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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이야기 -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본문

독서

발레 이야기 -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bravebird 2015. 5. 26. 00:40

 

 

 

굉장히 흥미로운 입문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체육시간에 발레 배울 때 치를 떨었으며, 발레 기본 동작도 하나도 모르고, 발레의 명작 중 명작이라는 백조의 호수는 보다 쿨쿨 잤을 정도니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지만 몇 가지 오래된 궁금증이 있어서 빌려본 책인데 대만족이다. 

 

몇 년 전 미국에 놀러갔을 때 취미발레 배우는 친구 따라 댄스스쿨에 가본 적이 있다. 남자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튀튀 입은 흑인 남자. 딱 봐도 아 동성애자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발레하는 남자는 왜 그렇게 드물며 만약 있으면 게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많을까? 발레는 왜 여성의 전유물처럼 됐을까? 게다가 발레는 엄격한 체격조건과 외모와 흰 피부색,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젊음과 가혹한 신체조정을 요구하는 장르다 보니 굳이 정치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상당히 배타적이고 편협한 장르에 속하지 않나? 발을 혹사시키지 않고 거식증 수준의 다이어트를 요구하지도 않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동작을 응용한 박력있는 남성 발레는 없나? 이게 애초의 의문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레의 어딘가에 상당히 매혹을 느낀다는 점 역시 고백해야겠다. 그럼 그 매력은 무엇일까? 무용의 미의식이란 건 뭘까? 이것도 주요한 궁금증이었다. 나름대로 답을 해 보자면 아마 이중적인 완벽주의 아닐까 생각한다. 엄격한 정련을 거쳐 표현되는 깊은 열정. 감각과 오성 사이의 긴장. 겉보기에 섬약한 듯하지만 상당히 큰 힘을 요구하는 동작들. 그 큰 힘과 감성의 절제된 표현.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무용수들이 발끝으로 설 수 있는 것 같다. 

 

요가를 하다 보니, 무심한 듯 하는 동작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가는지,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구부려지지 않는 부분을 완전히 부드럽게 구부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무용수들은 공처럼 가볍게 튀어오르면서도 동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집중한다. 몇십 년의 시간에 걸쳐 근육 한 줄기 한 줄기를 모두 단련시키고 골격을 가지런히 정렬시켜 왔을 것이며, 팔을 뻗는다거나 다리를 구부리는 것 같은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도 품위를 깃들이기 위해서 공을 들였을 것이다. 이 노력을 생각하면 발레는 정말 아름다운 장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술술 책을 읽어내려갔다. 본래 남성 위주의 장르였던 발레가 어떻게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되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나와있었다. 의상은 어떻게 변해갔고, 테크닉은 어떻게 발전해갔고, 유명한 무용수와 안무가들에 얽힌 이야기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었다. 맨 뒤에 용어사전도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본적인 발레 용어도 짚어볼 수 있다. 그 중에 백조의 호수의 백미라는 32연속 푸에테.. 작년 여름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볼 때는 아마 그게 뭔지도 모르고 넘어갔지 싶은데, 유튜브에서 울리야나 로파트키나의 푸에테 장면을 찾아보니 그냥 존경한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걸 하기 위해서 했을 노력이 잘 상상조차 안 된다. 

 

 

 

 

 

▲ 약 5:06부터 푸에테 장면 시작

 

 

다시 애초의 궁금증으로 돌아가 보자면, 이 책이 꽂힌 서가에는 발레와 젠더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게 The Male Dancer - Bodies, spectacle, sexualities. 영어만 아니면 당장 빌렸을 텐데, 영어책은 보는 데 시간이 걸려서 한국어 책 여러 권과 같이 빌리면 후순위로 밀리고 밀려 결국 안 읽고 반납하기 때문에 안 빌렸다. 다음 번에 결론 부분이라도 한번 살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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