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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사원인 줄 알았네! 티베트 전통종교 뵌뽀교 사원 본문

여행/중화권

불교 사원인 줄 알았네! 티베트 전통종교 뵌뽀교 사원

bravebird 2014. 12. 10. 18:56

이 글은 제 예전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옮겨왔음을 밝힙니다. http://eagleoos.egloos.com/2293955

2012/03/22 18:47

 


 

이번 겨울에 간난장족(티베트)자치주 간자(甘加)향에 갔을 때 먼젓번에 포스팅한 바자오성뿐 아니라 한 군데를 더 들렀습니다. 원래 바자오성에 가는 게 목적이었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에도 없었던 곳입니다. '번자오쓰'라는 곳입니다. '쓰'가 바로 절 사(寺)자이기에 불교 사원이겠거니 싶었습니다. 샤허의 라브랑 사원(拉卜楞寺)을 비롯한 허쭈어의 밀라레파 불각(米拉日巴佛阁)이 워낙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 이 사원에도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눈덮인 간자초원과 양떼들을 지나서 도착한 겨울의 번자오쓰는 무언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고적하게 서있었습니다. 간자를 빠져나오는 그 순간 벌써 아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런 후 한참, 아마도 몇 주씩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번자오쓰는 바로 티베트 불교 사원이 아니라 티베트 전통종교인 뵌뽀교의 사원이었다는 것을요.

 

번자오쓰에 가기 전에도 뵌뽀교의 존재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존재했고, 불교와의 대립과 경쟁 및 상호영향관계에 있었으며, 현재는 불교에 자리를 내주고 티베트 문화의 기저로 스며든 전통종교 뵌뽀교. 다만 뵌뽀교를 중국어로 '번자오(本教)'라고 한다는 걸 까맣게 몰랐습니다. 게다가 그 날은 사원 안에 들어가볼 수도 없었고 짧은 시간 동안 바깥에서 잠깐 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알아챌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비슷하길래 그렇게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는지 사진으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이번 간난 여행을 계기로 티베트 불교 사원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순하고 미니멀한 패턴 장식들을 좋아하는데, 티베트 사원의 처마 아래 장식은 저렇게 선명한 색상 대비를 바탕으로 한 동그라미 띠로 되어 있습니다. 자꾸 눈이 갈 수밖에 없었지요. 아래의 두 장은 티베트 불교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샤허 라브랑 사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래의 두 장은 간난 쭤니(卓尼)현의 불교 사원인 찬딩쓰(禅定寺)에서 찍은 동일한 패턴입니다.

 

 

 

아래는 뵌뽀교 사원인 간자 번자오쓰의 사진입니다. 패턴이 꼭 같습니다.

 

 

위의 패턴뿐 아니라 사원 장식에 황금빛을 자주 사용하는 점, 검정색 바탕에 흰색으로 각종 상징을 그려넣은 휘장 같은 것을 사원 앞에 걸어놓은 것, 전체적인 분위기 등이 불교 사원과 별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방문했던 티베트 불교 사원 세 곳의 사진입니다.

 

 

 

 

 


아래는 제가 갔던 번자오쓰 사진들입니다. 전체적인 경관이 불교 사원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니차(손으로 돌리는 경전)가 있는 점도 양 종교의 공통점이네요. 아래는 불교 사원인 라브랑 사원의 것입니다.

 

 

아래는 번자오쓰의 것. 사진 오른쪽 하단에 보이시죠?

 

 

사원마다 있는 백탑의 양식도 똑같았습니다. 베이징에도 이런 백탑들이 몇 기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지정했던 쿠빌라이 칸에 의해 재건된 먀오잉쓰 백탑(妙应寺白塔), 그리고 청대 순치제가 건립했고 현재 베이하이 공원 안의 인공섬에 있는 베이하이 백탑(北海白塔)이 그렇습니다. 라마교(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탑들이지요. 링크를 누르시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불교 사원인 라부렁쓰의 것.  

 

 

아래는 허쭈어(合作)의 불교 사원인 허쭈어쓰 안에 있는 백탑.

 

 

아래는 제가 간 뵌뽀교 사원의 백탑.

 

 

하지만 기억을 조금 더듬어보면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순례자들이 사원 주위를 도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입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사원 근처를 시계 방향으로 돕니다. 반면 뵌뽀교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이지요. 제가 간 번자오쓰는 언덕 위에 있었는데, 올라가서 사원 안을 넘겨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오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언덕을 오르시나 보다 하고 무심히 보아 넘겼었지요. 생각해 보니 아주머니 진행 방향이 시계 반대 방향이었네요. 티베트 여행서를 보면 불교 사원 혹은 불탑을 따라 돌 때 도는 방향을 철저히 주의시키곤 하는데요, 그것은 티베트 불교 사원의 내/외부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뵌뽀교 신도로 오인받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저도 허쭈어쓰에 갔을 때 법당 안에서 별 생각 없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은 적이 있는데, 라마승 한 분께서 바로잡아 주셨던 일이 있습니다.  

