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중국 유일의 십자 모양 고성, 팔각성을 찾아가다 본문

여행/중화권

중국 유일의 십자 모양 고성, 팔각성을 찾아가다

bravebird 2014. 12. 10. 16:36

이 글은 제 예전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옮겨왔음을 밝힙니다. http://eagleoos.egloos.com/2289210

2012/03/10 20:06

 


 

이번 겨울에 간쑤성 간난장족(티베트)자치주 샤허(夏河) 현에서 열린 친구 형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샤허행이 확정됐다고 알려주었더니 친구가 재미있는 곳이 있다며 구글 위성지도를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샤허현에 속한 간자(甘加)라는 마을에 신기한 유적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 이것은?!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가 이내 무언가 연상이 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나 나올 것 같은 요새.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희한한 생김새의 유적지는 정말 기지가 맞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자오성(八角城)이라는 중국 한나라 시대 요새를 조감하고 있습니다. 이 바자오성의 이름을 한국 한자음대로 읽으면 '팔각성'입니다. 십자 모양의 성벽 내부에 총 여덟 개의 모서리가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중국 내 현존하는 고성 중 유일무이하게 십자 모양으로 축조된 고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정보까지 추가로 입수했습니다. 꼭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팔각성은 예로부터 간쑤와 칭하이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큰 의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역사상 중국 중앙 정권들은 이 성을 두고 토욕혼(吐谷浑), 토번(吐蕃), 서하(西夏) 등의 세력들과 각축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바자오청은 거의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덕분에 이곳에서는 당송시기의 유물뿐 아니라 신석기시대 때의 도자기 파편도 발굴되었습니다. 성 서북쪽에 있는 한나라 시기 묘군에서 왕망(王莽) 시기, 즉 전한과 후한 사이에 출현하여 단명한 신(新) 왕조 시기의 화폐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이 성은 한나라 시기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전한이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9년까지, 후한이 25년부터 220년까지 지속되었으니 바자오청은 적어도 약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성이지요. 

 

샤허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간자에 가는 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보았습니다. 간자는 샤허의 주요부와는 차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샤허 버스터미널에서 매일 아침 7시 30분에 간자행 버스가 출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외에 간자 출신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매일 오후 두 시 무렵에도 간자행 버스가 한 탕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샤허로 돌아오는 버스는 그 다음날에서야 있습니다. 결국 유스호스텔의 사장님께 부탁해서 택시를 한 대 전세냈습니다. 包车라고 하지요. 샤허에서 간자까지 가서 세 곳을 둘러보고 샤허로 돌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160元에 거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혼자 갔기 때문에 혼자 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했었습니다만, 여러 명이 가면 n분의 1이 되어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눈 덮인 간자초원을 지나 바자오성에 닿았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가장 처음 본 성 바깥의 풍경입니다. 신기하게도 성벽 바깥에 공동 우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갔습니다.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십자 모양을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택시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어서 시간 제약이 있는데다 눈까지 내린지라 마땅한 지점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성벽 바깥쪽의 모서리를 통해 성벽으로 올라가서 성 안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흙담 안에 안에 소박한 집들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작은 농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마을이 작아서 반대편에 있는 성벽의 다른 모서리들도 다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눈이 닿지 않더군요. 결국 바자오청의 십자형 구조를 높은 곳에서 조망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본 성 바깥. 제가 걸어 올라온 부분만은 이렇게 명확히 볼 수 있었지요. 밖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여전히 물을 긷고 있고, 제가 타고 온 차도 멀뚱멀뚱 서 있네요. 이번에는 성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중국 웹에서는 입장료가 있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겨울 비수기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입장료는 따로 없었습니다. 아마 여름 성수기에는 손님들이 오면 마을 주민이 나와서 입장료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매표소가 따로 갖추어져 있는 등 여행지화된 곳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입장료를 받는 상업화된 여행지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눈 내린 마을을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던 중, 제가 이방인인 걸 알아챈 한 가족이 어디서 왔냐면서 잠깐 앉았다 가라며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초대를 받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샤허에 있는 동안 친구가 티베트인이어서 그 친척 집에 여러 번 가보았지만, 모두들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고 이미 전면적으로 현대화된 공간이었습니다. 농민이나 목민 출신 티베트인 가정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안에 들어갔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잠깐 앉았습니다. 이 집의 막내 손자입니다.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바자오성 안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잠깐 앉아 가족들이 하는 말을 잠깐 들어 보니 티베트어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어 같지도 않았기에 무슨 언어인지 물어봤더니 한어가 맞았습니다. 노인들 혹은 어린아이들 발음인데다 방언이 많이 섞여 있어서 못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한어를 쓰고 있다면 이들은 아마 한족이겠지요. 물어보았더니 놀랍게도 티베트인이 아니라 한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저를 위해 내온 간식들은 모두 티베트인들이 즐겨 먹는 간식이었습니다. 나이차(밀크티), 독특한 맛을 가진 일종의 쿠키(이름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수유차. 저기 기름이 둥둥 떠있는 음료가 바로 수유차입니다.

