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여태껏 만나본 가장 멋진 아주머니 본문
는 바로 칼림퐁에서 만난 셰르파 아주머니다.
이 분은 러시아 친구 알렉산더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알렉산더가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에서 근무하고 계신 분이다. 나는 인도로 출발하기 전에 미리 메일을 보내뒀었는데, 마침 칼림퐁에 도착한 순간에 딱 답장을 주셔서 운좋게 그날 만나뵈었다.
찾아가는 길이 조금 어려웠는데 전화번호도 따로 알려주셨다. 전화로도 야무지게 안내해주신 덕분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찾아갔더니 장소를 잘 소개해 주시고 하루종일 머물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곳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아주머니의 유쾌함이 좋았던 나머지 칼림퐁 일정을 하루 추가해서 또 찾아갔다. 원래 칼림퐁은 당일 하루만 보려고 생각했던 곳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온 답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칼림퐁이라는 곳 자체를 놓쳤을 수도 있다.
아주머니는 아들이 31, 25세인 1959년생이시다. 아주 유쾌한 분이었다. 나는 거의 이틀간 한나절씩을 아주머니의 일터에 찾아가 머무르다 내려왔다. 연말 결산 일로 바쁘신 와중에도 처음 만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끊임없이 새로운 화제로 이야기를 해주셔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셰르파족이라 네팔어가 모어인데 영어를 보통 인도 사람들보다도 훨씬 잘하셨다. 알고 보니 학창 시절을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에서 보내셨다. 아버님이 영국 군인이셔서 영연방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거기서도 교육은 전부 네팔어로 받으셨다고 한다. 부대 내에서는 철저히 네팔어만 썼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인 인도 다르질링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는데 영어는 거기서 시작한 셈이라고 하셨다. 대학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하셨다. 중학생 때쯤부터 영어를 배운 내가 후달렸다.
대학 졸업 후에는 콜카타에서 호텔에 근무하다가 네팔 카트만두로 전근 가게 되어 그곳에서 오래 사셨다. 카트만두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은 부탄 출신의 인도 국적자이다. 네팔에 마오주의 혁명이 일어난 2003년까지 카트만두에 사시다가 난리통에 휴교가 길어지면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어렵게 되어 인도로 복귀하여 쭉 살고 계신다. 현재 칼림퐁에서 일하면서 좀 더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계신다. 평화롭게 반복되는 은퇴 후의 하루하루에 매우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남자 형제는 카트만두에, 막내 여동생은 홍콩에 살지만 나머지 두 여자 형제는 가까이 Kurseong에 살아서 여행도 같이 다니고 가깝게 지내신다고 했다. 이외에 친척들이 네팔과 미국 등 세계 각지에 살면서 국적이나 민족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경우가 많았다. 첫째 아들은 뉴델리에서, 둘째 아들은 아프리카 가봉에서 일하고 있다. 외국에 가서 일하는 것 자체가 바꿀 수 없는 경험이 된다면서 본인이 오히려 적극 권장하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보다도 연세가 많으면서 한국의 내 또래 20~30대보다도 훨씬 개방적이셨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60대 여성이 이런 진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아주머니께서는 주로 인도의 교육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인도에서도 그렇게 교육열이 높고 학교 공부가 빡센지 잘 몰랐다. 한국보다 더하면 더한 수준으로 지독하게 시키는 듯 했다. (링크 한번 읽어볼 만함) 모두들 의사와 엔지니어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했다. 알고 보니 카스트 제도의 현대판 대체재가 바로 교육이라고 했다. 인구도 박터지니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IIT 같은 일류 대학의 관문은 더더욱 좁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어린 시절에 공부에 너무 목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들들의 학교 숙제가 과다하다 싶으면 그냥 대신 해줘버릴 때도 있었을 정도로 실컷 놀게 하셨다고 한다. ㅋㅋㅋ 대신 주말이면 아들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놀았다. 아들들은 현재 다 잘 자라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 누구나 느긋한 태도로 자녀 교육에 임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일 텐데 온갖 피어프레셔와 FOMO 속에서 실천에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딱 중심을 잡은 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와 강단이 엿보였다.
나이 들면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멋진 어른이었다. 그러니까 즉 이런 분이었다.
- 마음에 여유 있고 자기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음
- 유쾌하고 즐거움
-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강단이 있음
- 진취적이고 나이나 전통에 갇히지 않음
- 자신을 둘러싼 일상 생활과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 만족함
그야말로 내 꿈인 '즐거운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는 분이었다. 그런 분을 이렇게 쉽게 가까이에서 친구처럼 만나뵐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그런 것은 상대방도 바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랜만에 안부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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