충지, 그렇지만 답사해본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은 그 곳! 반드시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한껏 들떴습니다. 간난 티베트자치주의 샤허(夏河) 현에 도착한 이튿날쯤 인근의 허쭈어(合作) 시를 당일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밀라르빠 불각(米拉日巴佛阁)도 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린탄행 버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특종거리를 단독 취재 나가는 기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허쭈어에는 남, 북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린탄 쪽으로 가는 버스는 남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남터미널에서는 8:15, 12:30, 14:20, 16:20 이렇게 하루 네 번 신청으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직접 가서 이걸 알아낸 후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길을 내달리다가 두 번 넘어졌고, 결국 오른쪽 어깨가 크게 삐는 바람에 타지 시골 보건소에서 엑스레이를 찍는 해프닝도 발생했네요.

여하간 이런저런 좌충우돌 끝에 며칠 후 대망의 린탄에 가기 위해 샤허를 떠나 허쭈어에 닿았습니다. 다음날 첫차를 타기 위해 허쭈어의 샹바라호텔(香巴拉大酒店)에서 1박을 했는데, 혹시라도 여기 절대 가지 마세요. 주로 유스호스텔에서 생활하던 저로서는 방값이 손이 떨리도록 비쌌습니다.(173元) 방 상태가 당연히 좋은 줄 알았더니, 욕실 청소도 제대로 안 돼있고 방은 추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밤에 샤워하려는데 온수가 나오질 않더군요. 한밤중에 직원한테 항의하다가 술 취한 아저씨한테 협박 비슷한 걸 받고 서러워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절 지켜보던 마음 여린 아르바이트생도 같이 눈물을 흘리더니, 손난로를 제 손에 쥐어주며 말없이 위로해 준 것이 유일하게 따뜻한 기억입니다. 이런 또 한번의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드디어 린탄 신청에 닿을 수 있었군요.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걸으면 바로 이런 광경이 펼쳐집니다.

 

 

회족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어서 그런지 곳곳에서 이슬람 사원이 눈에 띄었습니다. 가장 처음 본 것은 돔 형태의 지붕을 가진 모스크네요. 이 경우는 한눈에 보아도 여기 동아시아 쪽 건축 양식이랑은 다르군요. 곧바로 모스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스크의 아랫부분을 가리고 있는 바위 같은 것이 바로 타오저우 성벽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아래와 같이 성벽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흙담 같은 성벽이 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좀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성벽을 따라 걷다가 집들도 흘끗흘끗 보았습니다. 신년 초에 가서 그런지 집집마다 대문에 관우의 그림이 붙어있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중국에서 관우는 정말로 신적인 존재로서 격상되어 숭배되고 있더군요. 그의 충성심과 무공을 찬탄하는 수준은 훌쩍 넘어섰습니다. 12월에 찾았던 허난 카이펑의 관림(关林)은 관우와 그 충복들을 모신 커다란 사당이었습니다. 그곳의 관우상 앞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关圣帝君 (Saint Guanyu Emperorship)" 팻말에서 알 수 있듯이, 관림에서 촉 황제의 충신이었던 관우는 엉뚱하게도 상징적인 황제의 자리에 올라앉아 있었고, 심지어는 성인으로 신격화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신장 우루무치 홍산공원(红山公园)에서 찾았던 한 불교 사찰에서 관우는 재신으로서 마치 보살처럼 별도의 법당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모든 인위적인 의미부여와 그에 대한 집착 및 욕심을 거부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불교에서 재신을 보살처럼 모시다니, 게다가 엉뚱하게도 장군인 관우를 법당에 모셔놓다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꼭 시간을 내서 중국의 관우숭배를 연구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곳 린탄에서 집집마다 붙은 관우 그림을 보며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어쨌거나 그 모든 관우 장군 그림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걸어갔습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지어진 성벽과 봉화대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는 스팟에 다다랐지요.

 

 

 

바로 맞은편에는 또다른 이슬람 사원이 있었습니다. 아까의 모스크와는 모양이 다르죠. 기와 지붕을 사용한 것이, 우리 눈에 익숙한 이곳 동아시아 쪽 건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만 지붕 위의 달을 보아 이슬람 예배당이죠. 참고로 중동 무슬림 및 신장 위구르족의 모스크는 돔 지붕이 특징인 반면, 중국 내 회족들은 마치 불교 사원처럼 기와지붕을 가진 예배당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회족의 중국 이주 역사가 길다 보니 문화접변이 오랫동안 진행된 결과이겠지요.  

 

 

이 근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회족 아이들입니다.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이 귀여워서 사진을 한 장 남겨두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아래의 선전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었지요.

 

 

간난에 있는 동안 자주 마주친 선전입니다. 중국의 가족계획 정책(计划生育)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结扎'라는 단어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휴대폰에 깔아놓은 Hanping Dictionary라는 중영사전을 찾아보았더니, 'ligation(잡아매기)'라고만 나와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잡아맨다는 뜻이지? 두 딸 낳은 집("二女户")과 한 자녀 가정("独生子女户")이 잡아매면 장려금을 준다고? 무슨 뜻이지? 아이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또래 아이들이 도무지 알 턱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结扎는 바로 남성 생식기의 정관을 잡아맨다는 뜻이었습니다. 영구 피임수술을 받으면 정부 차원에서 한국 돈 54만원 상당의 장려금을 준다는 선전이지요. 한국에서는 아이를 하나 이상 더 낳으면 보조금을 받고 심지어 애국자가 되는데, 중국에서는 제발 아이 좀 그만 낳으라고 피임수술 받는 사람한테 장려금을 주네요. 재미난 대조입니다. 

아이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봉화대를 가리키며 올라가 보았냐고 물어보았더니, 가보았다고 합니다. 부러웠어요. 저도 산등성이의 성벽을 따라 올라가 봉화대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방이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하루 머물 곳도, 잠깐 앉아 쉴 카페 같은 공간도, 란저우로 바로 갈 방법도 없었기에 근처의 다른 현급 단위로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관광을 한 다음 다음 숙소를 잡고 다음날 란저우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갈 길이 바빴지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마을 입구로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단돈 10元에 봉고차를 잡아타고 근처의 쭤니(卓尼) 현으로 나왔습니다. 마을을 떠나는 길에 기사님께 부탁해서 잠깐 내려 마을 전경과 성벽의 원경을 사진으로 담아 두었습니다. 파노라마로 찍지 않아서 뭔가 옆이 잘린 기분이고 별로 볼품이 없는데, 그저 성곽에 초점을 맞춘 인증 사진으로 봐주세요. 퀘스트 풀었다는 증거로 제출할 인증샷. ㅎㅎ

 

 

 

 

 

이렇게 퀘스트는 다 풀었습니다. 벌써 3주가 다 되었군요. 상품을 요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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