스와스티카의 방향으로도 불교와 뵌뽀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베이징 중앙민족대에서 몽골-티베트민족관계사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정방향 스와스티카(卍)가 뵌뽀교의 상징이라고 하셨습니다. '티벳 불교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논문(민병삼, 중국학연구 제28집)에서도 그렇게 나와 있고요.(p.6) 그렇지만 제가 알기로는 불교 스와스티카가 정방향인데.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여하간 제가 번자오쓰에서 찍은 스와스티카 혹은 그로 추정되는 문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뵌뽀교와 불교의 스와스티카 방향에 대해 정확히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세요!

 

 

 

 

몇 가지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번자오쓰는 티베트 불교 사원과 무척 닮아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티베트 불교와 뵌뽀교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에요. 학자들마다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뵌뽀교는 보통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한 갈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자연을 숭배하고 귀신을 숭배하며 무당을 존경하는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샤머니즘의 요소가 뵌뽀교에도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고대 티베트 사회는 이 뵌뽀교의 수장들이 행정 수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사회였다고 해요. 이 뵌뽀교 무당 혹은 제사장을 뜻하는 말이 곧 '뵌뽀'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스스로를 'Bod(བོད)'라고 부르는데, 이 말이 어원적으로 '뵌뽀'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후 기원전 약 4세기 경, 문헌상 기록된 티베트 고대 역사상 최초의 왕국이 탄생하면서 정치 수장 지위를 겸하던 뵌뽀들은 추장 지위를 상실합니다. 이와 같은 정교분리의 과정을 거쳐 뵌뽀들은 종교 활동에 전념하게 되고, 이를 통해 뵌뽀교는 티베트인들의 사회 및 문화 기층에 자리잡은 전통 종교로서 발전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특히 기원전 약 2세기 경의 지굼짼뽀(智贡赞普)에서 기원후 7세기 경의 송짼감뽀(松赞干布) 시기에 뵌뽀교는 스스로의 종교 이론 체계를 형성해 나갑니다.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송짼감뽀 왕은 불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전략적 선택의 일환이었습니다. 샤머니즘 요소가 강하여 체계성이 결여된 뵌뽀교보다는, 확립된 체계를 갖춘 불교가 신생 통일 왕국을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송짼감뽀는 뵌뽀교에 대한 억압 및 배척 노선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치송데짼(赤松德赞) 왕 시기에 이르러 대대적인 뵌뽀교 탄압이 시작됩니다. 치송데짼 왕은 불교 발전 및 뵌뽀교 탄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취를 취합니다. 특히 이 시기 대규모의 불경 번역 사업이 진행되는데, 뵌뽀교 진영 역시 이에 맞서 자신들의 경전을 정리 및 번역합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어떤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지요. 또 치송데짼 왕은 불교와 뵌뽀교 사이에 대변론을 하게 하는데, 이와 같은 상호 투쟁 과정 속에서 양 종교는 스스로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상대 종교의 요소를 취하여 새로이 발전해 나갑니다. 뵌뽀교는 이 변론에서 패배하게 되고, 많은 뵌뽀교 승려들은 환속하거나 아리(阿里) 등의 지방으로 몰려났습니다. 그러나 치송데짼은 뵌뽀교의 제사 방식을 남겨서 그 형식만 유지한 채 의미는 개조하여 불교도들이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랑다르마(朗达玛)가 국왕 자리에 등극하여 대대적인 불교 탄압 정책을 펴고, 이에 반발한 승려에 의해 국왕이 살해되면서 토번 왕조는 내란에 휩싸여 결국 멸망합니다. 토번은 통일된 중앙 정권의 지배 및 간섭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뵌뽀교도들은 자유롭게 뵌뽀교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 시기 불교의 내용을 개조하여 뵌뽀교의 교의를 만듭니다. 결국 양 종교는 서로 투쟁 및 갈등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일부를 흡수하여 스스로의 종교를 발전시켜 나가고, 그 결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게 됩니다.

 

우연한 번자오쓰 여행을 계기로 뵌뽀교와 티베트 불교의 관계에 대해 대략 정리해 보았습니다. 위의 내용은 《중국학연구》 제28집의 〈티벳 불교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티벳 토착종교 뵌뽀교 탐구〉라는 논문을 참조하여 요약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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