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본문
책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고 현 시점에서도 시의성이 충분한데 번역이 매우 처참하게 엉망이다. 번역서를 읽는 것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데 번역이 이 지경이라면 차라리 원서를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주말에는 끝을 내고 문장이 좀 정상적인 책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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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필요들 사이에 의식적 차별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은 법적 규칙에 의해 특정 사람들이 얼마나 부유할지,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해야 한다. 이것은 실제로는 신분(status)의 지배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헨리 마인(Henry Maine) 경의 유명한 구절에서 표현된 "진보적 사회들의 추세는 지금까지 신분에서 계약으로 가는 운동"이라는 사회발전의 방향이 역전된 것을 의미한다. (p.129)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두쇠와 같은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순전히 경제적인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분별력이 있는 보통 사람들의 활동의 궁극적 목적들은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 엄격하게 말해서 '경제적 동기'(economic motive)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경제적이지 않은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데 있어 그 수단의 범위를 조건짓는 경제적 요인들이 있을 뿐이다. 통상 '경제적 동기'라는 말은 쉽게 오해를 야기하게끔 오용될 때가 많지만 실은 이 말은 단지 일반적 기회에 대한 욕구, 즉 구체화되지 않은 목적들을 성취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욕구를 의미할 따름이다.
만약 우리가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은 돈이 우리에게 노력의 열매를 향유하는 데 가장 큰 선택의 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화폐소득의 유한성으로 상대적 빈곤과 이에 따른 제약을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제약의 상징인 돈을 혐오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힘이 느껴지게 하는 매개물을 그 원인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돈은 사람이 발명한 것 중 가장 큰 자유의 수단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현대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에게도 불과 몇 세대 전 부자에게만 열려 있던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울 정도로 넓은 선택의 범위를 가능케 해준 것이 바로 화폐이다. 만약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특징적으로 제안하듯이 '금전적 동기'(pecuniary motive)를 전반적으로 '비경제적 유인'(non-economic incentive)으로 대체한다면, 그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러면 선택의 기회와 관련해 화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중요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보수가 돈으로 제공되는 대신, 공적 명예나 특권, 타인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 더 나은 주택, 더 나은 음식, 여행, 교육 기회 등의 형태로 제공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그 수령자에게 더 이상의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누가 그 보수를 정하든 그가 보수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 보수를 사용할 특정한 형태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pp.142-143)
경제계획은 우리가 경멸적으로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한계적 필요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계획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더 이상 개인으로서 무엇을 한계적으로 여기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경제활동을 지시하는 당국은 단순히 열등한 것들과 관련된 우리 삶의 일부를 통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제계획은 우리의 모든 목적들을 위한 제한된 수단의 배분을 통제한다. 그리고 모든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는 우리의 모든 목적들에 대한 수단을 통제하므로 무엇이 충족되어야 하며, 무엇이 충족되지 않아야 하는지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다. 경제적 통제는 단순히 다른 부분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인간의 삶의 한 부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목적들을 위한 수단의 통제이다. 그리고 수단에 대한 유일한 통제를 행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이 봉사받게 될 것인지, 어떤 가치들이 더 높게 평가받고, 어떤 목적이 더 낮게 평가받을 것인지, 한마디로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노력해야 할지 동시에 결정한다. 중앙 계획은 경제문제가 개인들 대신 공동체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다른 필요들의 상대적 중요성을 결정하는 사람도 또한 공동체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동체의 대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pp.145-146)
경쟁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격만 지불하면 가질 수 있다. 이 사실이 경쟁사회를 비난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는 오해는 이와 관련된 모든 주제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사회에서는) 삶의 고귀한 가치들이 '금전관계'(cash nexus) 속으로 불려 들어오게 되었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는 우리에게 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덜 중요한 필요들을 희생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그 불평하는 사람들이 시장경제에서 그런 선택이 허용되지 말아야 하며, 누군가가 우리 대신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이것은 매우 이상한 요구이며 (고귀한 가치의 하나일) 개인의 존엄성을 깊이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과 건강, 아름다움과 미덕, 영광과 마음의 평화, 이런 것을 보존하려면 상당한 물질적 비용을 들어야만 할 때가 많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 이와 관련해서 (커다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그런 가치들을 보존해야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사실, 이 사실들을 부인할 수 없다. (p.152)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가 없이는 기만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정말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의 계획자들이 이 말을 사용하는 의미와는 거의 정반대의 의미에서 옳은 말이다. 어떤 다른 자유의 전제조건인 경제적 자유가 사회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경제적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는 그런 자유일 수는 없다. 이런 경제적 관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필요와 선택의 자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개인으로부터 제거해 버릴 때에만 획득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경제적 자유란 선택의 권리를 가진 상태에서 그 권리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위험과 책임을 함께 동반하는, 우리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의미할 따름이다. (pp.156-157)
사람들은 누구든 부닥칠 수 있는 (운에 따른) 고통에는 순응할 것이지만, 당국의 결정에 따른 결과인 고통에 대해서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비인적 기계장치에서 하나의 톱니에 불과해진다는 것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더 이상 그 기계장치를 떠날 수 없다면, 만약 우리가 우리를 대신하여 결정하는 상관들에게 묶여서 떠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무한정 더 나쁠 것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만은 이 운명이 의식적인 인간의 결정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불가피하게 폭증할 것이다. (p.165)
사회주의가 약속한 것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더 정의롭고 더 평등한 분배였다. 절대적 의미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더 큰 평등'이 심각하게 달성하려고 했던 유일한 목표였다.
이 두 가지 이상이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하더라도, 이 둘은 우리의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절대적 평등은 계획자의 과업을 분명하게 결정해 주는 반면, 더 큰 평등에 대한 욕구는 (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극적 형태의 욕구로 지금 현 상황에 대한 혐오를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한 평등으로 가는 모든 움직임이 바람직하다고 기꺼이 말할 수 없는 한, '더 큰 평등'이라는 원칙 속에 내재된 애매성은 계획자가 결정해야 할 질문들 중 그 어느 것에도 별 대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 더 큰 평등이란 원칙이 (...) 실제로 우리에게 말해 주는 전부는 부자들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탈취하라는 것뿐이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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