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퀘스트: 펍에서 영국식 유머 관찰

8월 여행은 런던과 파리에 간다. 거드름을 한껏 피워보자면 나는 사실 두 도시, 아니 두 나라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 대단한 문화선진국이신 두 나라가 중국 실크로드 문화재를 (...) 엄청나게 훔쳐댔으므로 가게 되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넘나 울며 겨자먹기 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영국인 발견》을 읽고 나서 런던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작년에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기억해둔 책인데, 그 유명한 영국식 아이러니 유머에 대해서 낱낱이 써놨다. 영국인이 대체로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교불편증이 있고, 계급이 뿌리박은 사회 속에서 서로 조심하는 가식적인 문화가 있다 보니 셀프디스와 냉소가 성행한다고 함. 영국 출신 문화인류학자가 썼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영국식 재치가 문장마다 번뜩이는 책이었다. 강력 추천. 

나는 위트나 아이러니에 관심이 많다. 졸업논문도 그 쪽으로 썼다. 우리나라는 뭔가 정서가... 진지함이 도를 지나쳐 눈물짜는 거 많고 감상적이고... 유머코드는 우스꽝스런 캐리커처, 직설적인 정치풍자 계통이다. 강남스타일이 아이러니 시대를 열어 젖히고 미친듯이 성공한 예외 케이스. 반대로 영국은 조곤조곤 배배 꼬아서 말로 다 해먹는 유머가 주종인 것 같다. 나 포함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반어와 냉소 코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뿐더러 (...) 제대로 전달이 된다고 해도 불만분자로 찍히기 좋다. 그런데 영국에선 어떻게 이게 디폴트일까? 또, 영국놈들은 미국놈들을 두고 아이러니도 이해 못한다며 무시한다는데, 미국놈들만도 상당히 시니컬한 것을 영국놈들은 대체 얼마나 더하다는 거지? 이 궁금증 때문에 이번 런던에선 낮엔 중국 문화재를 보고 (...) 밤엔 펍에 가서 런더너들 말재간을 지켜보기로 한다.

혈혈단신으로 가면 농담하는 모습까지 보긴 어려울 것 같아 카우치서핑에서 미리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관심사가 잘 통하는 사람의 단골 펍에 따라가면 친한 단골들을 소개시켜줄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한국인답게 넘나 진지하고 성실한 프로필을 작성한 관계로, 단 한 명의 로컬한테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나 이상으로 진지함이 넘치는 이민자나 유학생들 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되겠어서 직접 수배에 나섰다. 일단 프로필부터 수정했다. 셀프디스와 말장난을 가미한 런던용으로 커스터마이징했다. 그 다음에 검색어로 irony를 넣고 사람을 찾았다. 큰 관심사가 겹치는 후보 3~4명을 추렸다. 우선 각자의 특성에 맞는 겁나 진실된 쪽지를 작성한 다음, 셀프디스를 버무려 넣고 런던 버전으로 탈바꿈시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중에 한 명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랜덤한 관심사 여러 개가 겹쳤고 프로필도 브리티시 유머 그 자체였다. 이번 퀘스트 동지로 딱이어서 승부를 걸기로 했다. 

안녕. 난 ***라고 해. 곧 런던에 가는데 브리티시 유머가 뭔지 한번 보는 게 목표라 동지를 찾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넘나 진실되게 프로필을 써서, 아무런 로컬한테도 연락을 못 받는 개가를 올렸지... 전략을 바꾸어 네게 처음 쪽지를 보낸다. 중국 간쑤성 샤허 티베트자치현에 갔다왔네! 나도 좋아하는 곳인데 같이 여행 얘기 한번 해보면 어떨까? 퀘이커 진짜 멋진 종교인데 서울엔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궁금했다. 좀 알려줘. 보니까 우리 도스토예프스키도 좋아하고 프랑스 영화 지겨워서 못 보는 것도 똑같네. 아무리 봐도 당신이 제격인데 동네 펍에 데려가주지 않겠어?

다음날 아침 칼답장이 왔음.

 

Hey, I am totally, 100% up for this, because your very earnest profile is full of amazing stuff - western China! Dostoevsky! Wong Kar Wai! So I am definitely up for answering as many questions as you have about Quakerism or anything else :p

동지 1명 확보! 으하하. 이제 여행 스케줄을 짜고 길일을 잡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