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어빙 고프만, 상호작용 의례 본문
지루함을 내색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개인이 자기 느낌을 위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네가 어떤 입장인지는 알게 된다.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상황의 실상을 알려주는 피드백 신호를 차단하는 셈이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몰입 시늉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나치게 잘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의무도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루했던 상대가 진심을 담아 작별인사나 호감 표현을 하면 지루해 했던 사람은 자신이 몰입하지 못했음을 내색하지 않고 몰입한 척 시늉만 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삶에서 가장 뼈아프고 치명적인 순간은 바로 개인이 최상의 수완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이는 또 상대로서는 남들의 허심탄회함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이자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기도 하다. (pp.136-137)
지루해서 단 한번 만나고 끝날 게 분명한 소개팅에서 예의를 차리느라 오히려 최상의 리액션을 하게 되는 뭐 그런 상황?
대체로 대화를 나누는 사교 만남이 공유하는 근본적 요건은, 참여자들이 공식적 관심의 초점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그 몰입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 요건이 존재하고 또 충족되면 '성공한' 또는 희열을 주는 상호작용이 된다. 참여자들의 주의를 끌지도 못하면서 몰입 의무에서 풀어주지도 않는 만남이라면 참여자들은 불편해지기 마련이고 상호작용은 성공할 수 없다. (p.134)
회.식.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순간은 사후영향을 미치는 문젯거리가 없는 순간이라 규정했다. 그런 순간은 무미건조하다. (그런 순간에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중에 사건이 벌어질까봐 불안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위험과 기회─흔히 위험을 무릅써야만 생기는 기회─를 동반하는 실용적 도박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무미건조한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려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안전성이다.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행동궤도를 확실히 관리할 수 있고 목표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예상대로 실현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들의 기획에도 무리 없이 효과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 삶의 불확실성이 적은 사람일수록 사회는 그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개인은 운명적 사건 발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현실주의적 노력을 기울이며 격려도 받는다. 위험에 대처하는(coping) 것이다. (p.187)
매우 안정적으로 살고 있음. 세로토닌형 인간 그 자체임.
평범한 일상의 '행복'은 만끽 중이나, 미래에 무언가를 얻어내고 말겠다는 '흥미진진함' 같은 것은 없다.
최근 나는 아주 매혹적이고 모험적인 제안 하나를 거절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자기관리 측면에서는 잘했다고 칭찬들을 일이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온당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리스크도 스릴도 없는 인생, 회사생활 무난하게 하기 좋은 딱 고만고만한 삶을 살게 되겠지. ㅋㅋㅋ
나중에 보바리 부인 될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재미와 즐거움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특징적인 태도는 (a) 약간의 두려움 또는 최소한 실재하는 외적 위험에 대한 인식, (b) 위험과 두려움에 자발적·의도적으로 자신을 던지기, (c) 위험을 참아내고 정복할 수 있으리라, 위험은 지나갈 것이고 다치지 않은 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리라 하는 희망 섞인 자신감이다. 외적 위험에 맞닥뜨릴 때 느끼는 두려움, 재미, 희망 섞인 자신감의 혼합물이 바로 짜릿한 흥분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다. (p.211)
좀더 어릴 때는 만용도 부리고 그랬었다.
산시 지역으로 여행 가다가, 밤기차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들 따라 중간에 내려서 현지인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춘절에 우루무치에서 택시를 탄 날은 기사 아저씨를 따라가서 그 가족들한테 식사 대접받고 폭죽놀이 한 적도 있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린 선택임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그 위험을 짊어졌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생각했고 퇴로가 있다는 걸 확신했으니까.
상대는 계략을 짤 시간이 없었고, 유사 시에는 소리를 질러버리면 되며, 차에서는 내려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호랑이굴에 제발로 걸어들어갔다가 유유히 살아나오는 스릴을 즐긴 적도 있었으나 이젠 그런 건 잘 못하겠다.
가급적 안전하고 확실한 선택을 하려 한다.