 

 

내온 간식들이 모두 티베트식인 것을 보고 문득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티베트에 다녀간 적이 있는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악평했던 티베트 전통음식, 이름하여 짬바입니다. 짬바는 티베트인들의 주식인데, 보리를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찻물에 넣고 손으로 반죽하듯이 뭉쳐서 먹는 음식입니다. 거의 절망적일 정도로 티베트와 사랑에 빠져 있는 제 친구도 티베트 음식만은 최악이라며, 그 중에서도 이 짬바는 정말 참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루무치의 유스호스텔에서 만났던, 1980년대에 티베트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한 미국인 아저씨도 이 짬바에 대해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보리로는 밥도 빵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티베트인들은 보리를 절대 그렇게 요리해 먹지 않는다. 빻아서 물에 반죽해 먹을 뿐....." 바로 그 짬바가 먹어보고 싶어서 혹시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곧 만들어 주겠답니다. 이 집의 맏손녀가 보리 가루와 물과 그릇을 가져와서 만들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직접 뭉쳐서 빚어 주었지요. 손가락만한 길이로 손가락보다는 좀 더 굵게 뭉쳐서 주었습니다. 딱히 풍미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먹을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미숫가루 반죽을 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뭐 특별히 유쾌할 것은 없지만 먹을 수는 있는. 이렇게, 티베트인 집에서도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짬바를 이곳 바자오성의 한족 가정에서 처음으로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바자오성 마을 안의 주민들은 대개가 티베트인이고 한족이 극소수입니다. 사회 이동이 드문 작은 마을인 만큼, 이 한족 가족은 아마 몇 대에 걸쳐서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티베트인 이웃들의 영향을 받아 티베트화가 되었지요. 물어보았더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모어처럼 자연스럽게 티베트어를 배우셨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티베트어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두 녀석들은 바자오성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한 학년에 학생이 서넛에서 네댓 명쯤 되는 아주 작은 분교입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티베트인이기 때문에 티베트어로 수업을 받고 있었지요. 저에게 짬바를 빚어준 맏딸은 같은 초등학교를 이미 졸업했고, 인근의 허쭈어(合作) 시에서 티베트인 중학교(The Tibetan Middle School of Hezuo)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자기를 빼놓고 전교생이 티베트인이라고 했던 것 같네요. 한어 과목을 제외한 다른 모든 수학, 과학, 역사 등의 과목을 티베트어로 진행하는 학교였습니다. 자신의 모어인 한어를 다른 민족 학생들과 함께 외국어처럼 배우고 있는 특별한 케이스였지요. 저는 평소에 언어습득에 관심이 많은데다, 중국에 온 다음부터는 이곳의 언어 정책 및 소수민족 교육에 대해 관심이 싹텄습니다. 소수민족 자치구나 자치주에 평생 살았는데도 그 민족의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한족 학생들만 보아온 저는, 티베트어를 모어처럼 구사하는 한족 가정을 처음 본지라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학교 수업은 어떤 언어로 진행되는지, 평소의 언어환경은 어떤지... 마음씨 좋은 맏딸은 그런 저에게 중학교 교과서를 갖고 와서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어로 치면 국어 과목에 해당하는 어문 과목의 교과서입니다.

 

 

티베트어를 할 줄 모르는 저로서는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는지 살펴볼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한족들이 한어로 쓴 명문을 티베트어로 번역한 글과, 티베트인이 티베트어로 쓴 명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미 진도를 나간 페이지에는 정말 똑바른 예쁜 글씨로 필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티베트어였지요. 글씨가 하도 예뻐서 하나 부탁을 했습니다. 샤허에 있는 동안 친구가 티베트어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었습니다. 그 이름을 티베트어로 좀 써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발음을 제대로 했는지, 곧 알아듣고 손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적어 주더군요.

 

 

한국어로 발음을 옮기기가 조금 힘들지만, 제 티베트 이름은 대략 '데키초모'입니다. 행복의 호수라는 뜻이라고 해요. 다들 참 예쁜 이름이라고 해주었어요. 한어의 표기법으로 옮기면 '德吉措毛(Deji Cuomao)'가 됩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이 갔습니다. 아마 택시 기사님이 밖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셨겠지요. 아쉬웠지만 나가볼 시간이 되어 작별을 하기 전에 가족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보내주기로 약속을 하고 주소를 받아왔지요. 집 호수를 적지 않고 그냥 중국 간쑤 간난장족자치주 샤허현 간자향 바자오성 마을(中国甘肃甘南藏族自治州夏河县甘加乡八角城村)까지만 적고 자기 이름을 적어 주었습니다. 호수를 써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 알기 때문에 이름만 잘 적으면 다 제대로 찾아온다고 하더라고요.

 

 

 

 

이 세 장의 사진을 얼마 전에 뽑아 놓았습니다. 이번 주에 곧 부쳐 주어야겠습니다. 특히 맨 마지막 사진은 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도록 흐뭇하고 애틋하고 사랑스럽네요.

 

간자초원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여름에 다시 한 번 찾아가겠다는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그때 더욱 알찬 내용의 포스팅을 한 번 더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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