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파트리크 쥐스킨트 - 콘트라바스 본문

독서

파트리크 쥐스킨트 - 콘트라바스

bravebird 2022. 9. 14. 23:37

나는 음악은 풍성한 것이 좋다. 퍼커션부터 시작해서 여러 층의 사운드가 탄탄하게 맞물리는 것이 음악의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오케스트라나 밴드 동아리를 할 수 있도록 악기를 1~2개 정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오래되었다. 국궁 실력만 좀 자리잡으면 바로 시작하고 싶어서 악기를 고르고 있다.

 

리듬 요소가 강조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 선율악기보다는 퍼커션이 더 관심이 간다. 그래도 어쨌든 직장인이 취미로 배우는 것이므로 합주가 어려울 가능성도 있으니 독주 레퍼토리도 충분한 악기가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악기를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입으로 부는 악기보다는 현으로 긋는 악기를 하고 싶다. 음역대는 애초에 고음보다는 중저음을 선호한다. 그래서 클래식 악기 중에서는 비올라랑 첼로가 가장 강력한 후보이다.

 

그런데 앞으로 들어가고 싶은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확인해보니, 최근에 비올라와 첼로 대신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를 추가로 모집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블베이스도 배울 방법이 있는 건지 찾아보게 되었다.

 

한 195cm 되려나

 

영어로는 더블베이스, 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 일명 콘트라베이스로 알려져 있는 거대한 악기이다. 한 번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항상 궁금했었다. 언제나 보컬이나 기타 같은 주선율 악기보다는 그 뒤를 받쳐주는 베이스나 드럼 쪽에 마음이 갔었다. 주인공으로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빠져서는 매우 곤란한 존재로서 은밀하게 통제욕구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ㅋㅋㅋㅋ

 

하여튼 이 악기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겨 찾다 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바스'라는 소설이 있었다. 바로 전자도서관 설치해서 빌려 읽었는데 이거 읽어볼 만하다. 저녁나절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으니까 무적권 읽으세요. (링크) 조직사회 속에서의 직업 생활을 정말 기가 막히도록 간결하게 꿰뚫은 책이다.

 

 

 

 

콘트라바스는 어떤 악기인가?

 

일단 성인 남자 몸집보다 크다.

독주는 거의 이뤄지지 않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악기이다.

그러나 거의 누구도 모른다. 오케스트라에서 아마 제일 뒷줄을 차지한다.

바이올린이나 소프라노같은 주인공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콘트라바스 자체가 너무 좋아서 악기를 선택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바이올린이라든지 뭔가 다른 것을 하려다가 실력이 모자란다거나 TO가 콘트라바스 쪽에 있다거나 해서 여건상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주인공은 국립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공무원 신분의 연주자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릴 일은 없이 매우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이 철밥통을 박차고 떠나기란 굉장히 어렵다. 사람 몸집보다도 더 크고 거추장스럽고 짐짝 같은 이 악기에 매인 것이다. 주어진 매일매일의 몫을 성실히 잘 해내지만 스스로가 천재는 아니란 것쯤은 알 만큼 상식적이고 현실적이다. 왠지 바이올린이나 소프라노나 작곡이나 지휘자를 하면 마음 한 구석의 아련한 갈증이 풀릴 것도 같지만 별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들지 않고 스스로의 음악적인 재능에 대해서도 회의가 있다.

 

콘트라바스는 정말 조직사회에 속해있는 직업인들의 보편적인 처지에 대한 촌철살인적인 상징이다. 어떻게 대체 이런 기발한 착안을 했을까? 이 악기 하나로 내가 겪는 매일매일이 다 표현된다. 특히 내가 기타나 보컬이나 제1바이올린이나 소프라노 같은 주인공 역할보다는 뒤를 받쳐주는 중저음악기 쪽에 마음이 가고, 노래를 해봐도 한 소절만 불러봐도 당장 알 수 있는 알토이고, 회사에서도 캠페인을 서포팅 하는 일을 주로 하고, 게임도 미드는 안(+못) 가고 탱커 서포터 고르는 사람이라 더더더 더 그랬다.

 

평범한 직업인들의 일상 생활 감정 그 자체를 담고 있고 어려운 것도 없이 금방 읽히는 책이다. 이거 연극으로도 했다는데 내가 연극만 보러 가면 디비자는 사람이지만 또 한다면 반드시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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