그래서 난 대체로 침착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고 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도파민이 조종하는 대로 스스로를 위험에 내맡기고 도박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동의 마당이 되어주면 그 역시 다음 차례에 상대를 자기의 행동 마당으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상대를 행동의 마당으로 이용하고 또 그 목표가 기량이나 능력 겨루기인 경우를 우리는 시합 또는 결투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대인관계 행동(interpersonal action)이라 부를 수 있다. (p.221)
다양한 스포츠와 게임에서 사람들은 서로 상대를 행동의 마당으로 삼는다. 대개는 물리적·시간적으로 진지한 삶의 영역과 분리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를 행동의 마당으로 삼는 것은 훨씬 보편적 현상임이 분명하다. 게임으로부터 세상으로 넘어갈 다리로서 이성 간의 관계 양상을 한번 훑어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행동 상황은 모두 여성보다는 남성의 활동 무대에서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실로, 우리 서구문화에서 행동은 남성성 숭배의 일종이다. 물론 여성 투우사도 있고 여성 공중곡예사도 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구역에는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유럽 여성들이 결투를 한 기록이 있지만 훈장이 아니라 성도착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여성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행동 영역도 있다. 성관계와 연애놀이를 펼치는 행동의 마당이다. 성인 남성들은 여성을 잠재적 성관계 대상으로 대한다. 이는 여성에게 퇴짜를 맞고, 잘못된 짝을 만나고, 책임을 져야 하고, 옛 애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남성 친구들의 불만을 사는 따위의 위험이 있지만 성공하면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행동을 '작업 걸기(making out)'라고 부른다. (pp.223-224)
작업 걸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남성, 심지어 작업 걸기를 목적으로 계획된 모임에 참여하고서도 수줍어하는 남성들도 많다. 어디서나 작업을 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성들도 흔하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기회를 노린다. 그런 이들은 날마다 작업 가능성과 마주친다. 이런 작업 성향을 지닌 남성들은 어떤 사건이든 내기를 걸 기회로 삼고 어떤 과제든 힘, 기량, 지식의 겨룸으로 전환시키곤 하는 부류에 넣어야 할 것이다. (p.225)
이성을 유혹하는 것, 작업 거는 것, 이것도 다 시합이고 게임임.
서로가 서로를 행동의 마당으로 삼아서 기량이나 능력을 겨루는 것의 일종.
리스크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고 보상을 얻어내려는 행동(action)이라는 점에서 전략 게임, 도박, 스포츠, 이성 유혹, 투자 다 비슷하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질(또는 자질의 결핍)이 관건이다. 그런 자질은 활동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활동을 하는 동안 개인이 자기를 관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나는 이러한 자기관리 유지 능력을 성격의 한 요소로 본다. 운명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아래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격이 약하다는 증거다. 예상 평균치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뚜렷한 성격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도덕적 유혹이든 과제 수행이든 막상 일이 닥치면 완벽하게 자기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pp.231-232)
운명적인 사건의 처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성격 형태를 살펴보자.
우선, 다양한 형태의 용기(courage)가 있다. 곧 닥칠 위험을 내다보면서도 행동을 불사하는 능력이다. 용기는 위험의 성격에 따라, 즉 신체적 위험인지, 금전적 위험인지, 사회적·정신적 위험인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전문 도박사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도박 자질'이라는 것이 있다. 가진 돈을 몽땅 걸고 돈을 따든지 잃든지 품위를 지키면서 점잖게 게임의 규칙에 기꺼이 승복하려는 의지를 가리킨다. 용감한 행동이 매우 이기적인 관심사에서 비롯할 수 있음에 주의하자. 큰 위험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불굴의 투지(gameness)는 좌절감, 고통, 피로에 지쳐도 굽히지 않고 계속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자질이다. 맹목적이고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의지와 결단력이 있어서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중략)
사회조직의 관점에서 핵심적 성격 특성은 성실성(integrity)이다. 상당한 이득이 걸려 있고 순간적으로 도덕적 기준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유혹을 뿌리치는 성향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 운명적 활동을 할 때는 성실성이 특히 중요하다. 사회마다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성격의 종류는 상당히 다르지만 성실성을 인정하지 않고 육성하지 않는 사회는 오래 존속할 수 없다. 실천에 옮기는 경우가 드물지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수준의 성실성을 강조한다. 성실성이 뛰어나면 당연히 여기고 성실성이 부족하면 성격이 약한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중략) 술집이나 레스토랑, 카지노처럼 손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수단에 탐닉하지 않는 '자제력'을 가진 사람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중략)
운명적 사건의 관리와 관련된 성격 가운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제력, 냉정함, 차분함을 가리키는 침착성이다.
