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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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이클 폴란, 푸드 룰

bravebird 2022. 3. 23. 06:27

최근 몇 년간 독립해서 살면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더더욱 활동이 제한되어 식생활이나마 다양하고 건강하게 즐겨봐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음료 동아리 회장님이 최근에 언급하셨는데 나도 마침 갖고 있어서 여행길에 보려고 킨들에다 넣어 왔다. 별 일정 없이 노닥노닥하며 날씨를 즐기는 날에 야외 벤치에서 읽는데 모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순간이었고 오랜만에 책이란 게 재밌었다. 친구가 10년 전에 이북에다가 넣어서 선물해주었는데 이제서야 손길이 닿았다. 진작 읽어볼걸.

 

마이클 폴란의 푸드 룰은 식생활에 대한 동서고금의 격언들을 재치있고 짧게 수록해놓은 책으로 워낙 쉽게 읽을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요점은

1. 음식을 영양소로 환원해서 생각하지 말라. 먹는 것은 영양소뿐이 아니라 문화적, 심리적인 경험을 모두 포함한다.

2. Eat food. Not too much. Mostly plants.

 

그러므로,

음식을 손수 준비해 먹어라.

식사는 식탁에서 해라.

음식을 먹는 데 충분히 시간과 돈을 들여라.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라.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저녁을 간소하게 먹어라.

영양제 대신 다양한 자연 식품으로 영양을 섭취하라.

 

내용은 이와 같이 매우 간명하다 보니, 이 기회에 나의 식생활(포함 생활 전반)을 반추해 본다.

 

나는 애초에 독립을 한 이유에도 식생활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 식탐도 별로 없는데다가 엄마 밥이 입에 맞지 않아서 집에서는 입이 좀 짧았는데 밖에서는 잘 먹는 일이 많았다. (엄마 죄송 ㅋㅋㅋㅋㅋ) 특히 엄마가 밥 안 먹을 거라며 못 가게 말렸던(말린 이유가 정말 이거였음) 중국에서 대식가였음... 30 평생 엄마 잔소리의 100%는 밥과 건강에 관련된 잔소리였다. 그냥 이제는 알아서 하고 싶어서 몇 년 전에 독립해 버렸다. 또 엄마랑 집안일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나만의 주방도 절실했다.

 

그런데 나와서 살아보니 보통 사회 초년생의 집은 주방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더라. 식사 공간(거실)도 따로 없으니 요리하는 것도 먹는 것을 즐기기도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은 일과에 치여서 대부분 밖에서 사먹고 오거나 재택 중이면 그냥 시켜서 컴퓨터 앞에서 먹는다. 게다가 메뉴 선택도 경로의존성의 지배를 받다 보니 식생활이 매우 단조롭고 재미없는 편이다.

 

올해 초에 고등학교 은사님을 뵈었는데 선생님이 '먹을 것은 스스로 준비할 줄 아는 것이 기본이다. 돈을 좀 쓰더라도 잘 먹고 잘 사는 게 남는 거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씀이다. 근데 변명일지 몰라도 당장 여건이 그다지 여의치 않다. 특히 지금 집은 진짜 싱크대 바로 앞에 이불 펴져 있는데 기름 튀게 요리는 무슨... 그러다 보니 정말 요리 빈도가 확 더 줄어버렸다.

 

일 끝내고 천천히 요리해서 가끔씩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식사하고 나서 차 한잔 하고 족욕 하기. 이거야말로 내가 언제나 꿈꾸는 이상적인 하루의 마무리다. 그만한 시간과 체력과 정신적 여유가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부자다 이런 게. 근데 이런 게 참 사치가 되어버렸다. 먹는 것은 '영양소 섭취' 그 이상인데 나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먹는 것을 관성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여행 중에는 가급적 안 먹어본 것들을 천천히 시간 내서 맛보려고 하고 있다. (여전히 다른 것들에 치이긴 한다.) 또 사람들과 같이 먹을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렇게 했다. 먹는 것뿐 아니라 시간 없고 귀찮다고 생략해온 '누리는 것'들을 천천히 시간 들여서 했다. 4년만에 처음으로 보내는 연중 개인 휴가이니만큼, 음식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조금 천천히 여유를 갖고 다양하게 누리는 걸 천천히 연습해보고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빠른 샤워로 끝내는 사람이지 스파에 가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큰 마음 먹고 터키식 스파에 가서 전신 마사지 60분이 포함된 가장 비싼 프로그램을 했다. 돈을 많이 썼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안 하던 짓을 비싸게 저지를 정도로 마음을 바꿔먹었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지금 다른 도시로 이동했는데 숙소 가까이에 지점이 있길래 한번 더 할 수도 있다.

또 핸드크림 따위는 바르는 일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받은 핸드크림이 집에 쌓여만 있었다. 이번엔 일부러 가져와서 수시로 바른다.

면세점에서 5만원 넘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사 가지고 와서 생각날 때마다 목에 뿌려 며칠만에 소진시켜 버렸다.

여행 중엔 바디 로션 따위 생략하였지만 이번에는 빠뜨리지 않는다. 헤어 컨디셔너도 일부러라도 꼭꼭 하려고 했다.

인공눈물도 드디어 사서(...) 갖고 다니면서 수시로 넣어주었다.

예전에는 여행짐 늘어난다고 절대 쇼핑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사람들 쇼핑 따라가서 옷도 사서 입었다.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들 부탁 다 들어주었고, 여러 장씩 찍어 주었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눈웃음을 하였다.

해야 할 것, 봐야 할 것을 최소화하고 그냥 여유 부리면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날씨가 좋아지면 볼 것을 생략하고 날씨를 즐겼다.

어느 날은 그냥 포켓몬고를 하기도 했다. 이전엔 최대효율을 뽑아야 하는 여행에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숙소에 물을 몇 통씩 사놓고 개인 물병도 가지고 다니면서 꾸준히 마셔준다.

다리에 부종 빼는 도구도 가져와서 저녁 때 사용한다. 이전엔 짐 된다고 절대 이런 것은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이런 자잘하게 재미나고 기분좋은 것들을 모두 대충대충 처리해오고 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나 자신한테도 이렇게 인색한데 남한테도 그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활의 사소한 것들을 정성들여 누려야겠다는 생각과, 특히 식생활에서 가장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던 차에 좋은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여행 중 분수대 앞에서 포켓몬 잡아가며 게으르게 읽는데 그냥 너무 재밌었다. (그러느라고 끼니는 몇 끼 연속 하몽 샌드위치로 때움 물론 한국 가면 없어서 그런 거긴 하지만 하필 너무 빨리 먹어치우는 걸 골랐넼ㅋㅋㅋㅋㅋㅋㅋ) 마이클 폴란의 다른 책도 바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책일 뿐. 천천히 음식을 준비하고 한 입 한 입 온전히 즐기면서 감사하게 나눠 먹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 친구들 나중에 나 이사가면 한 상 차려줄게 우리집에 놀러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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