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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Mmmbop의 재발견

bravebird 2020. 3. 6. 01:42

여러분은 길티플레저 노래가 있으신가요? 뭔가 대놓고 좋아한다고 인정하긴 부끄럽지만 중독성 있어서 왠지 계속 듣게 되는 악마의 후크송 류.. 아마 다들 있으시겠죠. 뭐 저는 옛날 사람이라 슈퍼주니어 쏘리쏘리라든지 현영 누나의 꿈 같은 노래가 생각나네요;; ㅋㅋㅋㅋ 

 

소개드릴 Hanson의 Mmmbop이 아마 미국인들한테 그런 노래 같습니다. 음 밥! 두비 두밥! 이 계속 반복되는데다 나머지 가사도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는 노래거든요. 변성기도 오지 않은 소년이 부르는 전형적인 틴 팝처럼 들립니다. 유튜브 댓글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지요. 

 

"45살 먹고 이거 들으면서 몰래 춤춘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이 노래는 1997년 출시됐는데 전 한참 지나서 중학교 때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됐습니다. 자주 듣던 노래도 아닌데 작년 말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반평생 만에 찾아 듣게 되었죠. 그때 드디어 처음으로 가사를 읽어봤는데요 이럴 수가... 헛소리인 줄 알았던 가사가 시였어요...! 

 

Mmmbop 가사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

 

어디서 싹이 자랄지 모르지만 계속 씨앗을 심어봐,

1이 나올지 6이 나올지 모르지만 주사위를 계속 던져야지, 

내일 죽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어,

 

전부 비슷하지 않나요? 불확실성 속에서 계속 조금씩 나아가기. 제가 요즘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실천하려는 것, 화두 그 자체를 노래로 만들어 놨네요. 웃긴 게 저는 이 Mmmbop 씨앗을 거의 20년 전에 방치해 놨는데, 그게 지금 싹이 나서 저를 뚫고 나온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직 발견 못한 놀라운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심어두고 까먹은, 언젠가 무럭무럭 자라날 씨앗들은 또 얼마나 많을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제 주식 관심종목 폴더명 좀 보고 가시죠. ㅎㅎㅎㅎㅎㅎ

 

내 사전에 매도란 없다! 이 중 좋은 씨앗을 골라서 Keep planting to find out which one grows (계속 매수 및 존버만) 하자는 의미 ㅋㅎㅎ

 

기승전 주식으로 맺으려고 꺼낸 얘기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 되네요. 와 이건 너무 안티클라이막스다 ㅎㅎ 씨앗은 상징이고 주식은 수많은 씨앗 중 하나일 뿐이죠. '씨앗'이라는 상징을 뽑아내기 위해 제가 소진시키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 

 

그 어떤 것이든 씨앗이 될 수 있어요. 주식에 넣을 시드 머니, 쭉쭉 가거나(상폐될 수도 있는ㅋㅋ) 주식 1주, 매일 하는 운동, 작은 친절 등등 모종의 투자 혹은 노력... 사실 Mmmbop은 우정에 대한 노래예요. Mmm...하는 짧은 시간만에 Bop! 하고 끝나 버리는 짧고 덧없는 인생 동안 열심히 우정을 심고 가꾸어 보자는 내용이에요. 어떤 친구가 흰머리 날 때까지도 내 곁에 남아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렇기 때문에 우정을 가꾸어 보자고 노래합니다.

 

Mmmbop의 시작 가사
있을 때 잘해! 

 

가사 전체를 한번 읽어보세요. 이 도 읽어볼 만해요. 조금 발췌해 보겠습니다. 

 

No, most of our relationships will not last. Our efforts may mostly be futile and unpredictable. In response to such truths, it may be tempting to embrace defeatism and lethargy. But Hanson suggests we act otherwise. It is our duty, the brothers posit, to keep cultivating nonetheless, to “keep planting to find out which one grows.” “MMMBop,” ultimately, is a song that advocates resilience in the face of overwhelming odds, of persistent, methodical, meticulous application as the only means by which to transcend our fickle nature.

 

유튜브 댓글을 한참 뒤져보면 저처럼 이 노래의 진가를 뒤늦게 깨닫고, 10대 소년들이 이런 가사를 쓴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댓글이 종종 보입니다. 작년의 재발견 이래로 거의 매일 듣는 노래지만, 오늘따라 가사가 더더욱 와닿네요! ㅎㅎㅎ 

 

 

이 '씨앗 심기' 부분은 성경의 전도서 11:6에서 영감을 받았을 지도. 조지 오웰은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명징하고도 아름답게 쓰인 옛 글의 예시로 전도서를 들었었다.

 

제가 요즘 던지는 주사위 내지 뿌리는 씨앗은요, 

- 한시라도 빨리 원하는 일에 돈과 시간을 쓰기 위해 유동성을 포기하고 투자를 합니다.

- 올해 바뀐 일에서 뭐든 배우고 경험해보고 돈도 잘 벌어 보려고 재밌게 열심히 합니다. 생각도 못한 배울 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 언젠가 "너 스파이냐? 고려인이냐?" 소리를 듣겠다는 일념으로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훈련합니다. 완전 정복이 절대 불가능한 것들이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냥 계속 덤비는 것이 목적입니다. 죽을 때까지 포기 안합니다.

- 고산 등반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낮은 곳이나마 산에 다닙니다. 

- 무용총 고분벽화처럼 기마 궁술을 하고 싶으니까 돈을 아껴서 승마를 배웁니다. 

- 삶이 짧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아마 전부 이루진 못하겠지만, 나는 운이 좋고 많은 것을 이미 해냈으며 점점 노력하며 발전하고 있으니 저런 꿈을 충분히 가져볼 만하다고 믿습니다. 

-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할 텐데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게 거의 20년 전인데 그 세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20년 후엔 50일 테고 부모님은 80이 되시죠. 시간이 너무 빠릅니다. 당연하게만 여겨온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좀더 잘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네요. 바로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할머니한테 전화드려야지. 

 

이 모든 것이 결국 어떻게 결론 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 주사위를 던지고 씨앗을 뿌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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