-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부드럽게 절제된 방식으로 신체적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요구되는 자기감정의 통제, 대화와 몸짓에 사용되는 신체 기관의 통제
- 정신적인 평정과 경계심, 즉 냉철한 정신
- 자기나 타인의 갑작스러운 운명의 변화를 감정의 자제력을 잃지 않고 '마음의 동요' 없이 생각해볼 줄 아는 능력
- 치러야 할 대가, 난관, 엄청난 압력이 있음에도 자세를 단정하게 유지하는 품위
-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 (대규모 관중 앞에서 당황스러움, 창피함, 두려움,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위험과 기회에 맞설 수 있는 자질) (pp.232-241)
성격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본질적이고 변함없는 특성, 개인 특유의 개성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적 순간에 창조될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는 속성을 가리킨다. 뒤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은 자신의 성격 특성을 결정짓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자기에게 부여될 성격을 창조하고 획득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계기만 있으면 참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스스로의 사람됨을 만들 기회를 찾는다. 그러니 성격은 변함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변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pp.253-254)
개인이 스스로에게나 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스타일을 과시할 기회이자 위험을 내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순간은 막상 일이 닥쳤을 때다. 그는 성격을 걸고 도박을 한다. 한번 보여준 멋진 모습이 대표적 성격으로 간주되고, 시시한 모습은 변명할 수도 다시 시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강하든 약하든 성격의 과시는 곧 성격을 창조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아는 자발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pp.252-253)
강한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운명적 상황에 있고, 그런 상황은 모험을 택한 사람과 그가 지닌 자원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미 결판이 나버린 운명의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을 기회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대가는 더 크다.) 행위자는 그래서 운 걸기를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머뭇거린다.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에서 순간들이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운명적 행동은 사회적 일상을 교란하기 마련이고 규모가 큰 조직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군주제 시대의 유럽 사회에서는 결투 관습이 번창했지만 군주와 고관들은 결투 관행을 억제하려 했다. 결투 비용이 고관들에게 부과된 탓도 일부 있었다.) 가정과 일터에서는 이런 위험요소가 안전하게 제거된 듯하다.
그러나 안전하지만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 삶에 대한 일종의 양가감정도 있다. 성격에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쉽게 표현할 수도 안전하게 획득할 수도 없는 면 또한 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사람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을 드러낼 기회를 단념해야 한다. 개인을 운명적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장치는 또한 그 자신에 관한 새로운 정보, 중요한 표현을 가로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결과, 신중한 사람은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어떤 가치, 바로 자기가 바람직한 사람임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가치는 실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실용적 도박을 찾거나 아니면 적어도 일상사에서 무언가 일을 벌인다. 정상을 벗어난, 피할 수도 있는, 극적인 위험과 기회로 가득 찬 일들이 바로 행동이다. 운명적 성격이 강할수록 행동은 더 위험해진다.
운명적 상황은 개인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을 선사하고, 위험한 행동이 그 개인에게 특별한 시간을 체험하게 해준다. 개인은 운명적 상황에 자신을 던질 각오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개인이 자신을 던지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문젯거리이며 사후영향이 있는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유지되는 동안 개인이 상황에 대처한 결과가 나오고 보상도 얻어야 한다.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째깍째깍 흘러가는 몇 분 몇 초의 시간과 맞서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결판이 나는 불확실한 결과에다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피할 수 없을 때는 개인은 자신을 운명에 맡겨야 한다. '도박'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pp.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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