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이게 한비자인지 노자인지 본문
집에 온 김에 『한비자』 다시 뒤적여본다. 완역본이긴 한데 한문 원문이 같이 실려있지는 않다. 원문이 같이 수록된 완역본은 5권짜리였음 ㄷㄷ
작년에 포스트잇 붙여놓은 부분을 다시 쭉 보니까 죄다 노자가 한 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진짜 비슷함.
1. 재앙과 복에 관한 이야기 (p.286) - 이건 보왕삼매론 비슷하기도 하다.
사람은 재앙을 당하면 마음이 두려워지고, 마음이 두려워지면 행동이 단정해지며, 행동이 단정해지면 재앙과 화가 없게 되고, 재앙과 화가 없으면 천수를 다하게 된다. 행동이 단정하면 생각이 무르익고, 생각이 무르익으면 사물의 이치를 얻게 되고, 사물의 이치를 얻게 되면 반드시 공을 이루게 된다. 천수를 당하면 온전하게 장수할 것이며, 반드시 공을 이루면 부유하고 귀해질 것이다. 온전하게 장수하고 부유하고 귀한 것을 '복'이라고 한다. [이렇게] 복은 본래 재앙이 있는 곳에서 생긴다. 그래서 말하였다.
"재앙이란 복이 기대는 곳이다."
사람에게 복이 있으면 부유함과 귀함에 이르고, 부유함과 귀함에 이르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좋아지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좋아지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행동이 사악하고 괴벽해져 도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며, 행동이 사악하고 괴벽해지면 요절하고, 도리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면 공을 이루지 못한다. 무릇 안으로는 요절의 재난이 있고, 밖으로는 공을 이룬 명성이 없는 것은 큰 재앙이다. [이렇게] 재앙은 본래 복이 있는 곳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말하였다.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다."
2. 무위(無爲)로 신하들을 엿보기 (pp.623-624)
군주의 명찰함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대비할 것이고, 그 명찰하지 못함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현혹시키려고 들 것이다. 군주의 지혜로움이 드러나면 [자신들을] 꾸밀 것이고, 지혜롭지 못함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숨기려고 할 것이다. 군주가 바라고자 하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를 엿보려고 할 것이고, 바라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것을 미끼로 군주를 유인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나는 알지 못하게 하고 단지 무위로써만 그들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3. 군주가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pp.89-90)
군주는 지혜가 있다 하여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알게 하고, 행동을 하되 현명하지 않은 것처럼 하고, 신하들의 행동의 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용기가 있어도 분노하지 말며 신하들이 용맹함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지혜를 버려 총명함을 갖게 되고, 현명함을 버려 공을 얻게 되며, 용기를 버려 강함을 갖게 된다. 신하들은 직분을 지키게 하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일정한 법규를 지키게 하여 신하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리는 것을 '영원불변의 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군주는] 고요하여 그가 마치 제위에 없는 듯하고 적막하여 아무도 그 소재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
현명한 군주는 위에서 정무를 보지 않아도 신하들은 아래에서 두려움에 떨게 된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지혜로운 자들이 자신의 지략을 모두 사용하게 만들고 군주는 그에 따라 일을 결정하므로 군주는 지혜에서 다함이 없게 될 것이다. 현명한 자들이 그 재주를 다 부리도록 만들어 군주는 그것에 근거해서 임명하므로 군주는 재능에서 다함이 없게 될 것이다. [신하가] 공을 세우면 군주는 그 현명함을 갖게 되고, 허물이 있으면 신하가 그 죄를 받게 되므로 군주는 명예에서 다함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고, 지혜가 없더라도 지혜로운 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신하는 힘써 일하고 군주는 그 성취를 취하는 것,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지켜야 할 '영원불변의 도'이다.
같은 도가철학의 테두리에 묶이지만 무위로써 무위를 추구하는 절대자유 사상은 장자 쪽이다. 무위로써 유위를 추구하는, 즉 아무것도 안 하면서 다 이루려고 하는 약아빠진 게 노자다 ㄹㅇㅋㅋ 친구의 요약에 따르면 "날먹 사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먹 사상 매우 마음에 드네 ㅋㅋㅋ 한비자는 이 노자 사상을 좀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계승해서 전국시대라는 레알폴리틱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군주론』이나 『궁정론』, 『손자병법』 같은 통치론, 전략전술론, 모략, 처세/용인술 재미있다. 별로 써먹을 생각은 없는 기술이지만, 누가 엿먹이려고 하는 것만은 바로 알아채고 되갚아줘야 되니까 알아는 둔다. 원래 이상주의자였는데 지내보니까 아무래도 성악설이 좀더 맞는 거 같다. 즉각적인 정의구현만이 답 ㅋㅋ 또 구경꾼 입장에서는 모략 이야기처럼 꿀잼인 게 없으니까. (물론 내가 당사자면 엿같다.)
올해는 순자를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순자, 논어, 묵자만 보면 그래도 윤리와사상에 나온 중국고전을 한번씩은 보게 되는 듯 하다. 장자도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장자는 심지어 인도에 가져갔었던 거라서 언젠가 꼭 언급은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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